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업

빈부 격차 리포트 - 거지와 부자 체험

취재기자 :
유대근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 송수연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
등록일 :
2015-01-26
조회수 :
7,251

서울신문이 201516일부터 시리즈로 보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빈부 격차 실상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상위 1% 부유층(금융자산 최소 10억원을 포함한 개인 순자산 40억원 이상 & 연소득 15000만원 이상)과 하위 9.1% 절대빈곤층(4인 가구 기준 월소득 1668329원 미만)의 생활상을 분야별로 비교하며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특별기획팀 일선 기자들이 직접 밑바닥 빈곤층과 최상류층 생활의 일단을 잠시나마 체험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밑바닥 중에도 가장 밑바닥인 거지 체험을 한 유대근 기자와 부자들의 생활을 체험한 송수연 기자의 취재 뒷얘기를 올린다.

 


유대근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가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진 20141216일 저녁 서울역 건너편 노상에서 거지 행색으로 주저앉아 구걸을 체험하고 있다.

 

걸인 체험 : 12시간의 구걸...13110

유대근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

 

 기자의 교만으로 읽히지 않을까요?”

 걱정이 앞섰다. 특별기획팀의 두 번째 회의 날, 팀장이 구걸 체험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을 때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새로 만들어진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새해 첫 기획 아이템으로 국내 빈부격차 문제를 다루기로 했고 부유층과 극빈층의 대비되는 삶의 모습을 숫자가 아닌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엮기로 이미 정한 터였다. 구걸 체험은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 시리즈 첫 회 보도에 앞서 기자가 취재원인 극빈층의 감정을 느껴보자는 취지였다. , 프롤로그 격인 체험기를 통해 독자의 눈길을 끌어보자는 유인구성격도 강했다. 이런 설명에도 머뭇거려졌던 건 다른 언론이 앞서 썼던 구걸 체험 기사와 얼마나 다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던 데다 한나절 밑바닥 생활을 통해 과연 진심이 밴 글을 쓸 수 있겠느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젊은 기자가 하루 구걸을 체험하는 게 정치인들이 연말 재래시장에서 물건 파는 시늉을 하는 것과 다른 게 있나 싶기도 했다. 지난해 4, ‘세월호 참사를 현장에서 겪은 취재 기자 대부분이 그렇듯 기레기라는 말은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하루 체험으로 대단한 걸 느낀 양 기사를 쓰면 어떤 악플이 달릴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럼에도, 몇 차례 회의 끝에 체험기를 쓰기로 결심한 건 교만으로 비출지언정 점잔만 빼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다. 하루라도 진심으로 상황을 대하고 자잘한 사실관계를 전하기보다 노숙인들과 하루를 보내며 느낀 감정을 차분히 기록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동료와 선·후배들의 걱정과 달리 구걸 체험을 하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평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해온 빈소 취재(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야 하는 일이라 누구에게나 매번 힘들다.)보다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무의식은 이미 잔뜩 긴장했었던 듯하다. 이 때문에 체험 1주일 전 생전 처음으로 위경련이 일어 링거 주사까지 맞았다.

 걸인 체험에 무슨 준비가 필요하느냐는 동료의 생각과 달리 가난을 겪어보는데도 꽤 많은 준비와 비용(?)이 들었다. 당장 입을 옷이 없어 서울 남대문 시장통에서 제법 낡아 보이는 빨강 백팩과 싸구려 국방무늬 점퍼, 검은 등산 바지와 털모자 등을 샀다. 3~4주 동안 수염도 길렀다. 사과 박스를 큼지막하게 잘라 몸이 아프고 배가 고픕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삐뚤빼뚤 쓴 문구도 준비했다.

 

어느 노숙인에게 하루 동선을 묻자 "그게 내 밥줄인데..." 

 

 사전취재도 필요했다. 노숙인들이 무료 커피를 마시려 모이는 서울 종각역에 가 그들의 하루 동선을 물었다. 정보를 구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짤짤이(교회와 성당, 사찰 등을 돌며 구제금을 받는 일) 동선을 묻는 질문에 한 노숙인은 그게 내 밥줄인데 어떻게 알려주느냐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다행히 호의를 보인 한 노숙인의 도움으로 체험 당일 들려야 할 곳(교회, 성당과 무료급식소)을 알았고 이동 동선을 짤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미리 알면 하루아침 거리에 나앉은 노숙인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던 한 빈곤층 지원 단체의 충고를 따라 최소한의 정보만 미리 취재했다.

 ‘D데이였던 20141216. 새벽 4. 스마트폰 알람이 유독 시끄럽게 울렸다. 급히 일어나 씻을 필요 없이 회사로 향했다. 미리 부른 연극 분장사는 내 얼굴과 손톱에 지워지지 않을 듯한 때를 그려넣었다. 6, 매주 화요일 노숙인에게 아침밥을 준다는 서울 종로구의 한 교회로 향했다. 150명쯤 되는 노숙인이 식당에 와 있었는데 대부분 40~6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없는 사람이 세끼 식사를 챙겨 먹으려면 더 부지런해야 했다. 육개장이 너무 뜨거워 목구멍에 넘기지 못하던 나와 달리 노숙인들은 뜨거운 국에 김칫국물을 부어 마시듯 먹었다.

 오전에는 노숙인들을 따라 짤짤이에 나섰다. “교회에서 받은 동전에 주머니에서 짤짤거린다고 해서 이름붙여졌다는 이 일은 폐지 수집과 함께 노숙인들의 대표적 용돈벌이 수단이었다. , 음식을 주는 단체는 많지만 담배나 술을 주는 곳은 없기에 약간의 현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오전 4시간 동안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서대문·마포 일대를 10km가량 돌며 교회와 성당 7곳에서 3300원의 구제금을 받았다. 짤짤이를 도는 노숙인은 대부분 몸 한곳이 불편해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할 수 없는 중년 남성이었다. 간간히 젊은 남자도 있었는데 한 노숙인은 대부분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인데 돈을 벌면 다 압류당하기 때문에 구걸이나 하며 푼돈을 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리 알아뒀던 서울 동대문 인근의 무료 급식소가 이날 문을 닫았던 까닭에 점심은 컵라면으로 때웠다. 오후 2, 지하철 4호선 서울역 4번 출구 앞에서 구걸 체험에 나섰다. 맨바닥에 엎드린 뒤 몇 분 동안은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듯했다. 배우의 매소드 연기처럼 매소드 취재를 해보겠노라며 호기롭게 덤볐던 까닭에 실제로 수치심과 외로움, 위축감 등의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하지만 불과 1~2시간 지나자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물리·생리적 고통 앞에 비루한 감정은 무뎌졌다.

 나에게 돈을 주는 행인이 있을까하는 걱정과 달리 종이로 만든 돈통에는 동전과 지폐가 수북이 쌓여갔다. 돈통에 지폐가 보이면 행인들이 적선하려던 마음을 거둬들일까 싶어 종이돈은 살짝 빼 주머니에 넣었다. 누군가 돈을 줄 때마다 기쁘고 신기한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선의를 가진 이들을 속이고 있다는 미안함도 밀려들었다.

 

거리의 시민들은 예상보다 훨씬 온정적

 

 거리의 시민들은 예상보다 훨씬 온정적이었다. 20대 여성은 편의점 온장고에서 막 꺼내온 듯한 과일 음료와 핫팩을 건네며 절대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50대 주부나 노신사의 위로도 큰 힘이 됐다. 그렇게 4시간가량 구걸한 결과 행인 14명으로부터 9810원을 얻었다.

 지난 15일자 지면에 체험기가 보도된 뒤 반응은 다양한 의미로 뜨거웠다. 몸고생했다고 생각해서인지 언론계의 선·후배와 동료들은 대개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을 건넸다. 포털사이트에 걸린 온라인 기사 댓글도 예상보다 호의적이었다. 많은 네티즌들은 기자가 구걸 체험을 했다는 것 자체를 기특하게 여겨줬다. 물론, ‘하루 체험기가 아닌 실제 노숙인의 고충이나 노숙인이 된 배경을 초점으로 해 기사를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거나 멀쩡한 몸으로 왜 구걸하는지 모르겠다는 댓글 등도 있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파지 등을 모으러 다니시는 어르신들의 평균 수입보다 많이 버셨네요라는 내용이었다. 극빈층이 살아가는 가장 극단적인 장면을 기사와 사진으로 보여줘 충격을 주려는 목적이었는데 현실은 우리의 앵글에 잡힌 모습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체험 기사는 예상보다 힘이 셌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로 일할 때 몇 안 되는 후배들에게 사건팀 기자는 귀납적으로 취재해야 한다고 개똥철학을 설파했었다. “통계나 정책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 자료의 야마에 꿰맞출 사례 2~3가지를 찾고 전문가 멘트를 붙이는 식의 연역적 기사는 어떤 출입처에서든 쓸 수 있다. 사건팀 기자는 현장을 발로 뛰어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을 찾고 이 케이스들이 주는 공통적 시사점을 뽑아 새로운 정책 과제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사건팀 기자의 임무이자 특권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배는 그렇게 취재해왔습니까라는 후배의 반문에는 늘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구걸 체험으로 시작해 현장의 사례를 면밀히 전한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는 기자로서 나에게 큰 교훈과 기회가 됐다.

 

■ 이메일 주소

- 유대근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 : dynamic@seoul.co.kr

 

 

 

 
송수연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가 부자 생활 체험을 하기 위해 20141216일 우리나라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앉아 있다.

 

고급 호텔 체험 : 하룻밤의 특권...323만원

송수연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

 

기자가 부자 체험해서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게 뭔데?”

 대한민국 빈부격차 리포트의 첫 편인 기자, 부자 되다기획기사가 지면에 실리기로 한 16일 새벽 1. 서울 마포구에 있는 술집에서 먼저 가판을 본 동료 기자의 혹평이 쏟아졌다. “부자들이 얼마나 럭셔리하게 사는지 요즘에는 드라마나 TV프로그램 통해서 다 알고 있어.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요즘에는 중산층도 마음먹으면 호텔가서 한번쯤 잘 수 있는데 새로운 얘기라고 볼 수 있겠어?”, “하룻밤에 323만원 쓴 게 큰돈이지만 그렇다고 소리 날만한 액수도 아니지 않나.”, “단순히 상위 1%와 절대 빈곤층 삶을 보여준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데?” 폭포처럼 쏟아지는 동료기자의 날선 비판들이 알알이 비수처럼 박혔다. 나는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기획 기사를 준비할 때 며칠 동안 팀 내에서 고민하고 토론했던 이야기들과 똑같았다. 내가 제기했던 문제들도 있었다. 나는 최종적으로 팀 내에서 내렸던 결론과 기사 의도에 대해 설명했지만 동료기자를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온라인에 뜬 기사를 확인한 후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기사가 나간 후 반응은 예상대로 호평과 혹평을 오갔다. 기사에 대한 질문들이 뒤따랐고 이는 그날 밤 동료기자가 나에게 묻던 물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순한 느낌을 묻는 말랑말랑한 질문부터 기자를 긴장시키게 하는 날선 질문들도 있었다. 미처 대답하지 못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최고급 스위트룸에서 다양한 체험

 

 Q. 하룻밤 250만원 스위트룸에서 묶어보니 좋던가.

 A. 좋다. 현재 월급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할 곳이다. 회사에서 비용을 지불했다. 내 돈은 안 쓰고 250만 원짜리 방에서 잔다는 데 안 좋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욕실이 마음에 들었다. 욕조 위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창밖으로 남산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즐기는 것도 일이 된다. 취재가 필요했다. ‘침구는 몇 수인지’, ‘실내 디자인은 누가 한 것인지’, ‘스위트룸은 몇 개이고 서비스는 어떻게 다른지등 디테일을 알아야만 했다. 사진촬영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저녁시간이 지나서야 취재와 사진촬영이 끝났다. 부담감 때문에 실제로 실의 두께가 80수와 400TC인 최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침구와 화학적 융합을 하지 못한 채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에도 체크아웃 전 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험해보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아침 7시 반에 조식을 먹고 피트니스와 수영장, 사우나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해치웠다. 집에 돌아가서야 긴장이 풀렸다. 

 Q. 왜 거지와 부자 중 부자체험을 하게 됐나. 지원했나.

 A. 아니다. 특별기획팀 4명 중 막내이고 기자로서 거지 체험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래는 거지 체험에 지원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실제 여성인 거지를 찾아보기 쉽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부에서 부자체험은 아무래도 여성이 하는 게 그림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팀원 중 유일한여자여서 하게 됐다.

 Q. 기자로서 과감(?)한 포즈로 사진 찍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A. 어려웠다. 그냥 평소대로 입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체험 전날 밤 9시에 최대한 럭셔리하게 입고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난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반짝이 스타킹도 평소에 잘 신지 않은 것이었다. 토끼털조끼부터 어머니 밍크코트까지 최대한 럭셔리해 보이는 옷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다.

 촬영할 때 같이 간 선배들이 도도한 표정’, ‘정숙한 표정’, ‘멍한 표정등을 주문하는 데 도무지 차이점을 알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우아하게 못하겠나’, ‘눈에 힘을 좀 더 줘라’, ‘거만하게 앉아봐라등 주문이 이어지는 데 나중에는 괜히 서럽기도 했다.

 원래 지면에 실으려고 했던 사진은 다른 곳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반듯이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었다. 결국 1시간 이상 찍었던 사진보다 방에 돌아와서 편안하게(?) 찍은 사진이 채택됐다. 기사가 나간 후 사진 때문에 지인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

    Q .겨우 호텔 체험으로 부자가 돼봤다고 할 수 있나.

    A. 없다. 기획과정에서도 많은 언쟁이 있었다. 거지체험 기사를 함께 실었는데 거지도 하위1%와 절대빈곤층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솔직히 얘기해서 12회에 걸친 빈부격차 리포트를 보도하기에 앞서 이목을 집중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체험 기사는 일종의 장치였다. 좋은 기사도 독자가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거지와 부자를 체험했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지 않았다. ‘거지와 부자극단적인 상징적 사례를 나란히 배치하면서 얻는 효과가 더 컸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중산층도 마음먹으면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하는데 하룻밤 323만원 지불한 것은 부자라고 볼 수 없다라는 이의제기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기준을 적용한 우리나라 중산층 가구의 월평균 소득 중간 값이 354만원(2012년 기준)이다. 323만원은 한 달 치 월급에 맞먹는 액수다. 더군다나 절대빈곤층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다.

 

돈이라는 것이 참 얄궂고 무서웠다

 

 Q. 기사에서 식사중인 손님들은 우리끼리는 같은 부류라는 동질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비쳤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A. 그들과 나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곳에서 일종의 연극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호텔이라는 무대에서 나는 관찰자이고 이방인이었다. 나의 익숙지 않은 행동들 때문에 경제적 신분이 탄로 날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심리적 박탈감도 컸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빈곤층이 상위1% 부유층을 바라볼 때 얼마나 큰 거리감과 이질감을 느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새삼 다시 했다. 반면 최고급 서비스를 받을 때는 정말로 부자라도 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돈이라는 것이 참 얄궂고 무서웠다.

 Q.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A. 호텔 바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호텔 1층에 마련된 오픈 바에서 자정이 넘어서자 밴드가 입장해 재즈를 연주했다. 피아노와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트럼펫이 어우러진 선율이 울려 펴졌다. 피아노 연주자 너머로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통로가 보였다. 그 통로에서 청바지에 체크무늬 스웨터, 패딩 조끼를 걸친 인부가 장갑을 끼고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손님들이 많으니 한적한 시간에 작업을 하는 듯 했다. 값비싼 와인과 칵테일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너머로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했다.

 

 

 Q. 부자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A. 아니다. 공정한 경쟁 환경에서 정당하게 돈을 벌었다면 돈이 많은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때문에 부자와 거지 체험도 기사를 쓸 때 가치판단을 최소화하고 계몽적 태도를 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부()가 정당한 대가로 주어진 결과가 아니라면 당연한 소리지만 잘못된 것이다. 빈곤층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면 사회시스템 어딘가가 고장 났단 얘기다. 태어날 때부터 불공정한 출발선상에 섰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입장은 기획 기사 전체에도 반영됐다.

 Q. 그렇다면 단순히 상위 1%와 하위 9.1%의 절대빈곤층 삶을 나열하는 게 의미가 있나.

 A. 있다. 대한민국의 빈부격차를 알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이 있을까. 소득분배의 불균형 수치를 나타낸 지니계수와 소득 수준 정도다. 그런데 이런 수치들만으로는 실제 얼마나 양극화가 심화된 것 인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빈곤층 가정과 아동들, 비정규직 삶의 어려움에 대한 뉴스와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벌들의 호화로운 삶을 보며 그 격차를 가늠해 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은 의미 있다. 의식주, 육아, 교육, 재산증식, 여가, 여행, 문화, 유흥, 미용 등 분야별로 실제 사례들을 통해 계층 간의 격차가 어디까지 왔는지 민낯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부자들의 삶에 대한 관음증,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는 면에서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대선 때의 시대정신은 경제민주화였는데, 어느 순간 잊혀졌다. 충격요법을 통해서라도 다시 한 번 빈부격차,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의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같은 대한민국 땅에 '두개의 나라'가 존재

 

 Q. 부유층과 절대빈곤층 섭외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A. 쉽지 않았다. ‘금융자산 최소 10억 원을 포함한 개인 순자산 40억 원 이상을 상위 1% 부유층으로 잡았지만 당사자들은 실제로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인터뷰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솔직하게 본인이 얼마를 쓰는 지 공개하기 꺼려했다. 때문에 속사정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지인과 지인의 지인을 섭외하는 수밖에 없었다. 빈곤층은 신분이 노출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컸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인터뷰 시간을 잡기 어려웠다. 초록어린이재단, 지역아동센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사회복지관 등의 도움을 받았다.

 Q. 실제로도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생각하나.

 A. 심각하다. 기자도 막상 취재에 들어가 보니 놀랐다. 같은 땅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렇게 두 계층의 삶이 다를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대한민국 땅에서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상위 1%‘1년 과외비로 5억 원을 쓰는데 빈곤층은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열 살에도 한글을 깨우치기 힘들다면 무언가 잘못 된 것 아닌가. 상위 1%연봉 1억 원의 사교육 대리모까지 고용하기도 하는데’ ‘빈곤층은 분유를 사 먹이기도 힘들다면 정상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상위 1%가만히 앉아서도 임대료로 연 9000만원이 통장에 들어오는데’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월200만원을 벌기가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 시스템이 어딘가 고장 났다는 증거가 아닌가.

 양 계층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인터뷰를 했던 한 부유층은 요즘은 그래도 집에 화장실 두개는 있지 않느냐”,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빈곤층은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버거워 정보에서 소외돼 있다.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빈부격차, 복지 제도 등에 대해서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획이 빈부격차 논의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이메일 주소

- 송수연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기자 : songsy@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