관훈토론회

‘벽을 허물자’ 1차 토론회-언론 내부 반목의 벽 허물기

초청자 :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개최일 :
2009-06-12
조회수 :
5,488
첨부파일

 

<‘벽을 허물자’ 1차 토론회>

 

주제:언론 내부 반목의 벽 허물기

일시:2009년 6월 12일(금) 오후 3시

장소:제주도 서귀포KAL호텔

 

사      회:이목희 관훈클럽 총무(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주제발표: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토      론:김 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의겸 한겨레신문 문화편집장

               정혜승 KBS 해설위원

               이상용 MBC 보도국 부국장

 

이창순(관훈클럽 사무국장):지금부터 ‘언론 내부 반목의 벽 허물기’ 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목희 관훈클럽 총무님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


이목희(관훈클럽 총무,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사회):관훈클럽 이목희 총무입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강신철 신영기금 이사님과 여러 기자분들 토론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손태규 교수님 원고를 보니까 근래 보기 드문 역작인 것 같아요. 많은 애정을 갖고 언론 내부의 반목을 없애자고 쓰셨는데 그걸 바탕으로 오늘 활발한 토론이 있기를 바랍니다. 토론자로 참석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런 토론회가 있게 된 배경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여기 강신철 이사님 계시지만 언론계를 떠나신 원로분들, 또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는 전직 언론인들이 걱정을 많이 하세요. 이렇게 하면 우리 언론계 공멸한다고 말입니다. 저희가 보기에도 한 발 물러서서 그렇게 보시는 분들 걱정이 맞는 것 같아요. 이럴 때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이 언론계의 새로운 변화라든지 화합을 위해서 뭔가를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어서 저희가 이제 처음으로 시작합니다. 이 시작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그 다음에 이것보다 더 확대하든지 하겠습니다. 올해도 토론회를 두 번쯤 더 해보려고 하고요, 지속적으로 변화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이 캠페인을 저희가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처음 시작하는 장이라고 생각하시고 사명감을 가지시고 많은 토론과 대안을 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미디어 기자가 있지만, 미디어 기자 아닌 취재부처와 관계없이 또 약간은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젊은 기자분들 간에도 반목이라든가 벽이 있다니까 그런 고민도 솔직히 털어놓고 뭔가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에 이 토론회와 관련해서 모 조간신문에 칼럼이 났더라고요. 그 마지막 구절에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물고기가 자꾸 싸우다가 한 물고기가 죽었고, 그게 부패돼서 떠오르니까 연못이 썩어서 그 연못 자체에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되더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언론환경이 그런 것 아니냐. 정신 차려야 될 때라는 겁니다. 저희 관훈클럽이 이러한 토론회를 하는 것도 한 줄 넣으면서 그런 내용으로 결론을 맺었더라고요. 하여튼 오늘 좋은 토론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창순:이어서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이신 강신철 경향신문 상임고문님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 


강신철(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 경향신문 상임고문):저는 제 인사말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어제까지 몰랐습니다. 복장도 좀더 단정히 하고 올 걸 하는 생각도 드는데, 여러분 반갑습니다. 특히 관훈클럽이 주최하는 행사로서는 젊은 기자 비율이 가장 높은 행사가 아닌가 싶어서 저한테는 더욱더 영광입니다. 한 살이라도, 1년차라도 더 젊은 기자를 만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오늘 토론회가 서로 친한 동료가 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또 제가 나중에 개인적으로 여러분을 만날 때 혹시 몰라보더라도 제주도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목희 총무로부터 이러한 토론회를 준비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 잘하는 일이다, 좋은 생각이다라고 느꼈습니다. 이런 행사야말로 관훈클럽이 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관훈클럽이 맡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총무로 있었던 7년 전쯤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오늘 이런 토론회가 언론계 내부의 저희를 괴롭히고 때로는 속상하게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고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20~30년 혹은 40~50년 전의 까마득한 선배들이 현장에서 뛸 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슨 그런 일이 다 있었나?’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어떨 때는 ‘아, 꿈같은 얘기구나!’라고 할 만한 일화를 많이 접했을 겁니다. 앞으로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후배들이 ‘선배, 그때 언론사간 반목이 얼마나 심했으면 관훈클럽에서 그런 토론회까지 만들었을 정도냐’며 참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어볼 때 여러분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때가 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인사말이 너무 길어지는데 하여튼 오늘 이런 기회에 허심탄회하게 모두 털어내시고 또 좋은 방안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희 신영연구기금은 관훈클럽 행사를 지원하는 데 주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 멀리까지 현업의 바쁘신 시간을 내서 오신 만큼 토론을 활발하게 하시고 토론을 마무리 짓고 난 다음에도 좋은 자리를 만들어서 서로 친분도 쌓으시고 또 제주도의 좋은 풍광을 잘 구경하시고 올라가는 데 불편이 없도록 저희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좋은 자리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 회:그럼 바로 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를 간단히 소개해 드리면요, 제 오른쪽에 계시는 손태규 교수님이 주제발표를 하겠습니다.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님이신데, 한국일보에서 민완기자로 활약하시다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언론법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토론하실 분은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용 MBC 보도국 부국장, 정혜승 KBS 해설위원, 김의겸 한겨레신문 문화편집장입니다. 그럼 먼저 손 교수님의 주제발표 내용을 듣겠습니다.


손태규(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우선 발표하기 전에 제가 지금 현직이 2개인데, 한쪽은 일부러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발표하는 내용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제가 몸담고 있는 위원회 입장이나 성격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언론단체의 이런 세미나에 여러 번 참여합니다만 2년 전 해운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제가 주제발표했을 때입니다. 다 끝나고 그 단체의 회장을 맡으신 모 언론사 선배께서 마지막 말씀을 이렇게 하십디다. 부산 해운대에 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바로 붙은 아파트를 보면서 ‘야, 저거 하나 사야지. 기가 막히다. 저기 아파트 하나 사놓으면 또는 전세라도 구해놓고 1년에 한두 번이라도 내려오면 얼마나 좋을까!’ 굴뚝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다가 일을 다 보고 서울에 올라와서 김포공항이나 서울역에 내리는 순간 해운대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이 세미나 참석해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그래 맞다!’ 뼈아픈 반성을 한다고 하고는 서울 가서 돌아서면 다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제가 신문사를 떠나 공부하고 와서 학교에 간 지 7년 되는데, 이런 주제발표하는 자리나 토론하는 자리나 아니면 여러 가지 소모임에서 언론계에 굉장히 쓴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면 저만이 할 수 있다는, 괜히 쓸데없는 자부심과 오기로 언론계를 질타했습니다. 그러면 들을 때마다 모든 분들이 거의 절대적인 공감을 합디다. 그런데 그후에 달라지는 것 잘 못 봤습니다. 똑같습니다. 해운대 갔다 왔을 때나, 제주도 갔다 왔을 때나 들을 때 그때뿐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만큼은, 강신철 선배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입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자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여기서 제가 하는 말씀이나 다른 분 말씀 다 듣고, 그것이 앞으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기자들의 반목이라든지 불신이라든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처음으로 심각하게 느낀 게 미국 유학시절입니다. 언론법 전공수업을 하는데, 박사 동기들이 대부분 다 기자 출신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한국 언론은 서로 명예훼손 소송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전부 다 깜짝 놀라는 겁니다. 제 지도교수도 기자를 오래 했었고, 언론법에서 미국에서 알아주는 대가인데 그분이 그런 게 있냐는 겁니다. 저도 놀라서 ‘그런 게 없습니까, 다른 나라에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지도교수가 저보고 빨리 논문으로 써서 학회에 발표하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했으나 지금까지 미국 학회에 그걸 못 내고 있습니다. 제가 게으른 점도 있고, 한편으론 창피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사간 소송은 굉장히 드문 경우입니다. 이번 세미나 주제발표를 준비하면서 여러 나라의 자료를 모아 봤는데 언론간 소송이 있는 케이스를 아직 한 건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못 찾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혹시 여기 계신 분 가운데 다른 나라의 케이스가 있으면 저한테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만큼 독특한 현상입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언론간 불신과 갈등이 깊다는 것을 여러분이 사실적 확인 차원에서도 아셔야 하는 겁니다.

제 발표문의 첫 문장이 ‘한국 언론이 무너지고 있다’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모 저널리스트가 미국 언론의 현재를 설명하는 문장에서 차용한 겁니다. 지금 언론산업이 위기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보편적인 현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과 우리나라 언론산업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같이 무너지고 있는데, 어떻게 무너지고 있느냐? 2008년도 보고서를 보면, 미국사람들도 굉장한 위기라고 걱정하지만 근본적인 언론가치나 언론에 대한 신뢰도 위기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미국도 언론, 근본적인 저널리즘 가치라든지 신뢰도 하락에 관해서 수십 년, 수십 년이 아니죠. 100년, 200년 동안 굉장히 많이 걱정하고 논의를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시점에서 그 사람들이 그것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돈 문제입니다. 수입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뒤집어 얘기하면 미국 언론인들은 독자와 시청자에 대한 걱정을 안 한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국민이 뉴스에 대한 본질적 욕구를 언제든지 갖고 있고, 그 욕구를 다른 방법으로 찾고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것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렇게 늘 존재하는 독자들이 지금 신문을 떠나고 있고, 로컬 텔레비전을 떠나고 있고, 그 다음에 네트워크 텔레비전 ABC, NBC, CBS를 떠나 케이블TV나 인터넷 등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데 주목하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플랫폼을 옮겨간다는 거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이쪽으로 끌어들이느냐? 그리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면서 그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는, 그냥 공짜로 뉴스를 취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돈을 내게 하느냐? 광고를 생성하게 하느냐? 하는 것을 걱정한다는 이야기죠. 그럼 우리는 어떠냐? 경제위기가 심각한 원인이기도 하지만 한국 언론위기의 본질은 독자와 시청자들이 언론 또는 기자들에 대해서 가지는 불신입니다. 그에 따른 이미지 추락 때문입니다. 뉴스의 질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미국과는 차원적으로 다른 문제의 이야기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미국 독자는 그대로 있다고 봅니다. 그 자리에 있지는 않겠죠. 조금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거죠. 2008년도 미국 어느 언론연구소 통계를 보면 언론에 대한 신뢰도 스케일을 1~4로 봤을 때 거의 절대다수가 3까지는 본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어떨까? 3이 나올까요? 여기 제가 썼습니다만, 2002년도 이후 우리 언론에 대한 종합적 신뢰도 조사 자료를 구하지 못했는데 아마 지금 조사한다면 10%대 나오지 않을까? 저는 혼자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뢰도가 떨어지면, 기자에 대한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그것은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죠. 독자와 시청자가 없는데 어떻게 언론이 존재하느냐는 이야기죠. 그 원인이 무엇이냐? 제가 첫 번째 든 게 바로 정체성 위기입니다. 정체성 위기는 뭐냐 하면 바로 제가 여기에 쓴 기자들 간에 동질성과 유대심이 없는 상황입니다. 정체성이 뭔지 모르는데, 기자가 스스로 기자란 뭐 하는 사람이고 누구이며, 어떤 역할과 기능, 어떤 가치를 지키는 존재이며 집단인지를 모르는데 어디서 동질성과 유대의식이 생기느냐는 얘기죠.

최근에 포털이 상당히 논란이 됐을 때 많은 언론에서 왜 포털에 언론의 책임을 안 지우느냐 하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거 보면 참 아이러니컬하다고 느낍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인정된 사회에서 누구든지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해서 ‘citizen critics’라고 그러죠. 시민기자들, 시민비평가들이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가져야 된다는 게 미국식 자유주의 언론 이론의 핵심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포털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고 언론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또 많은 블로거가 언론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계신 여러분은 소위 말하는 제도언론의 언론인입니다. 제도언론이란 과거 70, 80년대에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하던 그런 제도언론이 아니라 굉장히 학술적인 용어입니다. 영어로 ‘institutionalized press’는 한국 언론에서 흔히 얘기하는 제도언론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가 흔히 언론을 ‘4부’라고 해요. 4부라고 할 때 그것이 단순하게 의회나 행정부처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4부라는 것은 제도화된 언론에 헌법적 지위를 보장한다는 굉장히 깊은 의미가 담긴 뜻입니다. 4부라는 것은 1971년 미국 연방대법관이던 ‘포터 스튜어트’라는 양반이 만든 이론인데, 개인 기업인 언론에게 헌법적 보호를 하자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를 하는 언론에게 어떻게 법적 지위를 그렇게 높게 주느냐? 그게 미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논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4부로서의 제도언론에게 헌법적 보호를 해줘야 하는 이유가 뭐냐? 그만큼 언론이라는 게 사회적 기능이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제약, 위협, 뭐 이런 것으로부터 언론을 보호해 주자는 의미에서 제도언론에 관해서는 강한 법적 지위를 주장하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연방대법관은 아직도 기자들에게, 소위 말하면 제도언론에게 굉장히 폭넓은 헌법적 지위나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반시민하고 똑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미국 사법부는 알게 모르게 제도언론에게 상당한 법적 지위를 보장해 줍니다. 그것은 그 사회 전체가 소위 말하는 제도언론에 대한 역할과 기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결과입니다.

그것이 폐쇄적 의미에서, 기자들의 쓸데없는 오만과 편견을 조장하는 또 아주 그릇된 기자실 문화를 북돋우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누구든 어떤 권력이든 간에 언론이라면 무조건 제압하고 보려는 그런 속성을, 그런 욕망을 사회가 같이 누르면서 언론을 보호해주는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겁니다.

제도언론의 기자들은 그 4부 이론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있어야 됩니다. 아까 포털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런 포털이 나올 때 저것은 언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폭넓게 언론을 해석하는 학자들이나 또는 블로거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언론의 여러분이 그것도 언론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무리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기능, 이런 것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어떤 법적 지위에 대한 개념을 잘 알고 계셔야 됩니다. 그게 바로 기자의 정체성입니다.

미국 사회만큼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여러 측면에서 보장해주는 나라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도 숱한 제약이 있습니다. 그것을 없애기 위해 미국 기자들은 공동대응해서 공동투쟁하는 겁니다. 기자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하게 갖고 있고, 그것이 기자들 제도언론들 간에 확실하게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서 서로가 신뢰하고 그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자유언론의 존재를 위해서 공동으로 싸우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데서 이미 무너져 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언론관련,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세미나 이런 데 다니면서 또는 기자들 만나면서 언론에 대해서 4부 이론이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대로 아는 사람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뭐 사실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신방과 학생들한테 물어도 아무도 모릅니다. 교육이 안 돼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언론가치에 대한 교육이 없기 때문에 기자는 그냥 마구 뛰어다니면서 하기만 바쁘지 정말 저널리즘의 가치가 뭐냐? 왜 존재해야 되는지, 어떻게 되는지?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교육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싸우게 되는 겁니다. 제가 여기 쓴 8페이지에 보면 도를 넘는 상호비판… 이런 얘기를 써놨는데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월터 리프먼이 얘기한 것이거든요. 여러분도 잘 아시죠? 월터 리프먼은 퓰리처상을 5~6회 받은 칼럼리스트입니다. 미국 언론인이면서 정치철학자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양반이죠. 이 양반이 1947년도에 ‘Hutchins committee’라고 그러죠. 당시 시카고대학 총장이던 ‘허친스’라는 사람이 타임지 루스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경제학자, 신학자 이런 분들 모아서 미국 언론이 너무 책임감이 없다고 하면서 ‘책임성을 위한 위원회’ 뭐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 보고서 마지막에 언론이 책임감을 높이려면 상호비판을 활성화시켜야 된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에 대해 월터 리프먼이 그런 이야기를 하죠. 경찰을 누가 감시하느냐 이거예요. 그런 문제제기를 하면서 언론을 누가 감시하느냐? 그 양반은 언론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이 하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하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왜? 부부싸움을 하는 건 좋은데 부부싸움을 공개적으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부부싸움을 남들이 다 알도록 한다면 정말 쪽팔려서 살 수 있겠습니까?

부부싸움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보통사람이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고 표현했어요. 그러면서 상호비판을 하려면 기자들이 서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허친스’ 당신 같은 사람이 훌륭한 비평가가 되라. 이런 비꼬는 투로 글 쓴 걸 제가 인용했는데… 상호비판 필요하죠. 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놨습니다만 그러나 그 비판, 그 부부싸움을 서로 알게 하는 것도 사실상 문제가 심각한데 소송으로 가는 것은 참으로 극단적인 겁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기사 때문에 언론이 서로 명예훼손 소송으로 간 것을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직 못 찾고 있습니다. 그런 독특한 현상을 우리만의 아주 괜찮은 현상으로 볼 거냐. 생각을 다시 한 번 해야 될 부분입니다. 저는 발제문에서 미국의 예를 많이 들어놨습니다. 동질성과 유대의식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냐? 미국 언론도 소위 말하는 리버럴이냐 컨서버티브냐, 소위 말해서 미디어 바이어스에 대한 논란이 엄청납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이 쏟아져 나옵니다. 미국의 어느 교과서, 언론 교과서, 무슨 논문치고 그런 미디어 바이어스에 관한 언급이 없는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념적 차이를 넘어 미국 기자들이 권력의 통제 등에 대해 공동대응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예를 들어놓은 이상으로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장점이 뭐냐?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간섭하고 통제하는 법과 제도와 권력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공동대응을 합니다. 힘을 합쳐서 싸웁니다. 처음에 예를 들었던 카메라의 법정 진입 제한, 여기 계신 분 가운데서도 법조 출입하는 분들 있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법정 촬영에 관한 규칙을 보면 재판관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 재판 같은 세기적인 재판도 필름을 갖고 있지 않을 겁니다. 미국이 1934년인가요? 홉트만 재판이라고,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비행했던 찰스 린드버그의 3살짜리 애가 유괴 뒤 살해당한 재판을 하는데, 카메라기자들이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이 와서 법정을 가득 메우고, 기자들이 피고인, 변호사 바로 옆에 붙어 앉아서 방금 판사가 뭐라고 했는데 대답이 뭐냐, 이걸 기자들이 묻습니다.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한 판사가 일체 기자를 쫓아내고, 카메라를 들어내고… 그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기까지 40년, 50년 걸립니다. 미국 기자들이 끈질기게 공동투쟁한 결과입니다. 지금은 웬만한 주에서는 허용하는 편인데, 그런 케이스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거는 뭐냐 하면 미국 사회의 언론도 갖고 있는 이념적 갈등과 투쟁을 넘어서 근본적인 언론가치 문제에 관해서는 동질성과 유대의식을 공유하고 그 공유된 가치를 정말 언론발전을 위해서 함께 쓴다는 거죠. 말하자면 100년, 200년 또는 수십 년에 걸친 그런 노력의 결과가 적어도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 언론도 똑같이 재정의 위기, 돈의 위기를 걱정하면서도 그네들 스스로 기본적인 언론가치의 문제라든지, 언론에 대한 독자와 시청자들의 문제를 덜 걱정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2008년도 통계를 보면 미국의 케이블 뉴스는 그전에 비해서 30% 이상 수입이 증가했습니다. 뉴스에 대한 독자와 시청자들의 근본적인 기대, 근본적인 수요는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반목을 계속하고 갈등과 상호투쟁, 상호비판을 넘어 상호증오가 계속되면 독자와 시청자의 기자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리 없고, 그 기자가 만드는 뉴스에 대한 질과 가치를 결코 신뢰하지 않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썼지만, 지금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고 양극화되고 분화되면서 오히려 정말 좋은 언론, 좋은 뉴스에 대한 갈증은 갈수록 더하다고 봅니다. 그럼 문제는 뭐냐? 어떤 뉴스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린 겁니다. ‘아, 경제 어려우니까 독자와 시청자가 요즘 신문 보나, 뉴스 보나, 텔레비전 보나’ 이렇게 탓하기 전에 내가 어떤 뉴스를 만들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되는 겁니다. 과연 그렇게 악착같이 스스로 싸우면서, 그 싸움의 결과가 언론의 화면과 지면에 반영될 때 독자와 시청자는 어떻게 느낄까를 생각해봐야 됩니다. 뭐 여러 가지 거기에 대한 당사자들의 속사정도 있겠습니다만 저희들같이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걱정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것이 한국 언론의 위기를 가져오고, 종국에는 한국 언론의 붕괴를 가져오지 않을까를 제가 걱정합니다. 단순하게 그냥 걱정한다고만 바라보지 마시고 저도 언론계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이고 또 지금까지 언론을 공부하고 걱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정말 조언을 말씀드린다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발표는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아래의 글은 손태규 교수가 미리 준비한 주제발표문 전문입니다.>


기자들의 동질성 유대의식 회복을 위해


1. 위기를 부른 언론문화


한국 언론이 무너지고 있다. 재정위기가 언론을 압도하고 있다. 언론산업의 재정능력은 뉴스의 질이나 신뢰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제상황은 언론사와 기자들이 뉴스의 질을 따지기에 앞서 생존을 걱정하도록 만들고 있다.

재정압박은 한국 언론만의 고통이 아니다. 2008년 3월 발표된 퓨 연구센터의 설문조사에서 미국 기자의 55%가 언론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재정위기를 꼽았다. 이는 3년 전의 조사보다 25%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경제난으로 수지가 악화되자 언론사마다 당장 취재 인력과 경비를 줄이고 있다. 뉴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뉴스의 질이 낮으니 독자나 시청자가 신문과 방송을 외면할 수밖에 없고, 언론사의 수지가 개선될 리 없다. 이러한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언론산업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언론사들이 겪고 있는 재정위기는 기자들의 언론가치에 대한 인식변화와 맞물려 언론의 신뢰도 하락을 가속시키고 저널리즘의 기초를 붕괴시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은 지나친 이익추구를 지향하는 ‘시장중심의 저널리즘’, 인위적 조사와 빈약한 증거·취재원을 바탕으로 개인적 판단과 의혹 제기에 치중하는 ‘의견 일변도 저널리즘’, 가벼운 읽을거리와 연예·오락의 비중을 높인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저널리즘’ 등 전통적 언론 가치와 기준과 배치되는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왔다. 이들은 또 언론과 언론인들의 고질적 특성인 오만과 편견, 부정확, 즉흥성 등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퍼부어 왔다. 언론은 해결의 실마리가 아니라 문제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언론의 존재이유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아닐 수 없다.

언론자유를 가능케 하는 것은 독자와 시청자들의 지지다. 이들은 언론과 아주 단순한 거래를 한다. 독자와 시청자들은 언론이 좋은 정보와 지식 제공, 정부와 권력에 대한 건전한 감시와 비판을 계속하는 한 지원할 뿐이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전통적 언론 가치와 기준이 필요한 시대라는 사실을 정작 기자들은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과 유럽의 전문가들은 통박한다. 

이 같은 비판과 지적에서 한국 언론과 언론인은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2002년 한국언론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언론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25%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바닥 수준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4분의 1 가량만 언론을 믿는다면 그 나라의 언론은 정상적인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비슷한 시기인 1999년 미국 밴더빌트대학교 ‘수정헌법1조센터’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53%가 언론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언론을 비판했다. 1997년의 조사에서 그 숫자는 38%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당시 미국인의 60% 가량은 언론을 지지하고 성원했다는 뜻이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변호사와 함께 언론인이 사회에서 가장 덜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힌다.

한국 언론은 오랫동안 독자와 시청자의 외면 속에 지내왔다. 한국에서 2002년 이후 국민의 지지도가 상승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재정위기, 언론 가치와 기준의 변질, 기자들의 고질적 태도 등 세계 언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한국 언론이 유독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한국 언론을 둘러싼 안팎의 환경과 상황은 여느 나라 언론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과 언론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언론문화 탓이다. 그것은 한국 기자들의 정체성 인식 문제와 상호비판의 문제다. 정체성에 무지하거나 무심하면서 서로 싸우기만 하는 언론문화 탓에 한국 기자들은 사회적 가치물로서의 기자는 물론 직업으로서의 기자를 한국 사회에 제대로 인식시키고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들은 독자와 시청자를 잃고 말았다.


2. 혼란스런 정체성


우리나라에는 도처에 ‘언론’과 ‘기자’가 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 때문이다. 디지털혁명은 언론과 독자·시청자의 간격을 매우 좁혀 놓았다. 무엇보다 새로운 형태의 ‘언론’과 ‘기자’를 양산했다.

누구라도 뉴스를 만들고, 누구라도 기자가 되는 언론환경은 언론자유 측면에서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민주사회의 시민은 사상의 자유 시장을 통해 당대의 각종 사안에 대해 되도록 많이 알기를 원하는 동시에 자신의 욕구와 희망, 의견, 주장을 표현하고 전파하기를 원한다. 새로운 언론환경 속에서 시민들은 풍성한 언론자유를 향유한다.

새로운 형태의 ‘언론인’이 생산하는 정보의 양은 막대하고 그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국민은 그들의 정보와, 전통매체가 생산하는 뉴스의 차이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과 신문·방송·통신기자의 차이를 엄정하게 식별하지 못한다. 그들이 생산하는 정보가 부실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만큼 ‘뉴스’와 ‘기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누구라도 기자가 될 수 있는 언론환경에서 언론의 질 추락은 불가피하다. 도대체 언론은 무엇이며, 기자란 무엇을 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회의와 의문은 더욱 깊어져 갈 뿐이다. ‘기자의 정체성’ 위기는 심각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언론사의 존재는 물론 직업으로서 기자의 존재 가치와 이유가 사라질지 모른다.

기자를, 비슷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구별하는 것은 그들의 윤리적 행동과 책임성, 투명성, 객관성, 프로페셔널리즘이다. 그것은 기자교육에서 비롯된다. 미국 시카고의 한 언론사 벽에는 “만약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것을 확인해라”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교육받고 훈련된 세대의 언론인들 머리에 각인된 회의적 정신과 조심성이 오늘날 기자들에게서는 사라졌다. 사실, 조직된 ‘제도언론(institutionalized press)’의 기자들도 제대로 교육받았다고 하기 어렵다. 이른바 자칭 기자들의 경우 저널리즘 가치와 기준에 대해 어디서 어떻게 교육받을 수 있을까? 교육의 부재는 뉴스의 판단에서 책임성과 조심성 부재로 귀결된다. 기자의 특성이라 불리는 오만과 편견을 범람케 할 뿐이다. 뉴스의 수준과 기자의 이미지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결과다.

현재 한국 언론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매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와 ‘뉴스’에 대한 독자와 시청자들의 가치판단이 흐려지면서 언론에 대한 인식수준도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전통매체, 즉 조직된 ‘제도언론’의 기자나 언론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칭 기자 또는 언론인과 어떻게 다른지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기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기자의 명예와 자존심에 다름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정의는 정부 정보에 대한 접근, 법정 취재 등과 관련해 취재와 보도 활동을 규율하고 제한하는 각종 법적·제도적 장치에 어떻게 대처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한국 기자들이 ‘기자’의 의미와 역할과 기능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폐쇄적이면서 내부갈등으로 얼룩진 기자문화를 극복하고 동질성과 유대의식을 공유하는 지름길이다. 기자들이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직업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3. 도를 넘은 상호비판


“기자들은 이중 기준을 갖고 있다. 남을 신나게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예민해 비판을 받아들이길 꺼린다.”

“언론인은 피부가 두꺼운 것이 아니다. 아예 피부가 없다.”

“모든 사람을 비판하는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전혀 영향받지 않는 기자들의 특성에는 작가나 시인 등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외국의 저명 언론인들은 비판 수용에 지극히 인색하거나 비판에 개의치 않는 기자들의 무신경을 질타했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인이자 철학자인 월터 리프먼은 “언론에 대한 활발한 비판은 언론의 복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언론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호비판(mutual criticism)’은 부부싸움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공개적으로 이뤄질 경우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언론에 관한 한 훌륭한 비평가는 외부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프먼의 언급은 ‘허친스 보고서’에 대한 응답이었다. 1947년 시카고대학 총장이던 로버트 허친스가 이끈 ‘언론자유에 관한 위원회’는 책임 있는 언론이 되기 위해 “언론인들이 활발한 상호비판을 벌이기를 권유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리프먼은 오히려 “허친스 같은 인물이 훌륭한 언론비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위원회의 권유가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는 언론의 상호비판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리프먼이 언론끼리의 비판을 부부싸움에 비유한 것은 오늘날 한국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언론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너무나 당연하다. 언론끼리의 상호비판도 건강하고 책임 있는 언론을 위해 필요하다. 기자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않는 경직된 태도는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려온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상호비판은 정도가 지나치다. 건강한 비판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상호비판이 명예훼손 소송으로 이어질 정도로 극단적인 경우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언론 대 언론의 명예훼손 소송은 1992년 첫 사례가 있으나 그때까지는 대단히 예외적인 것이었다. 소송이 본격화한 것은 1999년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세무조사 이후였다. 2005년까지의 20여 판례를 보면 대부분 몇 개 특정신문사 간의 소송 아니면 그 신문사들과 2개 특정방송사 간의 소송이 대부분이다.

언론사간의 상호비판 보도는 상시적이면서 체계적인 언론의 감시·비판이라는 측면에서 보도의 책임성을 높인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경쟁언론사의 보도에 대한 왜곡되거나 편협한 시각에 기초한 분석과 비판, 때로는 악의적 비판으로 언론사와 기자들 간의 불신과 대립을 격화시키고 독자나 시청자의 언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역시 법적 소송으로 귀결되는 경우다.

개인이 언론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반론이나 반박 등 대항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직자 등의 언론 상대 소송을 걱정하는 것은 언론보도에 대한 위축효과가 심각한 탓이다. 한 판사는 언론사간의 명예훼손 소송은 단순히 사인이나 공직자 등 공인이 제기하는 명예훼손 소송보다 위축효과가 훨씬 커 헌법상 보장된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남을 비판하는 자유를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지나칠 경우 스스로 매우 유용하고도 무서운 반박수단이 된다. 위의 법관은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밝혀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언론사나 언론인이 다른 언론기관에 제약을 가하기 위해 자신의 언론을 이용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특정언론사에 대한 악의적 비판보도에 관한 정당한 판정은 수요자인 독자나 시청자에게 맡김이 타당하다. 부적절하거나 터무니없는 비판은 수요자가 외면할 것이며, 해당 언론사는 결국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이다. 언론사간의 다툼에 법원이 관여하고 개입하는 폭은 가능한 한 좁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동업자 간의 경쟁은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지, 그것을 법정다툼으로 끌고 가는 것은 결국 외부세력의 개입이라는, 언론자유의 원칙에 어긋나는 결과가 된다.

미국에서는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사를 공인으로 보고, 원고가 입증 책임을 지는 ‘현실적 악의 원칙’을 적용한다. 그러니 언론사가 원고일 경우 승소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런 제도적 장치 때문이 아닐지라도 미국 언론문화에서 언론사간의 소송 남발은 상상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당파적 언론이 보편화된 유럽에서조차 이념대결 끝에 명예훼손 소송이란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한국의 언론간 소송 현황은 매체별, 언론사별 갈등이 얼마나 첨예한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리프먼이 말했듯 누구라도 부부싸움을 바깥에 드러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법정에서 그 싸움의 옳고 그름을 가리겠다는 것은 웬만한 감정의 분출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만큼 한국 언론인 간의 감정의 골이 깊은 것이다.

이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외부요인으로는 언론이 태동한 구한말부터 시작된 한국사회의 험난한 정치역정을 들 수 있다. 굴곡진 정치사는 기자들이 이념적 편견에 매몰되도록 만들었다. 내부적으로는 한국 기자들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자란 어떤 직업이며,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졌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식을 못하기 때문에 기자의 동질성과 유대의식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필요성조차 잘 못 느끼고 있다.


4. 동질성과 유대의식의 가치


1934년 미국 변호사협회는 모든 법정에 카메라와 다른 전자장비의 사용을 금지하는 ‘캐넌 35’라는 규정을 채택했다.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비행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을 유괴·살해한 브루노 홉트만 재판이 계기였다. 이 세기적 사건에 몰려든 세계 각국 기자들의 무도한 취재행위를 통제하다 못한 판사가 일체 사진촬영을 금지한 것이다. 이에 변호사협회는 ‘캐넌 35’를 만들었으며, 미국 대부분의 주가 이 규정을 채택하거나,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주라도 카메라 등의 금지를 실행했다.

이 규정이 전면적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50년 이상이었다. 현재 미국의 50개 모든 주에서는 법원별로, 사안별로 차이는 있지만 텔레비전 카메라 등의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한 언론법 교과서는 “언론의 40년 투쟁의 결과”라고 표현했다. 2차대전 후 촬영장비가 획기적으로 발전하자 미국 기자들은 본격적으로 규정의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자협회 등은 법원에 끈질기게 청원하고 파일럿 실험 등을 통해 카메라가 재판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기자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배심원 방이나 연방법원의 재판을 촬영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미국 법원은 기자들의 혼잡이 재판을 방해한다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취재나 보도를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과 기자들은 상당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20여개 주는 기자­변호사­법관이 합의를 통해 형사재판에 관한 정보제공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정보공개를 위해 언론자유, 자유언론이 존재한다고 한다. 정보공개법은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다고 감히 이야기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느냐, 기자들에게 조사권이나 수사권이 없는 마당에 어떻게 정보를 획득하느냐, 그런 제도적 장치의 확립 없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언론이 봉사하고 자유언론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과연 성립하느냐 등의 반성이 1930~40년대 미국 언론인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ASNE(American Society of Newspaper Editors)라는 미국신문편집인협회와 한국의 관훈클럽과 비슷한 Sigma Delta Chi 같은 언론단체, 명망 있는 기자들이 정보공개법 추진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20년에 걸친 이들의 노력이 보태져 1966년 정보공개법이 만들어졌다.

미국 정부는 1983년 그라나다를 침공하면서 기자들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언론보도 때문에 패배했다는 베트남전쟁의 악몽 때문이었다. 이에 기자단체와 언론사는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국방부와 기자들은 ‘사이들(Sidel) 위원회’를 구성, 풀기자제도를 만들었다. 2차 걸프전 때의 ‘임베딩 프로그램’도 취재통제에 대한 기자들의 반발에 따른 협상 결과였다.

이 같은 사례는 기자들이 공동대응을 통해 취재를 제한하는 각종 법과 제도, 공권력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 기자들은 수정헌법 1조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지만 ‘기자의 특권’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나 대통령 등 공권력의 힘 앞에 수없이 좌절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끈질긴 집단행동을 통해 취재의 장벽을 제거하거나 완화시켜 왔다. 나아가 미국 사회에 기자의 존재이유와 정당성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들은 폐쇄적인 기자실의 권위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기자의 힘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취재의 장벽 앞에 이념을 따지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는 교육과 논의를 통해 높은 수준의 동질성과 유대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잘 활용하고 있다.


5. 벽을 넘어서


언론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 언론이 단순히 자유로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론은 예외적이고 뛰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생명력 있는 언론이 점점 붕괴해 가는 절망의 시대에 경쟁력, 신중함, 책임감, 성실성, 독립성 같은 뛰어난 태도와 품성, 능력을 지닌 기자들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기자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며,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한국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언제까지 서로 극악하게 싸울 것이냐고. 수많은 법과 제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가로막고 있고, 기자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으며, 급기야 언론산업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참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물 시점이다. 서로 힘을 합쳐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뛰어난 언론을 만들 때다.



대표토론자 토론


사 회:핵심적인 내용, 좋은 주제발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일정은 4시 반까지 토론자 토론이 있고 간단히 커피 브레이크한 다음 여기 계신 분들 다 토론하는 종합토론이 있겠습니다. 그래서 4시 반까지 한 50분 남았으니까 네 분 토론자께서 7~8분, 길어도 10분 안쪽으로 각각 토론해 주시고 그것에 대한 손 교수님의 답변이라든지 토론자간 상호 토론이 있으면 좀더 하겠습니다. 그 다음 2부 토론에서는 여기까지 오셨는데 한말씀도 안 하고 가면 너무 섭섭하니까 제가 오른쪽부터 하든지, 왼쪽부터 하든지 2분씩 발언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2부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토론자 토론은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혜승 KBS 해설위원, 김의겸 한겨레신문 문화편집장, 이상용 MBC 보도국 부국장 순서로 하겠습니다. 먼저 김진 위원께서 토론해 주시겠습니다.


김 진(중앙일보 논설위원):먼저 손태규 교수님의 한국 언론의 분열상에 대한 우려, 그리고 한국 언론의 미래를 위해 분열상 치유가 있어야 된다는 관심 어리고 열정적인 지적 잘 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상당부분 현재 한국 언론계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원인을 진단하는 것과 개선책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는 제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저 몇 가지 제 의견을 얘기하고 그리고 오늘 우리 토론회의 주제인 ‘벽 허물기’에 관한 몇 가지 제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언론에 대한 국민, 독자, 소비자의 신뢰 부분을 말씀하셨고, 한국 언론이 상당히 그런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얘기했는데 언론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부 기자를 오래 했습니다만 지금도 정치담당 사설을 쓰면서 우리 논설위원들이 고민하는 것은 양비론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비론은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사안사안마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며, 그것을 한국 언론의 문제에도 적용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설위원으로서 저는 많은 국민과 독자가 언론에서 자기의 삶의 길을 찾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수없이 많은 독자가 신문사에 자신들의 그런 반응을 전해 옵니다. 좋은 정보를 줘서 고맙고 바른 지적을 해줘서 고맙고 또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줘서 고맙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물론 일부는 명예훼손을 제기하기도 하고, 오보에 항의도 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아직도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중요하고 합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얘기하기보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에 대해서 A언론은 이렇게 보고, B언론은 이렇게 보고, C는 이렇게 보는데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서 B가 신뢰를 저버렸다든가 C가 신뢰를 저버렸다든가,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저는 객관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기자의 정체성 문제에 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면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그래도 신문의 공기적 역할을 해보고자 언론사에 입사합니다. 과거 제가 젊은 시절에 뛰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사명감을 가지고 그래도 신문기자로서 내가 단순한 월급쟁이에 머무르지 않고 어쨌거나 언론이 가지고 있는 역할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언론이 가지고 있는 역할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인식과 상당히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많은 기자들이 뛰고 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정체성을 잘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기사 한 줄을 고민하고 많은 방송기자들이 리포트 한 줄을 고민하고… 이렇게 현장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자 개인의 정체성 위기가 지금 한국 언론이 가지고 있는 분열상의 원인이라고는 진단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언론소송 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 언론에 있었던 소송문제는 대부분 어떤 언론사와 관련된 어떤 사건에 관한 잘못된 보도 또는 그 언론사가 했던 보도에 관한 어떤 명예훼손적 지적, 이런 것과 관련해서 소송이 진행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이 그런 이슈가 되는 사건에 대해서 판결을 내렸습니다. 어떤 언론사에 관련된 무책임한 보도가 있었을 경우 피해 언론사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법원이 그 소송문제에 대해 명확한 판결을 내려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또한 잘못을 교정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태규 교수께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한국 언론이 소송사태를 한 차원 뛰어넘기 위해서는 법원 판결을 교훈으로 삼아서 오보나 무책임한 명예훼손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 문제의 해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주 작은 중소기업도 그런 것들을 아는데 적어도 평생을 사실보도에 매달리는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에 대해서 오보나 명예훼손적 보도를 한다면 누워서 침 뱉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한국 언론은 그 단계를 뛰어넘어서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오늘의 주제인 ‘언론의 벽 허물기’에 관한 저의 진단과 처방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언론계가 공동으로 시대와 장소 구분 없이 지향해야 되는 언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라든가 언론의 자유, 인권 또는 시장경제 발전, 국가의 정체성, 이런 것들은 언론이 시대, 장소, 업종 구분 없이 지향해야 될 가치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언론은 그 공통의 가치에 한참 떨어진 곳에서 분열상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가치에 충실하고 그것이 제1의 가치가 된다면 있을 수 없는 분열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이냐? 저는 4가지 정도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이념의 바람이 언론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념이라는 벌레가 언론계라는 열매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적인 사안, 정당, 또는 대통령후보, 이런 사람에 대해서 언론마다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미국 언론은 자기들이 지지하는 대통령후보를 공개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진보나 보수, 확연히 다른 성향을 노출하지 않습니까? 정치현상과 특정인물에 대한 시각이 다른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맨 처음 말씀드렸던 언론이 지향해야 되는 최고의 가치에 관해서는 시각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념이 언론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린 이념적 편향이 언론적 가치를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광동제약에 대한 이상한 시민단체의 불매운동 협박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또 어떤 그룹의 다른 몇 개 회사에 대한 제2의 불매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것들은 언론사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이념적 편향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언론 전체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열린사회에 대한 공격이고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에 대한 테러행위 아닙니까? 이것은 진보든 보수든 아무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테러나 협박에 사회가 흔들리면 그 공동체는 영혼이 없는 사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지킨다는 공통의 가치로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이 규탄해서 이런 현상은 발을 못 붙이게 해야 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구태여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업종간 이기주의입니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신문과 방송 간의 이기주의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디어관련법을 둘러싼 분열상입니다. 언론에 대한 독과점 또는 권력의 언론통제, 언론자유에 대한 훼손 같은 논의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논의만큼 많이 실질적으로 업종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현상이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미디어관련법에서 그런 업종이기주의가 어느 쪽이 더 강한지는 제가 구태여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세 번째는 언론사의 개별적 이기주의입니다. 이것은 신문은 신문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각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자사적 이기주의입니다.

몇 해 전 특정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언론사도 탈세행위나 범법, 비리행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특정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어떤 정권적 차원에서 언론탄압적 요소를 띠고 있다면 언론사들이 손을 잡고 힘을 합쳐서 공동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에는 그런 경우 순망치한(脣亡齒寒)을 걱정해서 공동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아주 작은 자사이기주의에 빠져서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사례가 있었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언론인들의 샐러리맨화입니다. 물론 현실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사회적인 스트레스, 이러한 것들을 우리 언론인이라고 해서 겪지 않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더라고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언론인이 가져야 되는 어떤 사회 공기적 역할이나 기능에 관한 의식이 더 약해지는 것 아니냐, 그래서 쉽게 얘기하면 먹고살기 바쁜 관계로 그런 의식이 점점 엷어져서 ‘언론간 벽 허물기’에 관한 문제의식들이 점점 적어지는 것 아니냐, 그리고 자기가 속한 회사의 노선에 자기 자신이 계속 함몰돼서 이런 문제는 생각할 만한 시간도 없고 고민도 없고 고민할 만한 여유도 없는 것 아니냐, 이런 샐러리맨화가 저는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 네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 회 : 시간이 너무 길어졌어요. 2배나 하신 것 같아요. 다음 분들은 10분 안쪽으로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정혜승(KBS 해설위원):벽을 허물자는 토론회를 하신다고 해서 상당히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기자생활한 지 한 25년 되는데 그동안 있어 오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했던 적이 사실은 거의 없지 않았나? 그런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이것이 미디어관련법 처리를 앞두고 열린 토론회라서 상당히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아닌가라고 했지만 손 교수님 말씀대로 좀더 허심탄회하게 이 자리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다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하는 차원에서 말씀드린다면 왜 어디에서부터 이 문제가 일어나게 됐는가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시대적인 상황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와 소통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냐? 저널리즘의 위기 말씀하셨는데 상호간 신뢰가 부족한 것이 아니겠느냐? 시청자와 독자 얘기도 하셨는데 매체간 서로 신뢰하는 마음이, 동업자로서 신뢰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아니겠느냐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김진 위원께서 매체간 이기주의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상호 비판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는 겁니다. 동업자간에 예를 들면 지금 신문 경우는, 저는 방송사에 있기 때문에 방송사가 출입처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출입처라는 개념에서 기자들이 출입하고 저희는 응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민 끝에 만들어낸 게 미디어를 비평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저희도 나름대로 비평한다는 그런 맥을 갖게 됐는데요, 이러한  차원에서 하다 보니까 이것이 어떤 신뢰라든가, 김사승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데 사교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아까도 말씀하셨는데 언론사간 소송문제, 손 교수님께서도 참 있을 수 없는 문제라고 얘기하셨는데 사실은 지금도 소송이 제기 중인 사건이 있습니다. 최근 인구에 회자됐던 사건이기도 한데요, 저희도 10억이 넘는 소송금액이 지금 소송이 걸려 있는 상황이고 해서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 벽을 어떻게 허물 것인가 하는 데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 갈등과 반목을 어떻게 풀어낼 것이냐 했을 때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각 매체가 성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우물에 갇혀서 자기 안에서만 고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우리는 소통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모두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리고요, 아까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권력에 공동대응하고 투쟁하자, 이 부분에서 기자들 간에는 솔직히 공동대응하고 투쟁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실 없애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힙을 합쳐서 투쟁해 왔는데 이것이 외부에는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언론에 대한 감시·비판을 외부인이 하도록 하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인 해결방법이 있는지 손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 기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포털의 권력화라고 생각합니다.

1인 미디어시대 블로거 얘기도 나왔고, 스트리트 저널리즘 얘기도 해주셨는데 과연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언론사 스스로가 종속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서 노출횟수를 늘려서 매체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예를 들어 상대방 사이트를 링크해 주려는 그런 배려는 어느 언론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포털의 권력화를 막기 위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노력할 것이고, 이 현실에 대해 우리는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도 좀 활발할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고, 벽을 허물자는 구체적인 방안에 있어 어느 언론사가 먼저 이것을 같이 동참해서 상대 경쟁매체를 링크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작은 노력… 사실은 상당히 큰 노력입니다. 그게 돈이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다고 하면 시청자나 독자들의 어떤 반목 내지 불신도 상당히 녹아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 회:감사합니다. 시간 아주 잘 맞추셨습니다. 우리 김진 위원하고 정 위원님은 얼마 전까지 라디오에서 호흡을 맞춰서 인기프로를 하시던 분들이십니다. 김의겸 편집장께서 토론해 주시죠.


김의겸(한겨레신문 문화편집장):오늘 주제가 벽을 허물자인데 제 생각에는 언론사간 상호비판이 불가피한 단계로 이미 진입한 게 아닌가? 그리고 구조화된 단계로 진입한 게 아닌가? 이런 느낌이 듭니다. 87년 이후 한겨레를 비롯한 신생 언론사들이 생기고 대항언론, 대항매체라는 개념이 형성되면서 언론사 상호간에 견제와 비판이 활성화된 측면이 있을 테고요, 두 번째로는 한국 사회 대중의 조직화율이 낮은 것도 원인이 될 겁니다. 조직화 수준이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낮습니다. 정당도 우리 사회의 정당은 당원에 기반한 정당은 아니죠. 그리고 노조도 조직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굉장히 떨어지고 그래서 어떤 무차별적인 대중을 상대로 한 선전전, 그 효용성이 훨씬 더 커진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유야 제가 분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몇 가지 원인에 의해서 언론사간 상호 비판과 견제는 불가피하고, 그렇다면 그걸 인정한 상태에서 얼마나 건강하게 그리고 생산적으로 상호 비판과 견제가 이루어질 것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우리 논의가 좀더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첫 번째 우리가 지켜야 될 원칙이 자사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최대한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조심하고 삼가는 태도를 보이는 게 대중의 신뢰를 받는 데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법원을 출입하다 보니까 판사들에게는 회피의 원칙이라는 게 적용되더라고요. 자기가 아무리 공정한 판사라고 할지라도 어떤 사건이 자기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을 경우는 스스로 그 재판을 회피하는 원칙입니다. 우리 언론사도 이런 회피의 원칙을 지켜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는 상호비판이 불가피하고 그 싸움이 격렬해질 때 최종판단은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고민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손 교수님이 소송의 폐해에 대해서 말씀하셨으니까 결국은 기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 여부를 떠나서 기자의 가장 공통된 가치인 팩트 앞에 얼마나 겸손한가로 맞춰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팩트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우리들 사이에서 우리가 겉으로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팩트가 있습니다. 스스로 다들 느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팩트 앞에 겸손해질 때 상호비판이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존과 공생의 개념인데 우리가 87년 이후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많은 정치적 경험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정권교체라고 할 수 있는데 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의 경험이 있습니다. 민심의 바다가 굉장히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현상을 다루는 기자는 그 민심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잎사귀 하나도 되지 않는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런 점을 인정하고,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절멸시킬 수 있는 그런 사회는 아니다. 서로 49:51의 싸움인 거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압도해버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방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하고 서로 인정할 수 있으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랍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최소한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가지는 동질감과 유대감을 확인하는 차원에서라면 상호비판을 하면서도 절제와 품격이라고 할까요,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 회: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상용 부국장께서 해주시죠.


이상용(MBC 보도국 부국장):이런 토론회가 지금 있는 게 만시지탄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는 앞서 말씀하신 분들과 같은 결론이지만 좀 원론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출입처 선배가 소개를 해줘서 결혼도 했고, 회사 선후배보다는 타사 선후배들과 더 가까이 지냈던 좋은 경험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우리 기자사회, 언론사회에 어떤 유대감이라든가 동질성을 느끼는 것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같은 훈련과정을 거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사 선배를 선배라고 부르고 타사 후배에게 말을 놓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직업과 다른 점은 ‘사실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기자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공통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을 딱 한 가지만 든다면 그것은 ‘사실추구’입니다. 이 때문에 기자사회가 존재하는 것이고, 기자간 동류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연결고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동아일보 기자가 생각하는 사실과 MBC 기자가 추구하는 사실은 같다는 의미로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기자가 지향하는 목표는 자기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가치라든가 보편적 정의라든가 이런 가치란 점에서도 공통적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 언론은 일반 독자나 시청자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받기도 하고 실망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언론이 저널리즘의 본질적인 가치를 소홀히 해왔다는 것입니다. 기자의 본업은 사실추구인데, 이 사실추구보다는 조금 방계적인, 보조적인 일에 더 치중한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사실을 충분히 취재한 기사보다는 자극적인 언어가 높이 평가받는 분위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취재가 부실한 가운데 지나친 비판을 하다 보면 감정을 상하게 됩니다.

기자들이 사실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을 완벽하게 취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충분히 취재했더라도 겸손하게 비판해야 하고, 구조적이고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지 않고 특정 개인과 집단의 명예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 언론사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또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가운데 여러 가지 상황적인 걸 가지고 기사를 쓴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가 사실을 추구하는 어떤 직업으로서는 매우 조심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이런 언론사간 반목도 본업에 충실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됐느냐? 과거 독재시대에는 언론계가 공동의 ‘적’이 있었습니다. ‘독재’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상당히 유대관계가 살아 있었는데 그 뒤로 민주화되면서 상호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또 언론사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권력이라든가 시민단체라든가 각종 단체로부터 영향받고, 또 사주가 있는 회사든 사주가 없는 회사든 경영적인 압박 혹은 정치적인 외부영향을 받게 되면서 보도국과 편집국에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처음엔 눈치를 보면서 보도국과 기자들에게 영향을 주다가 갈수록 심해져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도국과 편집국, 기자들이 영향받다 보니까 이제 이런 토론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저의 처방은 이렇습니다. ‘편집국이나 기자들을 좀 보호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은 관훈클럽이나 한국기자협회 같은 저널리스트 단체가 이런 세미나라든가 교육을 통해 저널리즘의 윤리와 원칙 같은 것을 전파하고 언론계에 그런 분위기와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윤리와 문화의 힘’이 법과 제도보다 훨씬 강하다고 믿는 편입니다.


사 회:여러 가지 좋은 제안과 허심탄회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토론은 원래 뜨겁게 논쟁을 붙여야 되는데 굉장히 조심스럽네요. 뜨겁게 토론하다 또 반목이 생길까 걱정됩니다. 말씀은 조용하지만 그래도 하실 말씀은 다 하시고 있는 걸로 알겠습니다. 손태규 교수님께서 그동안 나온 것에 대한 종합답변이라든지 아까 못다 하신 말씀이 있으면 5분 정도 하고 다른 토론자들한테 2분 정도 시간을 드리고 토론회 1부를 끝내는 걸로 하겠습니다. 손태규 교수님 말씀하시죠.


손태규: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두서없이 간략간략하게 끊어서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외부에서 갖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매체별로 다르고 그것이 지극히 낮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현실인식이 조금 부족한 것 아니냐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단히 심각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 제가 이야기하는 기자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기자가 열심히 뛰고 하는 그런 방법론적, 기술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자의 정체성은 기자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무엇이 다른가? 또는 스스로 기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제도권의 기자, 제도적 기자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죠. 그것은 무슨 얘기냐 하면 법적·제도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 그 다음에 저널리즘이 예술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여러분이 하나의 저널리즘 예술가라는 인식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기자의 정체성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좀더 정확하게 또는 길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언론소송 문제입니다. 영국 학자들과 언론인은 영국 언론을 4부가 아니라 4류부라고 그럽니다. 그 단적인 예가 뭐냐 하면 영국은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너무나 쉽습니다. 굉장히 엄격하게 처벌합니다. 언론 잘못하면 혼냅니다. 그래서 영국 언론인들이 미국을 가장 부러워하죠. 반대로 미국은 언론에 소송을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으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 들어보셨겠지만 현실적인 악의 원칙이라는 게 언론에 대한 소송을 제대로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연방대법관의 걸작입니다. 소송이 많아지면 그만큼 언론에 대한 위축효과가 크고, 여러 가지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잘못하니까 소송을 해야 된다는 논리는 언론자유에 관해서는 상당히 반하는 얘기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 다음에 상호비판 말씀하셨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판이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천박함을 그대로 노출합니다. 언론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제대로 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사실상 없지는 않겠죠. 굉장히 부족하다고 봅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상호비판은 다들 말씀했지만 비판의 품위가 없습니다. 상호비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품위를 지켜 달라. 냉소와 회의는 다른 겁니다. 회의를 하되, 냉소적으로 하지 말라, 이런 얘기죠. 그것이 비판의 품위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리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끝내겠습니다.

  

사 회:토론자 중에서 말씀하시죠.


김 진:언론에 대한 신뢰가 심각할 정도로 낮다, 이런 지적들을 외부 학계 전문가나 이런 분들이 하시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그 부분은 굉장히 객관적이고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문이나 방송과 각 언론매체마다 구독률과 열독률이 다 다르고 시청률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한테 언론에 대한 당신의 신뢰도는 어떠냐고 물어볼 때 그걸 정교하게 물어봐야 됩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A신문 독자라면 그 사람이 적어도 2, 3일에 한 번은 A신문을 볼 테니까 A신문에 어떤 기사가 났고 그 기사가 어느 정도 정확하고 올바른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 ‘당신이 보고 있는 신문이나 당신이 보고 있는 방송에 대한 신뢰도는 어떠냐’ 이렇게 물어봐야 객관적인 데이터가 잡히는 거지, 길 가는 사람 붙잡아놓고 예를 들면 ‘당신은 언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신뢰도가 어떠냐?’ 이렇게 물어본다면 그 사람은 언론이나 신문·방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기의 불쾌한 추억을 떠올려서 매우 부정적으로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국민들한테 제대로 신뢰받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보다 객관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시간을 조금만 허락해 주신다면 방송께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뭐냐 하면 미국 NBC방송에 ‘Meet the Press’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워싱턴특파원 할 때 종종 보던 프로인데 이것은 일요일 오전 9~10시에 1시간 동안 합니다. 역사가 61년 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톰 브로커 앵커도 이 프로의 사회자로 활약한 적이 있고, 케네디 대통령은 이 프로를 가리켜 미국의 61번째 주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프로에 대한 신뢰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프로는 그때그때의 정치를 포함한 뉴스메이커 한 사람을 초빙해서 어떤 때는 앵커가 단독으로 인터뷰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회자가 사회를 보는데 패널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인데 패널을 3~4명, 4~5명으로 구성하는데 신문과 방송이 골고루 참여합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공영방송 PBS, 그 다음 3대 네트워크 방송, 이런 방송에 아주 백발을 휘날리는 원로 또는 중진언론인 4~5명이 패널로 참석해서 사회자의 중재하에 그 뉴스메이커를 상대로 정말 언론을 대표해서 언론이 가지고 있는 공익이라는 잣대로 그 프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프로가 61년간 유지됐다는 것은 미국 사회에 그 프로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고 가치가 있는지 증명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우리나라 TV방송에서는 이런 프로가 불가능합니까? 벽을 허물려면 그런 것부터 허물어서 신문, 방송 언론인을 조합해서 장관이나 고위정치인 불러다가 언론의 이름으로 매섭게 따지는 겁니다. 신문과 방송이 서로 협조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좀 고민해 주십시오. 이상용 국장님에게 부탁드립니다.


이상용: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좀 힘이 없습니다.


김 진:결정하실 수 있는 위치로 조만간 가시길 바랍니다.


정혜승:방송에 부탁하셨는데 사실은 신문에서도 그렇게 해주실 수 있죠. 지금은 인터넷으로도 방송을 다 하고 계시니까요. 그런 기회를 공히 서로 넓혀주시면 좋겠고, KBS 같은 경우는 라디오를 통해서 김진 위원님 출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TV 쪽으로도 확대할 수 있도록 제가 높은 분들께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사 회:오늘 민원 다 했네요. 자, 그러면 김 위원님, 이상용 부국장님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이상용:금방 김진 위원께서 말씀하셨는데 정말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TV를 보면 중간에 앵커를 놓고 신문기자와 방송기자가 패널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웬만하면 하나씩은 있는 알고 있습니다. BBC월드에도 있고, 호주 ABC방송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인들도 앞으로 반목과 질시를 없애고 서로 높여줘야죠. 그래야 우리가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언론인간 갈등이 있다 보니까 우리가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그만큼 대접을 못 받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 회:토론자들의 토론이 대충 끝난 것 같은데 혹시 더 발언하실 분 있습니까? 없으면 손 교수님의 주제발표에 대해 질문 한두 개 받겠습니다. 질문 없으신가요? 질문 없으면 첫 번째 세션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부 종합토론


사 회:2부 토론회 시작하겠습니다. 아까는 카메라 사용 때문에 커튼을 닫았는데 저쪽에 앉아 계신 분들께는 좀 죄송하지만, 이제는 열겠습니다. 풍광이 좋아졌습니다. 2부는 여기 계시는 분들이 그래도 제주도에 오셨으니까 언론문제에 대해서 2분 정도 한말씀씩 하는 것으로 하고 시간이 남으면 추가토론을 하겠습니다.

오늘 토론회가 일부 보도도 되겠지만 저희가 속기록으로 정리해서 관훈클럽 회원분들한테 메일로 보낼 겁니다. 저희 회원이 970여명입니다. 거의 1,000명의 언론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읽으면 굉장한 독자입니다. 그리고 《관훈저널》에도 전문을 싣고, 홈페이지에도 올릴 겁니다.

발언하실 때는 소속과 성함을 분명하게 얘기해 주셔야 나중에 사무실에서 속기록을 정리할 때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 점 부탁드리고요, 제가 봐서 왼쪽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안(KBS 문화과학팀 기자):오늘 발제하시고 토론하신 내용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해본 소감이라고 할까 하는 것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 사회에 이념적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해졌고 오늘 토론회 주제가 된 언론계 반목 혹은 갈등 이러한 현상도 결국은 각 언론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반영해서 여론의 시장에 자기를 내놓고 시청자나 독자에게 하려고 하는 그러한 행위들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선의로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보고요, 그래서 이러한 여론시장에 나와 있는 다양한 여론문제보다는 기자사회에 있는 세대간 갈등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해봅니다.

지금 공영방송 KBS 내에서 이러한 세대간이나 이념적 갈등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으며, 그것이 우려되는 현상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요, 거기에다 자신이 갖고 있는 이념을 실천하려고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언론에 들어와 일하는 기자들이 저널리즘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이나 원리 또 그 가치에 대해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주호(연합뉴스 미디어과학부 차장):저는 연합뉴스에서 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요즘 언론계 분열상황을 보면서 고민이 무척 많습니다. 기자로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기자들은 취재와 기사쓰기를 떠나 각자 소속된 회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있거든요. 연합뉴스는 미디어 영역에서 중립성에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는데 여기서 저희들은 좀 좌고우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훈클럽이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자리를 빌려서 선배님들한테 좀 떼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왜 이런 걸 저희 책임으로 쭉 미뤄뒀는지 좀 원망스럽기도 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까 김의겸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언론간 상호비판이 구조화된 부분도 있고 불가피한 측면도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이게 감정적인 선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오늘의 현상이 통과의례가 되고 나중에 다시 좀 성숙하고 원만한 관계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서로 자제하는 마음이 우선돼야 할 것 같습니다.


성호철(조선일보 산업부 기자):말씀하신 것 잘 들었고요, 서로 다른 의견 같았지만 대부분 다 연관되는 것 같고요, 손 교수님 말씀이나 김진 위원님 말씀이나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사실은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서 기업으로서의 신문사, 방송사 숫자가 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시장경쟁 논리가 점점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일본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신문이 우리보다 훨씬 많을 것처럼 다들 알고 있지만 실제로 전국을 커버하는 전국지라고 할까 그런 건 사실 저희가 알고 있는 요미우리, 아사히, 니혼게이자이, 마이니치 등 4개 정도밖에 없고 다른 신문은 지역지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작은 경제규모 안에 너무 많은 매체가 있고 많은 매체들이 각각 기업으로서의 생존까지 걸리다 보니 각종 문제에서 절제보다 치열한 경쟁이 항상 좀 앞서가는 현상이 있지 않나 생각하고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해봐도 사실은 이게 너무 근본적인 부분이라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민만 해볼 뿐 답은 없습니다.


김수형(SBS 문화부 기자):오늘 토론주제는 그동안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던 부분이고 방송사 기자로 있으며 최근 노무현 대통령 서거건, 작년의 쇠고기문제 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SBS 내부에서도 저희 동기나 선후배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선배들께서 말씀하시는 것 듣고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아직 정리가 잘 안 되는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어떤 사안을 다룰 때 한국 언론이 좀 솔직하지 못했던 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기계적인 중립 내지는 공정성을 어떻게 보면 좀 과장한 면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공정하지 않게 보도하면서도 공정한 것처럼 사람들을 호도한 면도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좀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저도 말씀 들으면서 계속 고민되고 여전히 혼동되기는 하는데요,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솔직하게 보도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전병선(국민일보 문화부 기자):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희 회사의 경우 지금의 언론계 현상을 좀 떨어져서 관망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예전에는 민주화라든가 이런 여러 가지 공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언론이 같이 투쟁하며 어떤 반목이나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지금은 공동으로 투쟁해야 하는 가치 이런 것이 없이 각사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언론계 갈등이 심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각 언론사의 재정적인 문제나 존립문제 이런 것들이 어느 면에서는 최고의 가치로 다가와 있는 상황에서 자사 이익과 관련되는 부분을 주장하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왔다고 봅니다.

요즈음 보면 똑같은 사안이라 할지라도 각 회사들이 보는 시각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 이유는 같은 사안을 각사의 이익에 따라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가지고 다른 언론사를 비판하는 것은 페어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좀 있고요, 그러니까 각 언론사가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더 낫지, 남의 의견을 묵살한다든가 하는 것은 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이번 토론회를 통해서 갖게 되어서 상당히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동현(문화일보 문화부 기자):아까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선배들께서 하신 말씀이 공감 가는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언론 내부 반목의 벽을 허물자고 했지만 다들 벽을 세워놓고 계셨던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좀 많이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생각도 있었습니다. 언론계 위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선배들이 갖고 있는 것과 온도차라고 할까요, 그런 게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체나 혹은 각 언론사를 불문하고 젊은 기자들이 최근에 갖고 있는 고민은 굉장히 큽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고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 또 어떤 식으로 일을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어떻게 보면 절망감도 적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체 크기나 종류에 관계없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주변에 있는 많은 타사 동료들 그리고 우리 회사에 있는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해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게 존재한다, 안 한다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실제 후배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선배들께서 조금 더 그 온도차를 줄일 수 있는 노력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저도 있고요, 최근까지는 저도 주니어 기자라고 선배들에 대한 불만만 많이 얘기했는데 최근 들어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후배들이 갖고 있는 절망감이 오히려 저보다 크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 현재 이런 내부 반목, 벽이라는 것이 아까 여러 차례 얘기가 나왔던 것처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념 내지 사상의 간격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론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만,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준비한 것보다 좀더 건설적이며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는 사실 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선배들 말씀하신 대로 젊은 기자들도 단순히 직업인으로서가 아니고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 언론 그리고 한국 사회 여론에 이바지하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갖고 있는 이런 절망감이 더욱 깊어져서 결국은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저뿐만 아니라 많은 선배들 그리고 언론에 종사하는 여러분이 좀 노력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장재용(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딱히 여기에 대해서 많이 생각은 안 해봤는데, 우리 신문이 뭐 싸우는 신문도 아니고 또 제 출입처가 종로경찰서인데 모든 기자들이 매체 안 가리고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 같은 경우 요즈음 너무 정파적이라는 지적이 일부 있는데 방송은 기본적으로 공공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냥 사실보도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신문 같은 경우는 원래 정파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정파성을 가지는데 문제는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 어떻게 보도하느냐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보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양홍주(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얼마 전 제가 언론계의 이런 현상과 관련한 기사를 쓰면서 교수분들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분들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아까 선배님도 말씀하셨지만 자사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는 기사편집과 서로를 공격하는 보도행태가 한국 언론이 설 자리를 계속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사실 저희처럼 좀 젊은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논의할 것이 아니라 국장 등 좀 높은 선에 계신 선배들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분명히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문제만 제기하고 끝날 게 아니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장우성(한국기자협회 차장):최근에 언론사간 상호비판 광경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실상 좀 불가피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사회분위기와도 무관할 수 없는 문제고 어떻게 보면 최근 들어 우리 사회도 여러 가지 이념적 갈등과 정책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언론사간 어떤 상호비판도 이런 전체적인 사회분위기와 크게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까도 많이 지적들 하셨는데 비판할 때도 어떤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디어끼리 비판하는 걸 보면 상당히 주관적이고 굉장히 감정적인 기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면  좌파언론이라든가 족벌신문이라든가 이런 표현을 쓰는데 이런 표현은 좀 자제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객관적인 사실 이외에 주관성이라든가 어떤 감정이 드러나는 보도는 결국 건전한 상호비판이 아니라 결국 자사이기주의를 위한 거라고 할까요, 그러한 현상은 논쟁의 질을 좀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나 생각하고요, 정리하자면 지금의 시대적인 흐름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 상호비판 이러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 상호비판을 할 때도 어느 정도 서로 품격을 지킴으로써 좀 건전한 논쟁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박태해(세계일보 문화부 차장):언론갈등이라는 게 조중동 신문하고 일부 방송사 또 최근에는 신문 대 신문 갈등이 있는데, 세계일보는 거기서 조금 비켜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얘기를 들어보니까 심각하네요. 아까 발표하신 분 중에 김의겸 선배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가장 가슴에 와닿습니다. 팩트 앞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는데 출입처나 취재 나갈 때 보면 같은 브리핑과 설명을 듣고 같은 기자회견을 듣고 기사를 썼는데 그 다음날 신문을 보면 각자 주제가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일선현장에서 제대로 보고했는데 데스크가 회사 입장이나 어떤 자의적 판단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나 데스크, 경영진이 팩트에 충실할 때 좋은 기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정필(세계일보 사회부 기자):아까 손태규 교수님 말씀하셨다시피 기자에 대한 신뢰도가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부분에 대해 굉장히 공감하고 있고요, 그게 김진 위원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계량적이거나 어떤 정교한 통계를 근거로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 어떤 체감적인 경험에 의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까 이상용 국장님이 말씀하셨다시피 기자들은 사실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언론사가 추구하는 건 좀 정체성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2가지로 정리하면 정치적인 영향력과 또 하나는 이윤추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토론의 주제는 벽이라고 하는데 그 벽이 생기는 지점이 각 언론사가 그 가치를 추구하다가 다투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 언론은 마치 그라운드에서 심판의 옷을 입고 행동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보도되는 것을 보면 결국 각 언론사의 입맛에 맞게 보도하고 그러한 것들이 언론사간 다툼을 증폭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 공감하고 있는데 그 해결방법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고민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자리가 그러한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는 단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필모(KBS 해설위원):앞서 말씀드린 분들이 대부분 다 정리하셨는데요, 저는 최근의 신문이나 방송의 이전투구식 싸움을 경제적 측면에서 좀 찾아봤거든요. 아까 어떤 분이 말씀하셨지만 광고시장은 정체되어 있는데 지금 그 정체된 광고시장을 따먹기 위한 일종의 생존게임 같은 걸 거의 극단적으로 벌이고 있는 상황이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력도 문제지만 자본, 즉 대광고주들의 입김이 직·간접적으로 강하게 작용하면서 이념적으로도 상당히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이런 경쟁이 없어져야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는 문제가 있는데 싸우더라도 적어도 언론이 지향해야 될 하나의 가치, 인류의 어떤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내줘야 되거든요. 예를 들면 20여년 전 6월항쟁 때도 동아나 중앙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제일 먼저 끄집어내서 이슈화시켰고 그것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항쟁이 일었던 것 아닙니까? 아무리 시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인권이라든지 표현의 자유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사실 어느 시각으로 보거나 이념이 어떻든 우리가 적어도 자유민주체제하에서 공존한다면 같은 목소리를 내줘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최근에 보면 상당히 어떤 자의적 해석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난무하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까 이게 갈수록 골이 깊어지고 싸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건전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문제는 모르지만 저널리즘이 지켜야 하고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는 적어도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될 것 같고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어차피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 주면서 경쟁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문철호(MBC 선임기자):아침에 오면서 언론의 벽을 허물기 위해 가는데 벽을 더 쌓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직까지 분위기가 괜찮은 걸로 봐서 이런 자리를 많이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언론사 얘기를 하기보다 저희 회사 얘기를 하겠습니다. 노대통령 영결식, 덕수궁 분향소에 나갔던 후배들한테 들은 얘기입니다. 굉장히 환영받았다고 합니다. 타사 일부 기자들은 신변의 위협까지 받았다는데 저희 기자들은 상당히 환영받으며 취재했다고 합니다. 반면 제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만났을 때는 ‘너희들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상주방송이냐’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정확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MBC가 한겨레, 경향신문과 같이 분류돼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84년 입사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목희 총무님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서울신문하고 같은 카테고리에 있었습니다.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희가 변해 왔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도 언론사가 지나치게 색깔을 드러낸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김민배(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저는 지금 전 세계 언론이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봅니다. 한국 언론도 예외가 아닌데 그중에서도 올드미디어, 즉 신문, 방송, 통신, 잡지 등은 정보전달수단으로 자리 잡은 이래 최대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IT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지금 뉴미디어가 하루 한 개씩 등장하고 있고, 두 번째는 그 뉴미디어가 올드미디어의 기존시장을 사정없이 잠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만 현재 국내 언론시장은 신문의 경우 매년 마이너스 5%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잡지가 마이너스 5% 성장 추세에 들어간 것은 10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자에 들어서는 지상파방송도 마이너스 성장의 트랙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온라인이나 포털, 뉴미디어 시장은 유통정보의 종류에 따라서 매년 10~20%씩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장이 기성언론의 존폐나 구조를 무차별적으로 변경시키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기성언론인이 지혜를 모아야 하고 또 저를 포함한 많은 중진, 원로 언론인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조선일보가 KBS나 MBC 또는 경향신문, 한겨레와 개별적으로 싸워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 등장한 뉴미디어가 섹스나 마약, 도박, 심지어 죽음의 정보까지 유통시키면서 조 단위가 넘는 매출액을 올릴 때 우리는 이런 괴물에 대항하기보다는 우리끼리 싸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하고 싸울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로부터 언론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이런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생각을 모아야 할 때라고 판단합니다. 오늘 관훈클럽이 물꼬를 튼 언론 내부 반목의 벽 허물기 토론회가 이런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손태규 교수가 주제발표에서 지적했듯이 미국 언론이 그런 구조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지도급 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처럼 이번 토론회를 한국 언론이 처한 문제와 해결책을 모색하는 한 단초로 삼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강신철(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 경향신문 상임고문):저는 아까 모두에 말씀드렸는데 다 생각이 똑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뭐 거창한 말씀을 드리기에는 시간도 그렇고 하니까 저는 아주 지엽적이지만 제안을 좀 할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엉뚱하다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는데, 방송과 신문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과 미디어비평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없애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건 그것대로 지켜나가되, 칭찬 릴레이난을 신설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매체 상호간 칭찬하는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36년 전인 1974년 제가 입사했을 때 선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그랬습니다. 그때는 기자들의 벽이 진짜 없었습니다. 자기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출입처 기자들이었고 그 사람들과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어떤 출입처는 매달 한 번씩 만나고, 어떤 출입처는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면서 30년 이상 교류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이가 좋던 젊은 기자 시절에도 한 가지 아쉬웠던 게 있었습니다. 타사 행사를 다른 매체가 보도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 뭐냐 하면 조그마한 화랑에서 하는 전시회는 사진까지 써주면서 어느 신문사나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아주 큰 전시회를 그 정도로 써주는 매체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배들한테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경기단체가 하는 스포츠뉴스는 보도하면서도 다른 언론매체가 하는 큰 야구대회라든가 마라톤이라든가 이런 것을 제대로 보도해주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당시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부에 있다가 문화부로 왔을 때 다른 언론사 문화행사를 크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남들도 우리 신문사 행사를 크게 보도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간혹 반응을 보이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문화부에 오래 있지 못하고 또 사회부로 왔습니다만, 그때 제가 조금 그런 노력을 했던 것은, 여기서 처음으로 밝힙니다만, 좋은 기억으로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여러분이라도 돌아가서 기사를 쓸 때 그런 마음을 조금만 가지고 써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칭찬 바이러스도 좀 퍼뜨리시고 또 타사 행사나 타사의 좋은 일도 똑같이 보도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보니까 일반업체나 이런 데서 신문사 혹은 방송사와 공동주최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는 겁니다. 언론사와 공동주최를 안 하고 언론플레이를 잘하면 여러 매체에 나갈 수 있는 행사가 되는데 어느 한 신문사나 방송사와 공동주최하면 그 언론사에만 보도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론사와 공동주최하는 행사가 줄어드는 거죠. 그런 점에서 언론인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신 여러분부터 그런 생각을 좀 해주시고, 회사에 돌아가셔서 위의 선배들한테도 그렇게 말하고 선배들이 말을 잘 안 들으면 여러분이 간혹 독단적으로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관훈클럽에서 보도를 잘한 사람에게 주는 관훈언론상이라는 게 있는데 화합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한테 주는 상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이것을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회에 안건으로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 말씀 들어보니까 장래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제 연조가 됐을 때는 ‘아, 그때가 참 좋은 세월이었지’ 하는 회고를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준(SBS 앵커):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몇 가지 의견만 말씀드리죠. 아까 토론에서 한겨레 김의겸 부장께서 언론간 상호비판이 구조화된 게 아닌가라는 지적을 하셨는데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언론 내부에서 무리한 비판이 자꾸 악순환되다 보니까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언론 전체 그리고 개개 언론기관, 심지어 기자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워낙 높아진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를 대중이 일방적으로 그냥 받기만 했지만 요즘은 잘 아시다시피 어느 신문이 어떤 보도를 했다, 심지어 어느 방송의 어떤 앵커가 무슨 클로징을 했다, 또 이걸 참 잘했다, 못했다, 이런 것들이 대중의 관심거리가 되고 인터넷을 통해서 숱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높다 보니까 언론도 외면할 수 없고 결국 비판적 경향이 강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단계까지 왔기 때문에 언론이 상호비판을 하더라도 더 이상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곡된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의 한 가지 피해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몇해 전 한 신문사에서 SBS에 고위층 자제가 많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고위층 인사의 이름하고 그 인사 아들딸들의 SBS 사내 직책까지 표로 만들어 보도했는데 저희도 깜짝 놀라고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장관, 국회의원, 법조계 인사 등의 아들 또는 딸이 언론사에 어느 정도 있나 조사해 봤더니 저희는 금·은·동메달 순위에도 못 드는 회사였습니다. 더군다나 그 명단에서 제시한 SBS 기자나 PD 가운데 SBS에 입사한 뒤 2, 3년 혹은 4년, 5년 후에 여권의 고위인사가 된 경우도 있고 거꾸로 자녀가 SBS에 입사하기 여러 해 전에 이미 은퇴해서 스포트라이트에서 사라졌고 심지어 야당 쪽 인사였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팩트가 완전히 틀린 기사를 표까지 만들어서 실은 것은 SBS가 고위층의 압력을 받고 부정한 입사를 시켰다는 뉘앙스를 제시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고 봅니다.

사실도 틀리고 기사에 게이트키핑도 없이 흠집내기에 주력하는 이런 기사들이 버젓이 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건전한 비판의 방법론을 논의해서 언론계에 건전한 비판이 정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이래운(연합뉴스 경제분야 에디터):미디어의 스펙트럼이 넓어질수록 사실 곤혹스럽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10년 후에 오늘의 현상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매체가 어떤 매체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그것을 연합뉴스가 좀 해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내부적으로 그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어떤 성향을 갖고 어떤 이념에 비중을 두든 간에 우리 전 언론인이 어떤 공통의 가치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언론이 이렇게 내부갈등이 많은데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생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이 신문이건 방송이건 좀 실례된 말씀이지만 굉장히 주먹구구식인 것 같습니다. 지금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데 지금은 방송통신위원회지만 10년 지나면 통신방송위원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신은 굉장히 치밀하게 융합합니다. 또 어느 쪽을 공략해야 되고 어떤 계층, 어떤 시간대에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등 특화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방송이 과연 그 정도로 치밀하게 경영하는지 의심스럽고요, 신문도 아마 그렇게 치밀하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 언론계가 신문, 방송 모두 언제 어떤 유형의 몫으로 어떤 계층에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지 시장공략전략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것까지 치밀하게 검토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아까 조선일보 김민배 국장이 지적하셨듯이 미디어혁명의 시대입니다. 1인 1매체 시대로 휴대폰이 신문이 되고 TV가 되는 시대인데, 우리 내부에서는 작은 파이를 놓고 싸웁니다. 시각을 좀 넓게 보고 각 매체가 어떤 계층, 어떤 형태의 시장을 공략해야 될지 연구하다 보면 상생의 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창순(관훈클럽 사무국장):저는 토론자로 온 것이 아니고 오늘 토론회를 지원하는 실무자로 왔는데 제가 오랫동안 언론계에 있었기 때문에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제가 5년 전 서울신문을 떠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우려하고 있는 신문사의 갈등과 반목이 더욱 심화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적하신 구조화가 더 견고해지기 전에 오늘 이 토론회가 언론 내부의 갈등과 반목을 완화하는, 더 나아가 해소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홍동희(헤럴드경제 문화부 기자):토론회를 하면서 느낀 점은 과연 제가 기자로서 어떤 기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기반성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고요, 과연 제가 기자생활하면서 이런 기자의 정체성을 위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또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선배님들이나 후배님들이 기자의 정체성을 두고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거나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저는 그런 걸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오히려 대학 때 기자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지고 배웠던 교과서에서나 그런 기자에 대한 정체성을 공부하고 생각했었지 지금은 오히려 먹고살기 급급해서 기사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까 이상용 선배께서 말씀하신 것에서 굉장히 많이 느꼈는데요, 지금 편집국이 외부영향을 무척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편집 윗선에서 내려오는 어떠한 지시, 이런 것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고요, 회사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또 그래야만 제가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뭐 이런 측면에서 취재하는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느낀 건 선후배들이 만나 후배들에게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얘기해주는 그런 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임웅재(서울경제 뉴미디어부 차장):사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별로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오늘 토론회 주제발표에 초점을 맞출게요. 내부 반목에 대해서 아까 미디어비평 얘기도 하셨는데, 저는 솔직히 미디어비평이라는 프로그램 같은 게 없어졌으면 좋겠고요, 자아비판을 안 할 거면 뭐 그런 식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과는 또 별개로 기자 개개인이든 아니면 어떤 매체든 색깔이 분명히 있기는 있으면서 항상 중립성이라든가 객관성 이런 걸 생각하는데 사실 한국 언론에서는 좀 당파성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위장하는 측면이 많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측면에서는 언론사끼리 지나치게 치고받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박창섭(한겨레신문 미디어담당 기자):제가 미디어팀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전반적으로 그동안 제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앞에서도 말씀하셨는데 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자기가 충분히 취재해서 팩트 중심으로 기자의 전문성과 양심을 바탕으로 판단해서 기사를 쓰면 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게 되는 측면이 저희 신문에도 있고 다른 데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계속 쌓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언론사 차원에서 서로 약간 헐뜯기 식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걸 봤고요, 저희들이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하루하루 기사 쓰기에 바쁘고 위에서 지시하면 바로 거기에 따라야 되고, 이런 것들이 일반적으로 고정화되어 있는 게 제가 느끼는 거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공동체적 가치나 보편적으로 언론이 추구하는 부분이 충분히 있고 또 거기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고 또 거기에서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해 못할 부분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꼭 어떤 색깔이다, 이념이다, 이렇게 약간 폄하한다든지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현장에 있는 기자라면 자기가 최후의 기사를 생산한다, 이런 생각으로 기사를 쓰면 될 것 같고, 그 다음에 위에 계신 분들이라면 우리 언론사가 만드는 콘텐츠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최선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상품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런 데서 지금 논의하고 있는 언론계의 갈등이나 반목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강현(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제가 올해 6년차거든요. 6년차 기자가 관훈클럽에서 발언하는 게 쉽지 않은 기회인 것 같은데요, 이제 6살 된 기자로서 제가 기자생활하면서 겪었던 일을 먼저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2004년도에 제가 기자가 돼서 수습생활을 할 때입니다. 제가 수습할 때 가장 먼저 겪었던 게 탄핵정국이었거든요. 그때는 사실 사회에 대한 어떤 갈등구조나 이런 것에 대한 파악이 정확히 안 된 상황에서 기자로 들어왔는데 한쪽은 진보단체끼리 집회하고 길 건너편에는 보수단체들이 집회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수습일 때 양쪽 다 취재해야 했는데 반응이 다른 거예요. 제가 중앙일보 기자이기 때문에 그런 게 있겠지만 진보단체 집회를 취재할 때는 둘러싸여서 맞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고, 보수단체 쪽으로 가면 비교적 환영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는 ‘너는 어디 소속 기자냐’ 하는 것이 집회에서 흥분하신 분들이 항상 묻는 질문이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2년, 3년, 4년 정도 지나서 작년에 촛불시위가 있었는데 제가 그때는 사회부는 아니었습니다만 후배들이 하도 고생하는 것 같아서 한번 격려 차원에서 나가봤습니다. 그때는 어디 기자냐고 묻는 질문도 가끔 있었지만 그것보다 당신이 기자냐고 묻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그게 몇 년 사이 언론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걸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기자생활하면서 겪어온 여러 가지 사회적인 갈등상황을 떠올려보면 우리 사회가 뭔가 서로에 대해서 낙인찍고 분류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마치 선악구도로 각자 입장에 따라서 보수가 선이고, 진보가 선인 구도로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언론은 거기에 편승해서 하다 보니까 언론간에도 자꾸 전선이 형성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런 전선을 어떻게 없앨 것이냐, 이런 고민이 이 벽을 허물자는 토론회의 중심이 됐네요. 2004년 막 수습 달고 시작할 때의 제 마음을 한번 떠올려 봤습니다. 누구나 대학생 때 기자를 꿈꾸면서 가졌던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생각해 봤더니 그때는 ‘너 왜 기자 하려고 하느냐?’ ‘기자의 본분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항상 준비하는 대답이 있었는데, 그게 기자가 세상을 증오해서 인간을 고발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을 고발하는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제가 마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 바탕이 어쨌거나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고발하는 것일 텐데, 정치적 입장이 어떻든 간에 그게 기자가 추구해야 할 공통가치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몇 년차 기자가 됐든, 어느 매체에 있든, 수습 막 달았을 때 그 첫 마음을 기억하면 언론계 갈등의 벽도 조금씩 허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상복(중앙일보 정치부 기자):저는 언론계 반목의 원인이 내·외부에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언론이 스스로 어떤 권력투쟁이나 이념투쟁의 관찰자가 아니고 플레이어가 된 측면이 있는 거고 또 외부적으로는 어떤 특정한 외부의 힘이 이러한 반목을 인위적으로 조장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인이 어쨌든 지금 처방을 고민하기 위해서 모였는데 이제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능한 부분이 있고 가능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우리의 갈등이 경제적 속성에 직접적으로 기초하고 있을 경우는 언론사 입장이 같을 수는 없는 거죠. 이 경우는 우리가 상호 지적하더라도 예의 있게 하는 것이 정답이 될 것 같고요,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신뢰와 평가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똑같은 사안을 전혀 다르게 보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제 무감각할 정도가 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특히 어떤 갈등적 이슈의 경우는 그런 단계를 넘어서 거의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단계까지 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매체는 많아지고 매체간 외적 다양성은 크게 늘어났다고 하지만 한 매체가 갖고 있는 어떤 포옹성과 내적 다양성은 굉장히 줄어들고 있다는 어떤 위기의식을 많이 갖고 있고, 결국 이러한 부분이 언론 상호간의 불신도 증폭시키지만 언론과 수용자 간의 불신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처방도 이쪽 부분에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태규 교수님께서 미국의 허친스 보고서나 리프먼 얘기도 하셨지만, 보통 저널리즘에 큰 이슈나 어떤 문제가 발견됐을 때 미국 같은 경우를 보면 언론인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위원회도 만들고 어떤 보고서도 나옵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보통 갈등이론에서 같이 공동작업을 해야 갈등도 낮출 수 있다고 말하듯이 이제 그런 작업이 어떤 중요한 스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언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이 보는 미국의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라는 책이 있는데, 미국 언론인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거쳐서 저널리즘의 상태가 어떻고 언론이 어떻게 가야 되는지를 논의했는데 지금 우리가 한국판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올 2월에 미디어법과 관련, MBC를 비판하면서 ‘왜 MBC에는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전문가들만 나오느냐. 그 비율이 25대0이다’라는 기사를 썼더니 MBC에서 며칠 후 중앙일보를 분석했더니 23대0이더라 하고 보도했습니다. 거꾸로 그렇게 보도했는데,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때 반성을 좀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근본적인 문제,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어떤 가치를 우리가 지키고 있는가부터 점검하기 시작하면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도 우리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작업을 관훈클럽 같은 단체에서 실질적으로 주도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오늘 이 자리가 그 단초가 됐으면 하는 개인적인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김달중(뉴시스 정치부 기자):오늘 대부분의 얘기들이 다 서로 공감하는 내용이어서 제가 길게 얘기할 건 없을 것 같고요, 다만 지금 언론환경이 사회적으로는 보혁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모두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사들이 미디어비평이라는 프로그램이나 신문의 해설이나 사설을 통해서 서로 흠집을 내는데 그게 너무 치열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언론의 신뢰성 상실도 발생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보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언론이 앞으로 어떤 평가를 하고 기사를 보도할 때 좀더 팩트와 어떤 객관성과 사실성을 담보로 하는 작업을 하면 상호간 갈등과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정보(동아일보 문화부 차장):제가 성격이 원래 굉장히 온순한 편인데 미디어를 맡으면서 과격해진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싸우다 보니 사람의 성격이 굉장히 나빠지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때 어떻게 보면 최전선에 있는 사람 입장으로서, 전선이라는 표현은 그렇기는 합니다만, 자꾸 품위가 없어지는 기사를 쓰게 되는 것이 원래 품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서로 뭐랄까 상대방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품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급한데 언제 품위 찾고 기사를 쓸 수 있겠습니까.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라 그렇게 품위 있게 기사를 쓸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요, 제 입장에서만 얘기하면 예를 들어 미디어법 같은 경우도 여러 토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마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방송을 하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야기라든가 아니면 최근 언소주에서 불매운동을 하면서 한 기자회견을 보면 동아일보나 이런 보수신문은 거의 범죄집단이고 거짓과 왜곡을 일삼는 집단이고 그리고 그들에게 광고를 내서 어떤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은 범죄를 도와주는 것 같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런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죄송합니다만 언론사를 통해서 고스란히 나가는 그런 상황에서 품위 있는 상호비판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미디어비평이라는 게 90년대까지는 없었고 거의 2000년 들어 방송사 중심으로 생긴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은 언론 내부가 아니라 특정언론과 특정언론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왜 그렇게 특정언론끼리 서로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MBC나 KBS에 생기기 시작한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 왜 보수언론에 대해서 그렇게 집요하고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했는가라는 문제가 얘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언론의 상호비평은 가능한데 보수언론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영향을 넓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태클을 걸고 반대하는 게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이쪽에서도 방어만 하지 않고 공격하게 되고 그러니까 서로 맞공격을 하게 되면서 결국은 지금 같은 상황이 온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이 문제를 풀려면 결국은 상대방 목에 칼끝을 겨누는 이것부터 내려야 뭔가 얘기가 시작되지, 서로 칼끝을 겨누고 있는데 서로 대화해 보자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문제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진철(한겨레신문 기획취재팀 기자):여러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2003년에 제가 수습딱지 갓 떼고 사회부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기자생활을 계속해도 되나? 기자생활 계속하는 게 옳은가?’ 이러한 생각을 할 정도로 크게 실망한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타사 선배와 함께 취재를 하고 같이 얘기도 나누고 ‘아, 이건 이런 일이구나’라고 같이 얘기했는데 다음날 신문 나온 걸 봤더니 전혀 다른 기사가 나왔더라고요. 그때 굉장히 실망했고, 나중에 그 선배와 이야기하면서 왜 그랬는지, 왜 그런 사정이 있었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굉장히 불편해졌던, 그래서 관계도 조금 멀어졌던 그런 기억이 떠올랐고요, 사회부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경제부에 가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후배였는데 어떤 기업의 비리나 이런 것을 발굴해서 단독기사를 쓴 적이 있었어요.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신문이 나오기 전에.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신문에 안 나왔더라고요. 그 후배가 무척 힘들어하면서 굉장히 마음 아파하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안타까웠던 경험이 있는데요, 이런 생각들이 많이 떠오르면서 결국 언론사 상호 비판이나 견제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고요, 지금은 조금 정도가 지나치다 싶은 생각은 들어요. 그래서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생각은 인정하되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될 것 같고요, 또 서로 비판은 하되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고운(한국경제 문화부 기자):오늘 선배님들께서 말씀하신 거 굉장히 열심히 들었고 흥미롭게 들었는데요, 여러 좋은 말씀 들으면서 기자사회의 관계는 굉장히 특수한데 과연 기자들 간에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서 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기자사회에 대해서 얘기할 때 가장 신기해하는 부분이 같은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 기자들도 연차를 따져서 선배, 후배라고 부르고 선배는 후배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이런 관계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기자사회의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같이 어울릴 때 다른 업종과는 다르게 굉장히 친밀하고 가까워 보일 수 있으면서도 막상 그런 관계 밑에 얼마나 신뢰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많이 고민이 됐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기자들이 취재하는 모습을 서로 지켜보면서 ‘아, 정말 저 기자는, 저 선배는, 저 후배는 나와 다른 위치에 속해 있고 나와 성향은 다르지만 그래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 팩트를 찾아내는 노력을 하는 태도가 정말 존중할 만하다’고 느껴본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고 저 또한 다른 매체 선배나 후배 혹은 동기들한테 어떻게 보일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참 어려운 일이지만 현장에서 서로 취재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으로서 저 사람의 태도나 저 사람의 생각이나 저 사람의 신념 같은 게 다르더라도 기본적인 신뢰와 믿음이 기자 사이에 생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상희(코리아타임스 문화부 기자):제가 여기서는 제일 연차가 적은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사실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자리가 참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반성하는 자리가 된 것 같아서 너무 좋았고요, 그리고 오늘을 발판으로 해서 고민만 하고 반성만 하는 시간이 아닌, 조금 더 실질적인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고 저희처럼 어린 기자들, 시작하는 기자들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강병철(서울신문 문화부 기자):선배님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요, 대부분 동의하고 있습니다. 언론 내부의 반목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국가정책이나 뭐 정권의 영향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발표 중에도 1990년 세무조사 이후 언론간 명예훼손 소송이 많아졌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정권의 영향이 없다는 생각은 할 수 없고요, 그러한 점에서 보면 이 언론간 벽 허물기 행사가 물론 이렇게 내부에서 먼저 의견이 모아지고 정리가 되어야겠지만 그후에는 정책이라든지 아니면 언론계 외부에 전해질 수 있는 그런 통로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목 같은 경우 수평적인 반목, 언론사간 반목이 물론 문제가 있기는 한데요, 각각의 언론사 내 수직적인 반목, 세대간 반목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훈토론회에서 좋은 의도로 이런 행사가 되었는데 앞으로 아까 말씀드린 정책적인 문제라든지 언론 내부의 수직적인 반목의 문제, 이런 것까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자리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강명일(MBC 경제부 기자):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는데 얘기를 쭉 들으면서 받은 느낌은 많은 분들이 미디어관련해서 실제로 보도를 하신 분들은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희 기자들 같은 경우 4월에 제작거부를 하면서 상당히 마음에 상처도 입고 그랬는데 기자들이 좀 보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일례로 제가 당시 한국은행을 출입하면서 시작하기 직전에 타사 기자들과 홍보실장님과 점심을 먹었는데 한국은행의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서 홍보실장에게 질문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많이 질문하더라고요. MBC는 어떻게 되는 거고 제작거부는 왜 하는 거고… 상당히 당황스럽고 난감한 순간이었는데 저는 취재해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뉴스를 전달해야 할 입장인데 제가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 되니까 이렇게 뉴스메이커가 되는 것이 과연 기자한테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기자로서의 어떤 위치 같은 것이 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되고요, 미디어법이라는 것도 사실은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까 신문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인쇄매체로 기사만 전달해서는 여러 가지 감성적인 동영상이라든지 이런 걸 같이 전달하는 매체와 경쟁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방송 입장에서도 방송만 하다 보니까 네이버라든지 IPTV와의 경쟁에서 조금 밀리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 회사 이익에 관계되니까 관련법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과연 객관적인 어떤 스탠스를 취하기 어려워져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어떤 언론관계 기관이라든지 기자협회라든지 이런 차원에서 기자 스스로가 그런 사안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소송문제도 말씀하셨는데 미디어간 비평도 건전한 수준에서 팩트 위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는데 저도 거기에 동감은 하고요, 다만 MBC면 MBC 내부에 혹은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내부에 문제가 있더라도 내부적으로 갈등을 치유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워낙 취재를 열심히 하시다 보니까 정확한 팩트의 검증 없이 감정적인 보도가 나와서 소송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좀더 시간을 두고 취재해서 팩트를 확인하고 해도 되고 또 그런 부분들이 과연 언론발전에 도움이 될까 하는 것도 한 번 더 생각해서 한다면 소송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미숙(문화일보 정치부 차장):신문을 만들고 오는 바람에 좀 늦어서 종합토론밖에 참석을 못 했는데요, 손태규 박사님 글은 제가 비행기 안에서 읽어봤고 또 말씀을 들으니까 대충 정리가 됩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김상봉 전남대 교수랑 재일동포 서경식 씨가 만남이라는 대화 형식의 책을 쓴 게 있는데 거기 나오는 한 대목을 보면, 이게 되게 진보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문제를 비판한 책이긴 한데 ‘신문이라는 게 뭐냐? 언론이라는 게 뭐냐?’ 그랬는데 ‘언론이란 퍼블릭 마인드를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 그 퍼블릭 마인드라는 게 보수언론, 진보언론 다 없어진 것 같아서 아쉽다’ 이런 토론이 진행된 걸 보고 밑줄을 그은 적이 있는데요, 저도 요즈음 이 퍼블릭 마인드가 도대체 뭔가를 생각해볼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요. 보수가 있어야 진보도 있고 또 사회가 부강하게 갈 수 있는데, 그런데 보수와 진보에서도 그 퍼블릭 마인드를 잊고 너무 개별회사의 이익 쪽으로 굳어져서 갈등이 심화된 게 바로 오늘 우리 언론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데 그건 노조가 강한 회사는 노조 입김대로 되고 또 사주가 입김이 강한 회사는 사주 입김대로 윤색돼서 언론이 퍼블릭 마인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반성이 됩니다.

손태규 박사님 글을 보면 미국 언론의 위기를 많이 얘기하셨는데, 저도 최근에 미국 언론이 무너지는 것을 보니까 이런 위기가 우리 사회에 1년 안에 닥칠지, 5년 안에 닥칠지 참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특히 오늘 주니어 기자들이 참 많이 오셨는데 이 주니어 기자들이 언론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위기를 더 빨리 오게 하지 않을까 걱정되는데요, 미국 덴버지역의 150년 된 신문 2개가 올해 다 망했다고 그래요. 덴버포스트인가 하는 신문의 기자가 200명이었는데 다 잘리고 20명이 모여서 인터넷신문을 하나 만드는데 편집장이 미국 방송이랑 인터뷰한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어요. “누구든 앞으로 언론에서 일하면서 풀 페이(full pay)를 받고, 그러니까 월급을 다 받고 전업적으로 일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언론계를 떠나야 될 거다. 더 이상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러는데 한국은 그런 위기가 한 10년 후에나 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인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주니어 기자들 또 중견기자들이 퍼블릭 마인드를 가지고 일할 수 있게 위기에 공동대응하는 모임, 요컨대 편집국장들의 협의회랄까 위기대응 모임이랄까 아니면 각사 사장들 모임이랄까, 저희보다 좀 높은 수준에서 위기대응 공동시스템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언론학자들도 우리 사회의 퍼블릭 마인드를 담고 있는 분들이랑 빨리 협의체, 위기대응위원회라고 할까 그런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관훈클럽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해주셨으면 고맙습니다.


사 회:주제발표자이신 손태규 박사께서 마무리 발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손태규:생생한 현장의 목소리 잘 들었습니다. 제가 주제발표를 하면서 비관적 얘기를 많이 해서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좋은 얘기 좀 하겠습니다.

저는 언론을 공부하면서 언론의, 미디어의 오묘함을 굉장히 많이 느낍니다. 여러분 지금 다 휴대폰 갖고 계시죠? 몇 년 전만 해도 기자들 모두 삐삐 가지고 있었어요. 삐삐 울리면 어디 가서 전화기 찾느라고 난리치고 했는데 삐삐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신문이 나온 지가 몇 년입니까? 1450년대에 신문이 나왔어요. 영국에서 윌리엄 캑스턴이라는 사람이 신문을 처음 만들었는데 600년이 다 되어가도 아직 신문이 존재합니다. 그 신문이 희한한 게 라디오가 1930년에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할 때 모든 사람이 신문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굳건하게 살아 있죠? 그 다음에 1950년대에 텔레비전이 나올 때 한번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인터넷은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완전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 나올 때 전부 다 라디오 없어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라디오 르네상스입니다. 인터넷 나올 때 또 한번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없어진다고 그랬습니다. 곧 전자책 나오면 종이책 다 없어질 것이다, 신문 다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아직도 신문 굳건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미숙 차장이 덴버에 신문 없어졌다고 말씀했지만 내일 다른 신문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왜? 신문만큼 편한 게 어디 있습니까? 화장실에서 인터넷 볼 수 있습니까?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 보면서 인터넷 볼 수 있습니까? 신문처럼 편한 게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텔레비전도 없어진다고 아까 말했지만 미국에서 작년에 케이블 뉴스의 이익이 30% 늘어났다는 거 아닙니까? 왜? 시시각각으로 계속 뉴스를 때려주니까 뉴스에 목마른 사람이 그만큼 편하게 뉴스를 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넷보다 훨씬 현장감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신문사 있는 분들이나 방송사 있는 분들이나 마음은 다 그렇지만 괜히 나 같은 학자들은 지나치게 걱정이 많아서 하는 얘기입니다. 앞으로 곧 경제가 좋아지면 언론환경이 더 좋아질지도 모릅니다. 또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변수들이 환경을 좋게 만들 겁니다. 제가 1987년 미국에 갔을 때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한국일보사의 미주한국이 미국 교민사회에서 영향력이 크니 취재하러 간 겁니다. 거기 가서 뉴욕 한인회장을 만났어요. 그때 그 양반이, 지금도 기억합니다. 인터뷰를 하는데 한국일보가 교민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이 있고 잘나가고 이런 걸 물어봤는데 이 양반이 굉장히 심각한 소리로 한국 가면 경영진한테 꼭 이런 보고를 하라는 겁니다. 자기가 볼 때는 교민신문이 5년 안에, 10년 안에 없어질 거다. ‘왜 그렇습니까?’ 하니까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국이 갈수록 잘살아지는데 이민을 많이 오겠느냐고. 이민 숫자가 줄어들면 한글을 읽을 수 있는 1세대는 갈수록 줄어든다. 그러면 지금 1.5세대, 2세대, 3세대는 이미 영어만 사용하는데 어느 누가 한글신문 보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교민신문들이 빨리 영어신문으로 전환하든가 방송사업에 진출하라고 보고하라는 것이죠. 그때는 ‘야, 이거 심각하구나. 진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제가 그후로 미국에 여러 번 출장가고 또 미국에서 한 5년 살면서 보니까 미안한 말씀이지만 교민신문이 갈수록 더 잘되는 겁니다. 갈수록 이민을 더 오는 거예요. 거기다 교포 1.5세대, 2세대들이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이 안 되니까 교민사회에 진출해서 활동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집니다. 이제 교민사회를 위한 정보를 입수하지 않으면 비즈니스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민신문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앞서 예를 든 것이나 이런 경우를 보면서 신문 또는 언론의 오묘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 여러분들 5년, 7년차 기자들은 앞으로 20~30년, 30~40년 끄떡없습니다. 걱정 마시고 열심히 하시되, 단 싸우지 마시라. 지나치게. 왜? 아까 이야기했죠? 기자라는 것은요, 다른 직업하고 다른 사람들입니다. 자칭 기자들하고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소위 제도언론 기자들은 그 역할과 사회적,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다른 겁니다. 그걸 여러분이 정확하게 아셔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만 여러분이 사회적 지지를 얻고 독자와 시청자를 얻는 겁니다. 그런 것을 빨리 인식하시고 서로 잘 협력해서, 그야말로 개별도구로서 미디어가 영속하고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신문과 방송 등 매체가 또 각사가 아주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도록 노력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박수)


사 회:손 박사님 열변에 박수가 나오네요. 오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공감대는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 화끈한 대안이 있느냐, 몇 분이 말씀하셨는데 이게 시작이니까요. 우리 관훈클럽 차원에서도 올해 2차례 좀더 해보려고 하고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기자 연차는 얼마 안 됐지만 관훈토론회는 대권주자들이 나오던 토론회이니 여러분 굉장한 줄 아세요. 이왕 여기서 토론했으니 미래의 관훈클럽 회원이십니다. 저를 비롯한 임원들에게 벽을 허물자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있으면 보내주시고 이메일이나 전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좋은 캠페인으로, 정말 결론을 보는 그런 캠페인으로 저희가 이끌어나가겠습니다. 많은 지도와 편달, 조언 부탁드리고요, 못다 한 얘기는 저녁식사하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진지한 토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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