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업

나는 언론계에서 열외다

선배 언론인 :
남재희 전 서울신문 주필
대담 기자 :
김미경 서울신문 정치부 차장

대담 날짜 :
2018.4.10
조회수 :
5,711

 

 

언론계정계관계학계 넘나든 남재희 전 서울신문 주필과 대화 

대담 : 김미경 서울신문 정치부 차장

 

평소에 존경하던 언론계 남재희 대선배(전 서울신문 편집국장주필, 전 노동부 장관)를 지난 10()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만났다. 85세 고령(1934년 생)임에도 다리가 약간 불편한 것을 빼고 왕성한 지력과 논리적인 달변은 여전했다. 최근 북한의 핵 폐기를 유도하기 위한 남북한 및 미·북 정상회담 전망을 비롯해 중··러 등 주변 강대국의 역할변수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 급변 상황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국내 정치와 개헌 문제, 뉴미디어 등 언론환경의 변화, 언론인이 갖추어야 할 자세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1시간 30분 가까이 대선배의 탁견을 경청했다. 오피니언면 제작과 관련해서도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김미경 차장) 먼저, 대담에 시간을 내어 주셔서.

(남 선배님은 대담에 들어가자마자 후배의 말을 가로 막았다. 아마 요즘 언론사 정치부에서 맹활약 중인 여성 후배들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셨던 모양이다)

(남재희 전 장관) 가만 있어봐 자, 정치부장이 근래에 타사에 있었나요?

() , 세계일보, 중앙일보 등에 있었구요, 여성 편집국장은 최근에도 3명 배출하는 등 꽤 있었고, 아무튼 이제 막 나오고 있습니다.

() 문소영(서울신문 정치부장) 씨는 언론경력이 몇 년이에요?

() 아마 92년쯤 입사니까, 26년요?

() , 경력이 엄청 오래 됐네.

() 제가 20년이고요, 저랑 6년 차이 납니다.

() 나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네? 나는 정치부장을 입사 8년에 했는데, 조선일보에서.

() 그러셨어요? 아니, 8년 만에 부장하신 거예요?

() 6년 만에 문화부장하고.

() 진짜 그러네요.

() 나는 대학을 오래 다녔어.

() , ()를 바꾸셨다고.

() 서울대 의예과를 2년 다니고, 법과대학 4.

() 6년을 다니셨군요.

() 내 자랑은 아니지만 의과대학에 딱 1등으로 들어갔지.

() 의대가 안 맞으셨어요?

() 2년 다녀보니까 의사 못해먹겠어. 그래서 때려치우고 법대에 새로 입학했지.

() 아니, 한 군데도 어려운데 어떻게 두 군데를. 어우, 세상이 불공평한데요. 너무 머리가 좋으셔서.

() 서울법대 가면 고등고시 쳤잖아? 그런데 이승만 박사 양아들 있잖아, 그 이기붕이 진짜 아들 이강석이라고. 그 친구가 그때 서울 법대에 부정편입학을 한 거라. 내가 당시 학생총회 의장으로서 스트라이크를 했지. 그래서 이 박사 치하에서는 ’()자 들어간 데는 단념했지. 에라! 신문기자나 하자.

() 그래서 한국일보에 들어가셨어요?

() 한국일보가 좋았지.

() , (한국일보는) 완전히 (언론) 사관학교 같았잖아요.

() 그때 한국일보는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 같았지.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오히려 활력이 없었어. 부수는 동아일보가 제일 많았지만 한국일보는 활력이 있었지. 자 이제 김 차장이 

 

북한의 핵 개발, 그 쪽만 잘못됐다는 시각 벗어나야 

 

() 장관님,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하고요. 제가 정치부에서 남북정상회담 등 맡고 있어서 정상회담 관련해서 먼저 여쭤보고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27일에 남북정상회담 앞두고 있고요, 5월 아니면 6월 초에 북미 정상회담도 열릴 것 같은데요. 작년과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어서 다들 한반도에 봄이 온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우려도 많고요. 장관님께서는 현재 남북북미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풀릴 것으로 보시는지요. 

() , 어려운데.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을. 내가요, 요전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썼는데, 언론 연수를 하버드대학에 갔을 때 마침 헨리 키신저가, 그때는 정부에 들어가기 전이야. 키신저가 교수였는데 그의 세미나를 들은 거라. ‘내셔널 시큐리티’(국가안보)에 대해 1년 강의를 들었어요. 스탠리 호프만이라는 아주 유명한 국제관계 학자한테 전쟁론1년 듣고. 나름대로는 하버드 1년 동안 국제문제, 안보문제에 관심을 갖고 생각도 많이 했어요. 결국은 헨리 키신저나 스탠리 호프만도 따지자면 동양철학의 병법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해요. 가령 동양의 손자병법 같은 거. 초한지 삼국지 보면 그게 다 국제관계 아니에요? 말하자면 제갈량의 재주로 국제관계를 헤쳐 나가는 거지요. 거기서 키신저 이상의 국제관계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거지. 전략전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어요. 인간의 지능에 한계가 있으니까 

  

다만 걱정되는 점은, 일본에서는 벌써 편가르기를 하고 있어요. 한국을 북한 중국 러시아블록으로 편가르고, 일본은 이에 대항하는 편으로 도식화했어요. 그런 도식화에서는 미국 일본, 특히 일본은 한국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거 아니냐. 또 트럼프(미국 대통령)가 무역협상에 있어서 한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봐가며 결정하겠다.”,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미국도 한국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처신하기가 참 어렵다고 봅니다. 협상의 주역은 미국과 북한인데, 그게 제일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이해할 때, 북한의 핵만 부당한 것으로 공격한다고. 그러면 이스라엘이 핵을 가진 것은 왜 말 안 하느냐. 왜 북한이 핵 가진 것은 나무라고. 그럼 거기는 유태인이고, 미국엔 유태인 세력이 크니까 눈감아주고, 북한은 만만하니까 예우 안 해준다 

    

또 한 가지는,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에 대해서 논문을 쓴 것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문판에서 봤는데, 미국이 북한에 공습한 총체적인 수치를 집계해서 발표했더군요. 두 페이지를. 말하자면 평양을 중심으로 한 중요 도시들을, 영어로 스톤 에이지’(석기시대)로 만든다는 거라. 미국 공군 폭격에 대한 북한의 공포심은 대단해요. 북한이 625 남침이라는 원죄를 저질렀지만. 그 후로 중국군은 (북한에서) 철수했잖아요. 미군은 나라 안에 엄청난 군사력을 놔두고. 그리고 미국의 최정예 항공모함, 스텔스기가 계속 와서 여차저차하면 조진다고 훈련하고. 그런 국면에서 아주 객관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데가 어딘지. 625 때 그런 폭격을 맞은 북한이 서바이벌(생존)을 위해 (핵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 내가 북한 당국자라도 개발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런 서바이벌이라는 정당성이 (북한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미국이 계속 군사 위협만 할 게 아니라, 북한의 안전보장을. 휴전협정된 지가 얼마야 지금.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줘야 하고, 거기에 또 불가침협정을 해줘야 하는, 그런 절차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해줬잖아요. 미국이 북한만을 노리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레이트 아시안 스트레티지(아시아 대전략). 북한을 장기판의 졸로 여기고 압박하고 들어간 거예요. 국제정치적인 입장에서 보면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그 전제를 놓고 생각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모든 논리가 편향된 것이란 말이에요. 흔히 기브앤테이크(주고받기)라고 그러는데, 북한의 안보를 보장하는 평화협정과 경제협력 문제, 핵 폐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문제가 병행해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

() 그렇죠. 

 

북미 회담에서 중간단계로 ICBM만 타결할 수도 있어요 

 

() 이것이 북미 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6자회담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아니면 그 유사한 국제회담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중국은 휴전협정의 당사국이기도 하잖아요? 최소한도 핵 폐기로 가려면 미국과 북한의 그랜드 바겐이 있어야 하지요. 평화협정, 불가침협정, 경제협력 과정을 통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확실한 조치가 있어야만 되는 거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북한을 그냥 무장해제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느냐, 그리 생각하고. 

  

그게 궁극적인 것이고, 중간 단계로 일본의 어느 학자가 말했는데, 트럼프가 딜메이커란 말이야, 흥정꾼이다 이거야. 본래 사업가잖아요? 그래서, 북한하고 딜을 할 것이다. ICBM만 없애도 될 거다. ICBM만 합의해도 미국은 오케이(OK), 미국은 안전하잖아요. 일본은 어떨지 모르지만, 중간단계에서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NHK방송에서 얘기해요. 그것도 나는 파서블’(possible)하다고 봐요.

() 일본은 또 떨겠네요.

() 뭐 복잡한데, 그렇게 타결되면 저팬 패싱을 우려하는 일본은 불만이 가득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일본도 역할이 있는 게, 일본과 북한이 수교가 안 됐잖아요? 평화협정을 맺으면 일본이 북한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겠지요. 그럼 그런 돈이 북한으로서는 아주 가뭄에 비를 맞은 것처럼, 상당히 북한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때 북한으로서도 일본과 협상을 하겠지요. 다자간 협상이 되면 그까지 포함되겠지요.

() 그렇죠, 다자간 협상도 필요합니다.

() 아니, 내 얘기는. 그런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북한의 핵 개발이 그 쪽만 잘못됐다는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 얘기에요. 서바이벌을 위해서는 나(남재희)라도 개발을 한다.

() 사실은 북한이 왜 핵 개발을 했느냐를 알고 접근해서 거기에 상응하는 걸 해줘야 그 쪽도 움직이지 않겠어요? 리비아식 내지 지금까지 나오는 것들이 지금 안 맞잖아요. 

 

 

() 내가 머리가 나빠서 정확히 기억은 못하는데, 브루스 커밍스 책에 보면, 한국전쟁에서 퍼부은 폭탄 량이 월드 워 투(세계2차대전)에서 퍼부은 폭탄보다 많다는 거야. 어마어마하게 폭탄을 퍼부은 거라. 북한이 아주 공포야 공포. 완전히 초토화해서 스톤 에이지로 보낸 거라 이거야. 미국 폭격에 대한 공포심, 그게 당연히 핵 개발로 가는 거야. 

() 그래서 지금 시작단계이긴 한데, 남북만으로 시작하는 기존의 남북정상회담이나 6자회담과는 다른 형태이고요. 문재인 정부가 운전자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지나친 얘기지. 트럼프가 그걸 용납해요? 무역문제와 링크(연결)해서 까불면 무역으로 조진다, 이거 아니에요? 뉴욕타임스에 났지요?

() 그래서 FTA(자유무역협정)와 다 맞물려서 재협상하는 것이겠지요. 작년에 북미가 싸우는 것처럼 하다가 올해 들어 김정은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평가도 있고요. 거기에 문재인 정부가 기회를 잡고 트럼프도 인바이트(invite)했고요. 물론 북미가 중요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 정부는) 잘하고 있다고 자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만. 아까 (문 정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얘기하셨는데.

() 일본과 미국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잖아요. 

  

() 동력을 이어가려면 (문 정부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방침을 바꿀 수는 없지요. 지금대로 해야지.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문제인데, 중국은 뒤에서 북한을 뒷받침하고, 러시아도 끼어들어 뒷받침해주고. 그래서 최종적인 데까지는 못가지 않느냐. 중간단계, 미간 중간단계 협상으로 일단 가고 6자회담 방식, 다자협상으로 돌리고, 잘되면 ICBM(미간) 합의를 보고, 하여간 핵 해체는 아니고 동결 정도? 핵 실험도 안 하고. 그런 중간 단계로 가고 2차 협상에서는 틀림없이 평화협정 문제가 나오고. 평화협정이 나오면 미국으로서는 주한미군 문제가 딜레마인데, 김대중 정권 때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갔다 오면서 주한미군 잔류를 북한도 양해한다.”, 이런 식으로 피알(PR)했어요. 그런데 그게 논리적으로는 안 맞는 얘기지요.

() 그렇죠, 그렇죠.

() 미국으로서는 평화협정 만들고, 불가침협정 한다면서 어마어마한 미국의 군사력이 남한에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안 맞는 거예요. 그 문제를 풀려면 북한하고 바긴을 해야겠지요. 북한도 아마 바긴을 하게 되면 (주한미군을)눈감아 줄 거고요. 왜냐하면 미국이 대() 중국 전략에서 평택기지를 못 빼는 상황이에요. (북한에) 반대 급부를 해줘야 하니까 그런 흥정이 남아있는 거고. 그러니까 서로 제갈공명끼리 붙는 거지요. 

 

문재인 정권이 슬슬 허점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 정상회담 발표 이후에 외교부 통일부가 하는 일이 없어요. 청와대가 운전대를 잡고 있거든요. 

() 청와대가 다 하지. 이제 나는 문재인 정권이 슬슬 조금 허점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과 일본 언론이 한국정부를 북러 캠프로 몰아 붙이고, 국내 정치에서 제주 43 사건을 너무 학살당한 양민문제만 부각해요. 애초에 남로당의 (남한만의) 단독선거 반대 봉기를 부각시키지 않는단 말이야. 보수언론에서는 그걸 계속 물고 늘어지잖아요? 우익에 명분상의 약점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43이라는 것이 남로당의 준동에 대해 ‘10’으로 조지지 않고 ‘100’으로 조졌단 말이야. 그 과정에서 양민이 어마어마하게 희생이 됐고. 이 희생만 부각하고 남로당이 한 것은 부각이 안 됐어요. 문 정권의 발언을 보면, 그건 그렇고 다른 얘기 좀 하지요. 

 

내각책임제하면 우리나라 망해요   

 

()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릴게요. 요즘 개헌 얘기가 본격화돼서. 

() 개헌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지금 제1 야당이 얘기하는 게, 일종의 내각책임제란 말이에요. 내각책임제하면 우리나라 망해요. 한 가지만 얘기 할게요. 정당정치가 가장 잘되고 선진적인 독일에서도 선거 후에 4~5개월 정부 구성을 못했어요. 가장 선진적인 독일에서도 그런데, 정당정치가 개판인 우리나라에서는 흥정판이 되고 말아요.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요. 국회의원을 나도 해 보았지만, 국회의원들은 내각책임제 하면 국물 있고, 발언권도 커지고, 장관할 수 있고, 건더기도 있어요. 한마디로 내각책임제는 최악의 사태예요. 온갖 잡놈들, 지저분한 사람들이 최악의 흥정을 할 겁니다. 정당제가 발달한 독일도 어려운데, 그런 사례만 봐도 내각책임제 하면 안 돼요.  

 

 

() 요새는 일부라도 단계적으로 개헌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 그것은 안 될 것 같아요. 일부 개헌이라니요. 올 오아 낫싱(all or nothing)이지. 또 막상 개헌이 안 돼도 나는 지금 헌법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이명박 박근혜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지금 헌법이 뭐 그렇게 잘못 됐어요?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 5년 단임이 문제인데, 8년 해먹을 이 어디 있어? 박정희부터, 아니 박정희는 그대로 지나갔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8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 그 중에 있으면 손들어 봐요. 5년이면 기껏이여. 5년 단임이 나쁜 제도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이지, 국무총리 했고. 그 양반이 재담을 잘해요. 세종대왕도 장기 집권을 했으니까 한글을 창제했다는 거예요.

() . 세종대왕, 말씀 재미있네요.

() 그래서 우리나라도 외국의 예를 따라 8년을 해야 한다? 지금은 농경시대의 8년이 아니에요. 지금은 전자시대야. 풀 스피드 시대인데. 세상은 아주 빠르게, 세상의 변화가 아주 풀 스피드로 변화하는데, 전자시대의 8년은. 농경시대의 8년만큼 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 5년이면 충분해요. 4년 중임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4년 중임제 중재가 안 되면 5년 단임제도 가하다는 입장이에요.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에 그렇게 칼럼 썼어요. 옛날처럼 슬로우 모션이 아니야. 5년이면 충분하지 뭐. 

 

피투성이 대선전 치른 대통령이 미쳤다고 놀던 사람한테 권한을 넘겨 줘요?” 

 

() 그럼 개헌에서 총리의 역할은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 총리는요. 이홍구 (전 국무총리)를 다시 인용하면, 이홍구의 논설을 보면, ‘실권 총리라는 주장이 많아요. 아니 그, 전면전에 피투성이에 대선전을 치른 대통령이 미쳤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놀던 사람에게 권한을 넘겨 줘요? 그건 정치 역학상 불가능한 거여. 

  

아니, 대통령하려고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김영삼이나 말이야, 그냥 평생을 투쟁하면서 산 사람들이 먹고 논 사람에게 , 권한 반() 가져라?” 그건 정치 역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이홍구, 그 순진한 사람이 총리도 한번 해보자. 나눠 갖자.”. 그건 불가능한 얘기야. 아니 지금, 이낙연(국무총리)이 한테 어떻게 권한의 반을 줘요? 안 그래?

() 하하하.

() 어떻게 이홍구한테 김영삼이가 권한의 반을 줘?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이홍구가 밤낮 그래요.

() 이홍구 전 총리가 슬로건처럼 얘기해 왔는데요. 

 

평화 시절이면 결정은 다수, 대표는 비례로 전환할 필요가 있어요 

 

() 그리고 정부에서요, ‘듀얼 센터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 특히 대통령 중심제니까, 우리나라는.

() 아니, 내 얘기는 대통령 중심제가 좋다는 게 아니에요. 현 상황에서 그렇다는 거지요. 만약에 (남북)평화가 확립되면 내각제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각제로 가려면 전제 조건이 있어요. 완전 비례대표제를 해야 돼요. 지금은 승자독식 아니에요?

() 그렇지요.

() 승자독식이라. 일부의 국민이 전체 의석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완전 비례대표제를 해가지고. 정치학에서, 법학하면서 배운 건데, 유명한 문구가 있어요. ‘비례는 대표의 원리다.’, 그거예요. ‘프로포셔널 시스템 이즈 더 시스템 오브 레프리젠테이션’. ‘머저리티 이즈 더 디시젼’. 다수결은 결정의 원리이고. 대표의 원리는 아니야. 그게 철칙 아니에요? 대표의 원리는 프로포셔널, 100명 있을 때 51명이 다 먹고 49명은 다 나가 떨어지라는 거 아니야? ‘결정은 다수, 대표는 비례로’, 그렇게 병행하면 정치 발전이 되는 거지요. 그건 평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해야 돼요. 아니, 꼭 통일이 안 돼도 평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그렇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미국 큰 언론사들은 윤리를 철저히 지켜요 

 

() 아까 언뜻 말씀하셨는데 지금 국회가. (하실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도무지 질문할 틈을 주지 않으셨다) 

() , 지금, 국회의원들 자질을 좋게 보면 안 돼요. 그 질 좋다 하던 김기식(금융감독원장, 416일 사퇴)까지도. 김기식이를 양질로 보잖아요. 김기식이도 그렇게 해먹었는데, 영어로 그것을 ‘정키팅(jungketing)이라고 그래요. 남의 것 얻어서 해외여행 다니는 거.

() 그런데 그게, 약간 관행이다 뭐,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피감기관이 지금도 관행처럼 뭐를 하고 있을 거란 얘기도 있습니다.

() 내가 좀 잡소리를 하면, (하버드) 니만에 가 있을 때, 니만재단에서 저녁 비용을 부담하는데, 외국의 경우 한국 쪽은 아시아재단에서 전액을 부담하고, 영미권은 포드재단에서 전액 부담하고, 미국과 구라파는 니만재단에서 전액 부담했어요. 그때 캐나다 정부에서 니만펠로 전원을 캐나다 투어를 1주일 동안 초청했어요. 근데, 미국의 큰 신문사는 안 갔어요. ‘정키팅을 하느냐는 거예요. 취재의 경우 회사에 신청하면 돈이 나오는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큰 신문사는 청구하면 나오니까 이들은 빼고 조그만 신문사들만 가더라고요. 같은 원리에요. 언론도 그런 윤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 저희는 요즘 김영란 법이후에 룰(Rule)을 지키고 있지요.

() 김영란 법이. (나는) 요새는 아무런 사회활동을 안 하니까 직접 걸리지 않아서 노코멘트하는 게 낫겠는데요. 내가 사회활동을 하면 관계가 있을 터인데. 느끼는 게 없어. 은퇴했으니까. 그렇잖아요? 

 

처참한 몰락에 책임질 제1 야당은 반성의 연옥을 거쳐야 합니다 

 

() 아까 얘기하셨지만 요즘 야당이 참, 홍준표 대표.  

() 야당? 야당은 누구라고 얘기할 것도 없고. 박근혜의 그, 처참한 참상을 겪은 정당이 정상적일 수가 없어요. 따라서 박근혜의 처참한 도덕성을 책임져야 할 정당 아니야? 그런 정당을 정상적이라고 기대하는 게 무리지요. 박근혜의 처참한 몰락을 책임져야 할 정당은 일정기간 처참한 연옥을 겪어야 돼요. 지옥까지는 안 가고, 그 반성하는 연옥을. 지금 엄청난 진통과 추태와 개판. 그걸 거쳐서 새싹이 나야 해. 새싹은 나오겠지요. 좋은 엘리먼트’(요소)들이 등장해야지요. 지금은 박근혜의 처참한 몰골에 책임져야 할 정당이란 말이야. 그러면 이게 정상일 수가 없다고, 심리적이든 뭐든. 그래서 연옥을 통과하고 있다고 봅니다. 최소한도 1~2년의 과정을 겪고 난 다음에 새로운 세력들이 부상(浮上)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난 그래서 지금 이들을 욕할 필요도 없고 아예 무시해 버리지. 1~2년 후에 좋은 세력이 나타나야만 돼요. 옛날에도 아주 모범적인 세력이 있었잖아요? 

() 지금 야당의 역할이.

() 황우여라고 있었지? 그리고 세월호 사고 때 해양수산부 장관, 그 턱수염 텁수룩한.

() , , 이주영 장관이요.

() 아 그래, 이주영. 그런 좋은 엘리먼트들이, 꼭 그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좋은 엘리먼트들이 떠올라야지. 지금은 개판일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에는 타고난 분열이 있잖아요?” 

 

() 근데, 진보로 바뀌었다고, 진보 정부에 대한 보수의 공격,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진 정부인데요. 태극기 집회라든지 사회분열이 여전히 있습니다. 반대 집회와 찬반 집회가 계속되고 있고요. 

() 우리나라엔 타고난 분열이 있잖아요?

() 하하하.

() 아니, 주어진 조건. 이북 피난민들을 두 가지로 분류해요. 625 전에 온 사람들, 그들은 대개 지주계층 아니면 부르조아란 말이야. 우선 김일성이를 피해서. 이들이 남한에 와서 주도권 잡고 다 성공했죠. 엄청난 노하우에다 교육에다, 돈도 있고. 그 다음에 625 때 폭격이 무서워서 온 사람들. 그들은 대개 상층은 아니라고.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구별해야 하는데, 여하간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북한 정권에 대해서 인그레인드(ingrained) 헤이트리즈가 있단 말이야. 그것도 생각해야 되고. 또 경상도하고 비경상도하고 달라요.

() 비경상도라.

() 왜 그러느냐? 경상도는요, 첫째는 대지주가 없었어요. 전라도 쪽엔 대지주가 있었어요. 경상도에는 대신 자작농중농이 많았어요. 전라도 권은 대지주가 있는 대신에 소작농이 쫙 깔렸단 말이야. 그게 해방 당시의 분포인데. 그래서 대지주 중심이라는 게 한민당 아니야? 자작농에 유교권이 겹쳐 가지고 경상도 기질을 만든 거야. 소작농들의 에이 썅! 지주놈들 말이야.” 저항의식, 이런 것이 전라도 기질이란 말이야. 

  

거기다가 박정희 시대에 공장을 전부 경상도에 만들었어요, 전라도엔 안 짓고. 경상도는 부익부였어. 거기에 또 있어. 625 때 경상도 일부만 북한군이 안 오고 전라도 이 쪽은 전부 다 점령됐어요. 국군 장성급의 기간이 전부 경상도야. 516 쿠데타 세력이 전부. 그 후로 전두환 세력까지 전부 경상도야.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더 세월이 필요한 지역 대립이 철저히 잔존하고 있어요. 이런 측면도 봐야 한다고, 그런 여러 가지. 아니, 복잡해요 복잡해. 남북 피란민하고 경상도전라도 이런 거. 

  

그래서 이것이 단순한 정치 색깔만 아니고 그런 그, ‘주어진 조건 플러스(+) 정치 색깔’. 거기서 아까 얘기한대로 문재인 정권이 비교적 잘한다 싶은데, 그런 허점을 보인다고. 가령 43의 언동을 보면 우익세력이 탓할 게 많다고, 그렇죠? 남로당 쪽의 색깔을 (전혀) 언급 안 하고 학살된 양민만 부각시키고. 그것도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 저게, 인제 우익세력의 반격에 하나의 기반이 되는 거지요. 우리나라 참 복잡해요.

() 참 복잡한 것 같습니다.

() 나는 참 이 와중에, 충청도니까. 비교적 공정해요.

() , 충청도이시군요. 정말 캐스팅 보트를 쥐고.

() 양쪽을 균형 있게 보지. 그 중에서도 청주(淸州)니까, 센터지 센터. 전라도 경상도를 아주 객관적으로 본다고. 

 

아직도 종이신문 시대는 꺼진 게 아니야 

 

() 장관님, 20년 넘게 언론계에 계셨는데 지금은 미디어 환경이 참 많이 변했지요? 종편인 JTBC가 큰 역할을, 어떻게 보면 촛불로 이어지게 된. 미디어가 페이퍼 중심에서 많이 변하고. 옛날에 저널리즘, 저널리스트에 대해서 후배들에게 옛날만큼 얘기들, 롤모델이 없는 게 아닌가, 후배들한테 어떤 얘기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 글쎄요. 언론환경이 너무 변해서 지금 신문이. 부수가 안 나가잖아요?

() 그렇죠.

() 그리고 주간지, 주간지도 확확 준다데?

() 예 요즘엔 거의 안 보는 것 같아요.

() 그리고 예전에 박근혜 반대 기풍이 있을 때는 비판적인 주간지가 많이 팔렸는데, 요즘에 정권 교체되고 그마저도 확확 준다데? 그리고 하여간 인터넷이라든지, 무슨 그, 페이스 북, 트위터, 온갖 전파매체들이 있어서 옛날하고 완전히 달라졌지요. 나는 석기시대라. 나는 아직도 종이 매체에 의존하는 구시대인이란 말이야. 구시대인이라, 내 판단이 안 맞을 것 같아요. 지금 그 사람들한테 안 맞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미국에서 지금 트럼프의 트위터하고 워싱턴포스트하고 싸우잖아. 뉴욕타임스인가? 싸우는데, 역시 가장 선진적인 미국을 보면 그런 여러 가지 매체들이 발전했어도,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가 아직도 정론을 리드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느냐? 그래서 위안을 느끼죠. 그래서 아직도 종이신문의 시대는 꺼진 게 아니다. 하도 많이 변해서 잘 모르겠어요.

() 한국도 그러면,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얘기하셨는데... 한국도 그러면 신문이 여전히 파워를 갖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역할을 해야 하는데, 부수가 확확 줄어서 영향력이 아주 급감하는 거죠. 급감하는데, 아마 제3자가 한국 와서 관찰하면, 신문사의 편향이, 편견들이 너무 심하다고 볼 것 같아요. 가령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딱 어떤 사람이, 공평한 외국 저널리스트가 와서 본다면, 이 사람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다르게 보도하는구나. 이상한 나라다.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보면 외국 사람은, 공평한 사람은 이상하다고 느낄 거야. 조선일보가 묘하게 극우 편견을 축적해 나가고, 한겨레는 부수는 훨씬 적지만 진보 편견을 또 편견 이미지를 축적해 나가고. 그렇게 갭이 자꾸만 (영향력을) 차단하는 거지. 그 외국 사람 공평한 입장에서 보면 놀랄 거야. 서울신문은 좀 무색무취라, 하하 미안해요. 

 



 

서울신문은 칼럼 필자연구해서 참신한 인재 많이 발굴해야 돼요 

 

() 저희는 중도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 무색무취야, 서울신문은. 아니, 컴플레인. 서울신문에 컬럼이 4개 나요? 5개 나요?

() 그게. 저희가 5개 정도 될 것 같습니다.

() 그래, 5개 나지? 5개 컬럼이 나는데 그렇게 컬럼 발굴을 못하나요? 그 아까운 면을 말이야. 에디터가 모든 간행물을 관찰해서 참신한 필자들을 픽업해야 돼. 그런 노력이 없다는 말이에요. 잡지들 다 보면서, ! 이거 좋은 거다. 발굴해서 실어야 한다고. 그런 걸 않고, 아무한테 가서 부탁하니까, 5개 중에 하나도 읽을 게 없는 신문을 만드는 거예요. 기자들이 쓰는 건 그 다음에 얘기하겠어요. 컬럼의 두 페이지가 완전히 죽은 면이야. 5개 컬럼 중에 읽을 만한 게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대체, 그게 뭐야. 컬럼 담당자가 필자 군()에 대한 연구를 안 했다는 말이야. 필자 중에는 새로운 젊은 사람들도 있고, 나이 든 사람도 많잖아. 필자군을 연구해서 앗 참신하다.” 이런 필자를 써야지요. 서울신문이 계속 앞서나가는 신문이 되어야지. , 진보가 아닌 글만 써가지고 그 아까운 지면을 버리고 있으니 말이야. 아고, 나는 질려. 서울신문에 이렇게 인재가 없나? , 기사 얘기는 안 하겠어요.

() 기사에 대한 얘기도 해주시지요.

() 그건 요 다음에요. 

 

서울신문 때 나는 언론인이 아니야, 비판의식이 없어졌으니까 

 

() 아 나중에요? 하하. 우리 장관님 의대 다니시다가 법대 가시고, 언론인에서 정치인, 그리고 장관, 교수, 너무 다양한 경험을 하셔서. 

() 서울신문이 정부 기관지였다고. 그러면 정부 기관지에서 편집국장 5, 주필 1년 반 하면 언론인의 직분을 내가 못하는 거야. 아니 가정을 해봐요, 그 위치에 있었다고, 나는 이미 언론계에서 열외야. 그때만 해도 보안사 전신이던 특무대 대장이 (서울신문) 감사야. 사장들은 전부 고관들이 와요. 거기서 편집국장, 주필했다면 난 이미 언론인이 아니야, 기능인이지. 언론인이 아니야 비판의식이 없어졌으니까. 그럼 갈 데가 어딘가? 정부관리가 되거나, 서울신문 경영자가 되거나, 뭐 정계로 가거나 그 길 밖에 없어. 내가 언론계에 갈 수가 없잖아. 그래서 어떡해. 공천 준다고 해서 간 거지.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 한국일보에도 계셨고 조선일보에도 계셨고.

() 내가 조선일보에 10년 있었는데, 처음에 기자로 들어갔다가, 정치부 차장했다가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됐다가 여기(서울신문) 차출당해 온 거야. 안 간다고, 안 간다고, 거기 다 씌어 있어요.

() , 다 있습니다. 그대로 정계로 가셨다가 장관도 하시고, 교수도 하셨는데요. 사실 이 질문은 저희가.

() 교수, 호남대 5년을 했어요. 광주에 있는 거. 객원교수 5년을 했는데. 최근에 호남대 교수한테, “요즘 재미가 어떠노?” 그랬더니, 호남대라고 쓰지 말래요. 잊으라고. , 교수할 맛이 없다는 거야. “왜 그러냐?” 했더니, 졸업생이 취직이 돼야 교수할 맛이 있지 말이야.

() 교수님들, 졸업생 취업 평가 받고 있지요.

() 졸업해도 취직이 잘 안 된다는 거야그러니 교수할, 얼굴도 못 들겠고, 재미도 없고. 소위 지방대학들의 비애, 취직이 안 되니까. 나 갔을 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요새는 취직이 잘 안 되니까. 

 

소심하고 겁 많지만 정도 지킨 송건호를 가장 좋은 언론인으로 봐요 

 

() 장관님은 사실 저희가 따르고 본 받아야 할 선배님으로 되어 있는데, 요즘 저희가 보면 큰 인물, 우리가 따르고 존경해야겠다 싶은 큰 인물들이 많이 더 계셨으면 좋겠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어느 분야에서나, 언론계에서도 사실은 이제는 너무 없는 것 같아서요. 글쟁이들도 없는 것 같아요. 

() 김 차장 얘기를 미리 꺾어서 얘기할까. 우리나라 언론계 거물에 천관우라는 기자가 있었는데 아주 대기자지. 그 사람이 말년에 훼절을 해가지고, 완전히 잊힌 인간이 되어버렸어. 알죠? 왜 그런지. 아니, 박정희 정권 때는 언론 투사로 용감했는데, 전두환 정권에 협조하는 바람에 완전히 그냥 잊혀졌어. 훼절한 걸로. 천관우라는 사람이. 그리고 최석채라는 사람이, 조선일보 주필했던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저널 IPI에서 20세기 언론인으로 선정됐는데, 그 사람도 별로야. 박정희 정권하고 짝짝꿍 되고. 송건호, 한겨레 창간 사장 아냐? 송건호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괜찮은 언론인으로. 그런데, 송건호 자신은 영웅적이 아니야. 엄청 겁 많은 섬세한 인간이야. 아주 겁이 많고 주저주저하고, 아주 소심하고. 그런 게 송건호야. 그러면서도 언론의 정도를 안 벗어나려고 꾸준히 인내하면서 노력하고. 나는 오히려 송건호적인 언론인이 필요하다고 봐요. 용감하게 투쟁하고 뭐 깃발들고 이런 사람보다 아주 소심하고 용기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세심하게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겁 많은 양심가. 겁이 많아. 그런 언론인이 오히려 소중한 게 아닌가 싶어요. 뭐 괜히 앞에 나가서 투사연하는 사람들보다. 투사연하는 사람들도 보면 또 나중에 꺾여요. 꺾여서 또 이상한 짓 해. 그래서 나는 언론인 중에는 오히려 천관우 이런 사람보다는, 천관우 최석채 선우휘 이런 사람보다는 송건호적인 아주 소심하고 세심하고 겁 많고, 그러면서 꾸준히 정도를 지키려고 애쓰는 송건호를 가장 좋은 언론인으로 봐요.

() 최근 쓰신 책 중에 진보.

() 진보열전, 거기에 송건호 나와요.

() .

() 송건호 나오는데, 송건호를 가장 근사하게 쓴 멘트가 뭐냐면, 박정희가 각사 정치담당 논설위원이랑 술을 먹었는데, 송건호가 동아일보, 내가 조선일보, 임방현이가 한국일보. 박 대통령이랑 진탕 술을 마셨는데, 동아일보가 가장 유력지 아냐? 박정희가 송건호를 부수려고, 송건호한테 송 선생, 내가 뭐 하나 봐주고 싶은데, 소원 있으면 하나 말해보라. ?, 박정희가 그랬다고, 그런데 그 송건호가 각하, 지방에 공장이 많이 들어찼다고 하는데 저는 공장을 한 번 못 가봤습니다”, 그랬어. 그래서 겨우 산업시찰했어.

() ?

() 그게 얼마나 송건호다워?

() 그냥 바빠서 (공장에) 못 가셨던 거 아니에요?

() 아니, 다른 사람들 같으면 세계일주를 한다든지, 어떤 사람들은 연구비를 왕창, 요새 돈으로 몇천만원 타냈어. 그런 사람도 있어, 논설위원 중에. L이라는 사람은 연구비를 말야 정확하게는 몰라도 몇천만원 가까이 타냈을 거야, 김일성 연구한다고.아니 그런 판에, 술을 왕창 먹고 기분이 좋은 판에, 송건호는 겨우 산업시찰.

() 지방에 가신 거네요.

() 그러니까 송건호가 그렇게 세심하고 어리석고, 그런 언론인의 양심. 그래서 난 송건호가 최고라고 봐. 진보열전에 나와요.

() 제가 지금 읽기 시작했습니다.

() 다른 사람들은 개판이야. 어떤 언론인은 말야. 박정희랑 술 먹고, 그런 거 가지고김현옥 시장한테 어디 시유지 하나 불하해달라고 뭐 이렇게 이권운동도 하고, 그런 언론인도 있고 말야. 개판들 많았어. 그런데 송건호는 산업시찰. 그건 내가 썼어. 내가 말하자면 지적소유권으로 말야.

() 처음으로 밝히신 걸로.

() 그런데 송건호에 대해서 가장 ‘리얼’하고 가장 송건호적인 면모라고.

() 진짜 딱 어떤 분이신지가 딱 그려지는.

() 나하고 조선일보에 송건호가 같이 있었는데, 송건호가 조선일보 논설위원이랑 동아일보. 그럼 어떤 때는 밤에 요맘 때 쯤에 늦게 퇴근할 때가 있어. 그럼 아고, 나는 한번 갈비나 실컷 먹어봤음 싶어나한테 그런다고. “아니, 송 선생 갈비 먹을 돈이 없어서 그래요?” 내가 그런다고. 왜냐, 논설위원 월급을 쪼개서 생활비 주고 그 중에 일부로 책을 사. 책을 너무 많이 사가지고 갈비 먹을 돈이 없어. 그냥 나머지 돈은 다 책 사니까.

() 우리 장관님도 만만치 않은데, 책으로.

() 나는 그래도 편집국장, 뭐 주필하니까 돈 있잖아. 논설위원은 돈이 없잖아. 그러니까 갈비를 실컷 먹고 싶다는 게 소원이요. 왜 월급을 타면 일정액을 책을 산단 말야. 생활비를 주고. 그런 소심한 송건호, 겁 많고 소심한 송건호가 죽을 때까지 언론의 정도를 지켰잖아요. 언론의 정도를. 언론계를 정돈시켰잖아요. 그래서 한겨레 창간 사장. 정말 피눈물 나게 고생한 실직생활. 동아일보 편집국장 그만둔 다음에, 언론자유 때문에. 그 다음에 10년 이상을 아주 그냥 궁핍의 시대를. 그 고생하는 거 쓴 거 보면 비참해. 그 어린 애들 서너 명을 원고 써서 먹여 살렸다는 거 아냐. 원고료가 몇 푼 돼? 그러니까 원고 써달라면 다 쓰는 거야. 어디서든 원고 써달라면 다. 원고료 다 받아봤자 한달100만원 더 벌었겠어? 아무리 벌어도? 그거 가지고 어린애 서너 명 학교 다니게 하고, 그러니까 굶다시피 했지. 맨날 식은땀만 났다는 거 아냐? 그런데 그 사람 동아일보 편집국장 그만둔 다음에 고생한 얘기, 그러면서도 세심하게 정돈, 영웅적인 투쟁은 안 했어. 그런 행동도 아주 근사한 사람이야. 

 

책을 많이 보면 결론만 보면 알아, 다 읽을 필요 없어요 

 

() 장관님도 사실은 책으로는 말씀 듣기로 2.5톤 트럭 20대라고 어디서 소개했던데요? 

() ?

() .

() 책은 4~5만권 됐지.

() 그럼 그걸 다 어디에 관리를, 간수를?

() 비보도 전제로 한겨레에 줬어.

() 진짜요? 그 책을요? 다 주셨어요? 저희한테도 좀 주시지.

() 한겨레에 줬는데, 기자들이 나눠가진 다음에, 나눠 가져봤자 몇 천권 아니야? 나머지 몇 만권을 그냥 독자들한테 1000원짜리 쿠폰을 가지고 한 권 씩 다 가져가라 하니까 인산인해로 몰려들어서 싹 가져갔단 거 아냐. 1000원짜리 쿠폰이면 책 한 권이니까. 나중에 인터넷에 난 거 보니까, 내가 미켈란젤로 조각사진책을 15만원에 샀는데, 어떤 여성 독자가 1000원으로 그 책을 사가지고 나왔더라고. 그 얘긴 (언론 매체에) 나와 버렸어. 나는 비보도라고 했는데, 인터넷에는 나버렸어.

() 그럼 비보도가 아닌데요. 공개가 됐는데요. 그럼 그 분은 완전히 대박이네요.

() 아니 한겨레에는 안 나왔어. 한겨레는 보도를 안 했어. 그런데 기자들이 나눠 갖고 나머지가 몇 만권이니까, 한겨레 독자들한테, 1000원으로 전부 가져가라 하니까 인산인해로 몰려들어 싹. 1000원에 몇 만원짜리를 막 가져 간 거니까, 하하. 그런데 내가 몇 만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읽은 건 아니야. 그냥 사두기만 했지. 어떤 건 서론만 보고, 어떤 건 결론만 보고, 그런 식으로. 책을 많이 보면 결론만 보면 알아, 다 읽을 필요 없어. 

  

녹색평론이라는 데가 있어. 계간지. 녹색평론 작년 송년호에 나의 독서라는 제목으로 한 80, 20080장 게재했어요. 대충 뭘 읽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읽으려다 재미가 없어서 때려치우고, 그 대신에 폴엠 스위지의 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는 싹 읽었다. 소설은 뭘 읽고, 마지막에는 소설 읽은 것 중에는 조지 오웰이 좋더라, 뭐 그런 얘기. 70-80장 썼어요.

() 아직도 왕성하게 기고하시고 글도 쓰시고.

() 아니 원고료 있다는데.

() 장관님과의 대화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아쉽네요.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진 1시간가량의 식사에서도 남 선배님은 정열적으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지칠 줄 모르는 선배님의 나라 사랑과 언론 사랑, 언론계 후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옆 자리에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이부영 전 국회의원, 박기정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김호준 전 서울신문문화일보 편집국장 등 언론계 출신 선배들이 모임을 갖고 있었다. 그 분들이 모두 남 선배님을 보고는 달려와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보기 좋았다. 

 

□ 이메일 

김미경 서울신문 정치부 차장 chaplin7@seoul.co.kr

 

남재희 전 서울신문 주필 

경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1958)

- 한국일보 기자(1958)

- 조선일보 기자, 문화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논설위원(1962~1972)

- 서울신문 편집국장(1972)

- 21대 관훈클럽 총무(1974)

- 서울신문 주필(1977)

- 10~13대 국회의원(1979~1992)

- 파나마의원친선협회 회장(1987)

- 캐나다의원친선협회 회장(1988)

- 국회 윤리특별위원장(1991)

- 노동부 장관 (1993~1994)

- 호남대 객원교수(1997~2001)

 

저서

- <스튜던트파워> 공저

- <모래 위에 쓰는 글>

- <정치인을 위한 변명>

- <양파와 연꽃>

- <일하는 사람들과 정책>

- <언론정치 풍속사>

-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

- <남재희가 만난 통큰 사람들>

- <진보열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