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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저널

[특집Ⅱ] 정간법 개정안의 문제점

필자 :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발행 : 2002년 봄호(통권 82호)

 

기획


정간법 개정안의 문제점


南時旭(전 문화일보 사장)


앞으로도 재론될 가능성 있어

지난 2월 8일 여야 의원 27명이 국회에 제안한 정간법(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당 지도부와 사전협의 없이 제출되었기 때문에 여야 3당이 모두 이를 묵살할 방침이다. 정부의 주무부인 문화관광부 역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이 개정안의 국회통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개정안을 둘러싼 시비도 잠깐 일어났다가 금세 수면 아래로 잠복하고 말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에 제출된 개정안은 그동안 언개련(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추진해온 언론개혁안과 거의 같은 내용이어서 언제든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으며, 개정안 중 온라인 매체에 대한 법적 규정 등 일부 조항은 시급한 입법조치가 필요한 시의적절한 내용들이다. 따라서 비록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정간법은 어차피 손질해야 할 상황이어서 이번 개정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본문 54조와 부칙 6조의 전문개정 형식을 취한 이 법안의 주요골자는 발의 의원들 자신이 열거한 바에 의하면 10가지에 달한다. 정기간행물의 사회적 책임 강조, 특수신문 온라인신문 정기간행물사업자 및 독자 등 새 용어의 정의, 편집의 자유 보장, 정기간행물의 공적책임 및 공정성과 공익성 조항 신설, 다른 매체의 겸영(兼營)제한 강화, 정기간행물의 경영정보 보고, 일간신문 및 통신사의 편집위원회 구성과 편집규약 제정, 독자의 권익 보호와 독자위원회 설치 의무화, 언론중재제도 개선, 국가의 광고 및 정기간행물에 대한 지원조항 신설이다.

필자가 볼 때 개정안 중 온라인신문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정기간행물로 인정한 것과 언론중재제도를 개선하여 언론피해 구제를 용이하게 한 점, 현행법에 규정된 신문발행시설요건 조항을 폐지한 점 등은 진일보한 것이다. 특히 언론중재제도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반론보도청구권만 조문화된 것을 손해배상청구권과 정정보도청구권을 도입하고(25조 및 27조) ‘중재결정’제도, 즉 직권중재제도를 도입한 것(35조)은 획기적인 것이다. 이에 비해 이 개정안 중 최대쟁점이 되고 있는 편집위원회 설치와 편집규약 제정과 함께 경영정보 보고 의무화 등은 입법 의도에 의구심이 가는 문제조항들이다.


신문과 방송을 같이 취급

우선, 이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인 신문의 공적기능 조항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개정안은 현행법과 달리 신문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1조), 그 공적책임 조항(4조)과 공정성 및 공익성 조항(5조)을 신설함으로써 방송법과 성격이 비슷해져 버렸다. 현행 정간법은 법제정 목적을 “이 법은 정기간행물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언론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1조)고 단순하게 규정한 데 비해 개정안은 “이 법은 정기간행물의 발행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정기간행물의 사회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민주적 여론 형성과 공공복리의 증진을 도모하고 언론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1조)고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개정안 1조는 놀라울 정도로 방송법 1조와 내용과 표현이 유사하다. 방송법 1조는 “이 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 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정간법 개정안과 방송법이 서로 닮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2개의 조문을 비교할 때 방송법에만 있는 ‘시청자의 권익 보호’와 ‘국민문화의 향상’이라는 구절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은 표현까지 두 조항이 거의 같다(정간법 개정안의 ‘사회적 책임’과 방송법의 ‘공적책임’ 구절이 서로 다르지만 정간법은 4조에 공적책임 조항을 따로 규정하고 있음). 

개정안이 방송에 요구되는 공공성을 신문에도 도입한 사실은 중요한 대목이다. 지금까지 우리 언론법 체계는 언론기본법이 87년 폐지된 이래 신문에 대해서는 공공성 조항을 두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을 달리 취급한 것은 신문은 사기업이고 전파는 국가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따라 방송사업은 허가제로 하고 공공성을 부여하고 있는 반면, 신문은 발행이 자유롭고 허가제가 금지되며 사기업으로서 법적 규제도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근본적인 언론철학에 중대한 수정을 가하려는 것이다. 개정안에 들어간 정기간행물의 공적책임 조항(4조)과 정기간행물의 공정성과 공익성 조항(5조)은 방송법에 규정된 방송의 공적책임 조항(5조)과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조항(6조)과 내용이 거의 같다. 즉, 공적책임으로서는 인간의 존엄 및 가치 그리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존중, 국민화합 및 민주적 여론 형성,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신장, 타인의 명예보호, 범죄 및 부도덕한 행위의 조장 금지, 음란퇴폐 또는 폭력조장 금지의 6개항을 규정했다.

공정성과 공익성에 있어서는 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 성별 등에 의한 차별보도 금지, 소수계층 보호,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과 민족문화 창달, 정부 또는 정당, 특정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게 균형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등 5개항의 자세한 규정을 두었다. 이들 공공성 조항은 2000년 11월 언개련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국회에 공동 청원한 정간법 개정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처럼 개정안은 방송법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신문에 그대로 도입함으로써 지금까지 방송에 엄격하게 요구되고 있는 보도의 공정성, 객관성, 균등성, 균형성―즉, 중립성―을 신문에 확대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개정안은 보도와 논평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간행물이 아닌, 단순한 생활 안내지 등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기타 간행물’도 정기간행물 안에 포함시켜 놓고(2조 11항) 이같은 공정보도 기준을 일률적으로 모든 정기간행물에 적용토록 함으로써 이런 ‘기타 간행물’까지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지면을 만들도록 요구하는 난센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5공의 언론기본법으로의 회귀

이번 개정안은 방송법에 규정된 공공성을 정간법에 도입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1980년 제정된 5공의 언론기본법과 흡사해졌다. 언론기본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보호하고 여론형성에 관한 언론의 공적 기능을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공공복리의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신문의 공적기능을 강조했다. 언론기본법은 또한 신문의 공적책임 조항(3조)을 별도로 두고 있는데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내용은 이번 개정안의 공적책임 조항(4조)과 거의 같다. 또한 이번 개정안과 언론기본법은 국가의 지원을 규정한 조항에서도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언론기본법을 초안한 것으로 알려진 박용상 판사는 이 법이 독일의 ‘언론의 공적과업’(꿧fentliche Aufgabe der Presse)의 개념을 기초로 했으며 언론의 공공의 책임을 제도화한 것이 이 법의 특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에 의하면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다수 국가에서는 신문이 종래의 자유주의 아래서 인식되던 단순한 사적 이윤만을 위한 기업이라는 관념은 더이상 용인되지 않게 됐으며 신문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여론기관으로서 ‘공적인 영역’에 존재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됐다는 것이다.1)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미 당시에도 언론기본법이 언론, 특히 신문의 공공성을 규정한 조항을 도입한 진정한 목적은 언론규제에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 기자사회에서는 그런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언론기본법은 정보청구권과 취재원 보호 등 몇 가지 전진적인 조항을 두고 있으나 실제로는 예외규정이 많아 유용성이 의문시되었다. 신군부는 언론의 공적책임이라는 미명하에 이 법을 제정하여 많은 규제조항을 두었기 때문에 이 법은 언론자유보장법이 아닌 언론규제법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문은 대중매체로서 정당처럼 국민여론형성 기능 등 여러 가지 공적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언론출판의 자유는 고전적 자유권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언론출판의 자유는 국가가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자유권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 개정안은 어떤가. 언론자유의 보호와 언론규제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 개정안과 언론기본법의 내용에 있어 차이점은 언론기본법에는 편집과 관련하여 편집인을 형사처벌하는 규정까지 있으나 개정안에는 그런 조항은 없고, 주로 발행인이 자금출연 등 경영상 의무를 위반했을 때 형사처벌키로 한 것은 진일보한 점이다.

반면 선진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취재원 보호 조항은 언론기본법에는 있지만 그보다 2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입안된 이번 개정안에는 없다. 이 사실은 작은 것 같지만 이번 개정안의 근본 입법목적이 규제 쪽에 치우쳐 있음을 말해준다. 취재원 보호 조항은 한국언론이 중시해야 할 탐사보도의 장려를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하며 선진국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런 조항을 넣지 않은 것은 입안자들이 진정한 언론발전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언론사주 규제에 정신이 팔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입법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었음을 말해준다.

5공의 언론기본법이 언론에 대한 국가권력, 즉 정부권력의 규제 쪽에 치중했다면 이번 개정안은 국가권력과 노동조합 양쪽으로부터 신문사 소유주 내지 발행인에 대해 상당한 제약을 가하려고 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신문사주가 ‘공정보도의 적’이라는 근거 없는 전제하에 노조의 발언권을 높이고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 역시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론자유의 내용인 발행과 편집의 자유를 제약할, 즉 기본권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를 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편집위원회와 편집규약의 문제들

편집위원회 설치(19조)와 편집규약의 제정 의무화(19조)는 이 개정안의 핵심조항이다. 원래 언개련 등 시민단체들은 언론개혁을 위해 신문사 대주주의 소유지분 제한-즉, 개인소유 금지-과 편집권 독립이라는 양날의 칼을 마련했으나 개정안 제출 과정에서 전자는 채택되지 않고 후자만이 유일한 편집권 독립조항으로 들어갔다. 이 조항은 신문사와 통신사가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편집위원회를 구성하되, 그 구성방법은 사주측 편집위원과 근로자측 편집위원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근로자측 위원은 노조가 있는 경우는 노조에서 위촉하도록 했다.

편집위원회는 편집규약을 제정하여 그 안에 ① 편집의 공공성과 자율성 보장 ② 편집위원회의 구성 조직 임기 운영 ③ 편집위원회의 자율성 독립성 공정성 보장 ④ 편집의 기본적인 원칙 및 지침 ⑤ 양심에 반하는 취재 제작의 거부 문제 ⑥ 윤리문제 ⑦ 편집위원회의 규칙 제정 ⑧ 편집인의 자격 ⑨ 편집방향의 심의 결정 변경 ⑩ 독자위원회의 의견반영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편집규약을 제정하지 않는 경우는 신문사주에게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위반할 경우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개정안이 언론개혁론자들이 애용하는 ‘편집권 독립’이라는 용어 대신 ‘편집의 자율성’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규정하고 있는 편집위원회의 권한은 현재 언론계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신문사의 관행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종래 우리 언론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사시(社是)와 편집의 근본강령은 회사(이사회 또는 발행인)에서 정하고, 구체적인 편집지침은 회사가 임명한 편집인 또는 편집국장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1987년부터 언론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상당한 변화가 왔다.

노사간에 체결된 편집권에 관한 단체협약에 따라 편집권의 귀속은 언론사에 따라 약간씩 달랐다. 즉, 회사가 편집국장을 임명할 때 편집국원의 동의 또는 신임을 받도록 하고, 편집권에 대해서는 그것이 편집국장에게 귀속된다는 언론사와 편집국원이 편집권을 공유하되 최종 결정권은 편집국장이 갖도록 한다는 언론사, 그리고 편집권 귀속에 관해 아무런 규정도 안 둔 언론사의 세 갈래로 나뉘었다. 이와 함께 각 언론사는 편집국 내의 의견수렴을 위해 편집간부들과 기자대표들이 참석하는 제작협의회를 설치하여 편집제작에 관해 토의하고 그 결과를 편집국장에게 건의하도록 하고 있다(이와 별도로 언론사 노조는 대개 공정보도위원회를 만들어 노조 차원에서 보도의 공정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노조 조직의 일부이고 회사와는 관련 없다).

이같은 노사협약에 따라 현재 각 언론사는 사시와 기본적인 편집방침은 회사가 정하되 그 범위 안에서 편집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과 결정권은 편집 책임자(편집인 또는 편집국장)가 갖도록 하고 편집국장 임명에 편집국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언론사 노사분규가 한창이던 1987년 편집권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편집권은 최종적으로 신문 발행인 및 이사회, 구체적으로는 편집을 위임받은 편집인에게 마땅히 귀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1948년 일본 신문협회가 발표한 ‘편집권 성명’을 모델로 한 것이다.

만약 이번 정간법 개정안대로 노사가 참여하는 편집위원회가 편집의 기본강령과 구체적인 편집지침을 결정한다면 종래 발행인이나 이사회 또는 편집 책임자가 행사하던 권한에 결정적인 제약을 가하게 될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개정안의 편집위원회 조항에 그 구성비율과 정원에 관한 규정이 없는 점이다. 당초 시민단체가 국회에 청원한 정간법 개정안에는 편집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도록 했으나 개정안에서는 이를 삭제했다. 독자위원회와 중재위원회의 경우 개정안이 그 정원과 구성비율을 정하면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라 할 편집위원회의 정원과 구성비율을 규정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 있을까. 노사 동수 구성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의식한 데서 나온 것인지,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이것을 넣자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사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인지 분명치 않다.

이에 대해 제안자인 심재권 의원(민주)은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해당 조문에 그렇게 명시해야 한다. 이 조항을 그대로 둔 채 개정안이 통과되면 편집위원회의 정원과 구성비율은 대통령령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어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편집규약 운동의 기원 

편집규약은 독일의 선례가 한국에서 많이 참고되고 있으므로 독일의 편집규약 제정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의 편집규약 제정논의는 1960년대 중반, 그때까지 발행인의 고유 권한으로 인식되던 편집에 관한 권한행사에 편집인(편집 책임자)과 기자들(편집진)이 참여하려는 본격적인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이 운동은 이때 이른바 ‘내부적 언론자유’(Innere Pressefreiheit)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났지만 그 뿌리는 훨씬 깊다. 이미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인 1920년대에 신문편집인단체인 제국신문협회(RDP)가 신문사 내에 편집위원회를 설치할 것과 신문의 노선변경 또는 소유권 변경으로 인해 편집인과 기자들에게 정신적, 경제적 손해가 생길 경우 이를 보상하도록 발행인에게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발행인과 기자대표 간에 단체협약이 체결되었다. 1930년대에는 나치정권이 편집인법(Schriftleitergesetz)을 만들어 발행인과 편집인의 역할을 명시했다.

2차 대전 후 50년대 초부터는 언론의 내적 자유 보장을 위한 입법화 운동이 기자단체에 의해 추진되었다. 핵심은 언론사에도 일반기업에서 시행하는 노사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60년대 중반부터 유럽 일대를 휩쓴 학생운동과 좌파바람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운동이 일면서 신문사의 내부적 언론자유 문제도 정치쟁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신문사, 잡지사, 종교법인 등 고유의 이념적, 정치적 노선에 입각하여 운영되는 기업은 경향보호법(Tendenzschutzgesetz)에 의해 공동결정권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법을 고쳐야 했다. 그러나 발행인은 물론 보수적인 기민당 정부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언론사별 편집규약이었다.

독일연방신문발행인협회(BDZV)는 각사별로 단체협약 체결에 나섰다. 물론 여기에는 신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입법화를 막으려는 계산도 작용했다. 단체협약은 대체로 1969∼73년 체결되었다. 편집규약(Redaktionsstatut)이라고 불린 이 협약을 69년 4월 최초로 체결한 언론사는 남부의 지방신문인 ‘라인차이퉁’(Rhein Zeitung)이다. 이 신문에서는 발행인과 편집인이 협의하여 기본입장과 편집의 기본노선을 정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사민당 당기관지(Vorw둹ts=‘앞으로’)는 발행인과 맞먹는 공동 결정권을 편집인과 근로자협의회에 부여했다. 

편집규약은 편집인의 권한에 있어 언론사별로 차이가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그 언론사가 발행하는 매체의 목적과 정치적 입장 및 편집노선을 밝힌 다음 발행인이 회사의 기본원칙을 정한다고 명시하고, 편집진은 그 범위 안에서 기사와 지면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신문사에 따라서는 발행인과 편집인의 협의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편집 책임자에게 편집업무를 위임하기도 했다.

편집인은 기업으로서의 신문사의 성격을 이해하고 기사가 회사의 사시를 훼손하거나 회사에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경우는 사전에 경영진과 협의하며, 편집인에 대한 인사권은 경영진이 행사하되 기자들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기자총회는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편집에 관한 전체 기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기자들을 대표하여 경영진 및 편집인과 기자의 인사에 관해 협의한다. 편집인과 기자 간에 기사에 관해 이견이 있을 경우 최종 결정권은 편집인이 갖도록 한다고 했다. 기자는 자기 양심에 반하는 기사를 쓰도록 강요받지 않고, 경영진이 신문사의 기본입장을 변경할 경우 이를 기자총회에 회부해야 하며, 기자가 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는 퇴직금 이외에 2년치 정도의 월급을 준다는 것이다.  

편집규약 운동은 69∼72년 절정을 이룬 다음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이르러 언론사 경영이 불황으로 어려워지면서 대부분 경영진에 의해 파기되고 말았다. 기자들도 경제침체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안과 신기술 도입으로 해고될 위기에 처함으로써 편집규약 문제는 언론계의 관심권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편집규약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1999년 현재 전국 135개 신문·잡지사 중 9개에 불과하다.2)


독일 연방신문법 제정운동의 유산

편집규약 체결을 법제화하려는 운동은 계속됐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독일의 보수적인 정치 분위기에 변화가 오자 이 운동은 한층 탄력을 얻었다. 마침내 사민당과 자민당 연립정권이 들어서면서 브란트(Willy Brandt) 수상은 1973년 연방신문법을 제정하여 편집진에게 공동 결정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연방 내무부를 중심으로 74년 8월 최종적으로 입안된 연방신문기본법(Bundespresserahmengesetz)의 법안 골자는 다음과 같다.

  ① 발행인은 신문의 발행입장에 관한 기본원칙을 문서로 명시해야 하며, 이 원칙은 일반적 발행원칙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문제에 관한 입장에 관해서도 밝혀져야 한다. 이 원칙은 기자들에게 고지돼야 하며, 또한 고용계약의 긴요한 부분이 된다. 이 원칙은 최소한 연 4회 이상 신문에 공고해야 한다.

  ② 발행인은 편집인과 협의하여 발행입장에 관한 기본원칙을 변경할 수 있으나 기자대표의 의견을 사전에 들어야 한다.

  ③ 편집지침은 편집인이 발행인 및 관계부서의 장과 협의하여 결정하되, 사전에 기자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발행인은 편집인이 채택한 편집지침이 기본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할 때는 이를 취소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지체 없이 기자대표에게 통고해야 한다.

  ④ 기자는 기본원칙과 편집지침의 범위 안에서 개별적 편집활동에 있어 자유를 향유하며, 발행인의 개별적 지시는 허용되지 않는다.

  ⑤ 어떤 기자도 자기 양심에 반하는 기사를 쓰도록 강요당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⑥ 발행인이 편집인을 임명할 때와 해임할 때는 기자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⑦ 기자의 채용 및 해고에는 편집인의 동의와 기자대표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3)


법안의 골자를 요약하자면 발행인에게 신문사의 기본입장, 즉 한국식으로 말하면 신문의 사시를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면서 구체적인 편집지침과 인사문제에 있어 편집인의 동의와 기자들의 협의를 필요하게 만들어 발행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독일연방신문발행인협회는 신문사의 공동결정권 제도가 자유로운 언론을 위태롭게 하며, 특히 언론기업은 특정 이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비난하면서 법안에 맹렬히 반대했다. 협회는 언론의 자유는 신문사 조직의 자유를 포함하므로 조직과 정책결정과정 구조의 표준화는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기자단체 역시 법안내용이 너무 미온적이어서 기왕에 체결된 각 언론사의 편집규약 수준에 지나지 않거나 못미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같은 법률적 규제방식에 대해서는 여당인 사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예컨대 슈미트(Helmut Schmidt)는 이런 움직임을 지칭하여 ‘전형적인 독일식 초완벽주의’라고 혹평했다고 한다.4) 결국 1974년 브란트가 간첩 기욤사건으로 사임하고 슈미트가 후임 총리가 되자 이 법안을 돌연 철회하고 말았다. 기자단체와 좌파들은 이것을 거대자본과 신문 대기업에 굴복한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이로써 법안제정 움직임은 막을 내렸다. 


언론사 내부조직의 규격화와 자율성 침해

정간법 개정안이 규정한 편집위원회와 편집규약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독일신문발행인협회의 지적대로 법이 언론사의 내부조직과 의사결정 과정을 표준화·규격화함으로써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이미 각사별로 편집에 관한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편집국장 인사와 편집제작에 관해 편집진의 제한적인 참여의 길이 열려 있다. 또 일부 언론사에서는 회사 각국의 간부들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에 노조 대표를 참여시키고 있다.

언론자유는 자유·책임·독립의 3원칙 위에서 보장된다. 1947년 미국 허친스위원회(Hutchins Commission)의 보고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A Free and Responsible Press)이 발표된 이래 세계의 거의 모든 자유국가에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원칙을 채택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방임주의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부동의 원칙은 언론자유의 보장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제가 이상적이라는 사실이다. 언론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이나 규격화는 언론의 다양성을 침해하고 자주성과 자발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개정안이 독자위원회 설립을 의무화하고 최소한 월 1회 이상 개최해야 한다고 시시콜콜한 조항(23조)을 둔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 편집권 행사에 있어 노사 공동결정이 신문발행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점이다. 신문발행의 자유는 언론출판 자유의 핵심적 내용이므로 노사 공동결정은 이러한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논조로 신문을 제작 발행하고 싶은데도 노조와 협의하여 그 논조를 결정하라면 그것은 발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즉 언론자유라는 기본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일반기업에 노사의 공동결정을 인정하는 독일에서 언론사업이 경향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것은 앞에서 본 바지만 공동결정제도 자체가 아직 제대로 도입이 안된 한국에서 이를 언론에 먼저 도입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타당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다.

셋째, 편집규약의 제정 의무화는 신문의 다양성을 침해한다. 현재 한국의 신문소유 형태는 가족소유사(동아·조선·중앙 등 이른바 ‘족벌신문사’), 소액주주 회사(한겨레), 100% 우리사주 회사(경향), 재단 및 우리사주 공동소유사(문화), 종교단체 소유사(세계·국민), 우리사주 및 정부투자기관 공동소유사(대한매일) 등 6가지로 다양하다. 이같은 다양한 소유형태를 외면하고 편집국의 내부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을 한 가지로 만들겠다는 것은 우선 시장원리에 어긋난다. 흔히 프랑스 르몽드에서는 기자들이 편집권을 행사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주주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한국의 100% 사원지주회사에서 사장(발행인)과 편집국장을 주주인 사원이 직선으로 선출하면서 노사가 편집위원회를 공동구성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일까.

넷째, 정간법 개정안은 편집위원회 구성을 노사대표로 하도록 규정했는데 이것은 현재 각 언론사의 제작협의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현행 제작협의회는 편집국 간부와 편집국원, 즉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협의회 멤버인 기자는 대체로 노조원이지만 노조대표로서가 아니라 기자대표 자격으로 협의회에 참여한다. 이것은 언론의 독립을 위해서는 자본의 영향도 배제해야 하지만 노조의 영향도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언론사에는 고유의 발행목적이 있고, 사시가 있고, 이에 따른 기본적인 편집강령이 있어 이념성과 정향성―즉, 독일식으로 표현하면 경향성―을 띠고 있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이번 개정안은 신문사의 편집방침을 노조와 함께 정하도록 한 것이다. 언론노조는 현재 민노총에 소속되어 있다. 민노총은 각종 정치적 강령을 지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을 요약하면 이같은 개정방향은 현행 편집권 협약의 범위를 훨씬 넘어설 뿐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독일의 연방신문기본법안보다도 노조의 권한을 더 강화한 것이다. 이 개정안은 당초에는 사주의 횡포로부터 공정보도를 보장한다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그 선을 훨씬 넘어선 인상이다.


경영정보 보고의 문제점과 겸영금지 강화

개정안이 언론사 경영정보를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정기적으로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조항(16조) 역시 문제가 있는 발상이다. 신고할 사항은 발행부수와 유가판매 부수, 구독료와 광고료, 재무제표, 영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으로 되어 있다. 이같은 경영정보는 각 언론사가 매년 세무서에 신고하는 납세자료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화공보부에 신고토록 하고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허위로 했을 때는 처벌토록 한 것(52조 4항)은 정부권력이 개입할 길을 마련한 것이다. 신고사항 중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라는 항목도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가 모든 신문사 자료를 보고토록 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될 수 있다.

경영정보 보고에 관련하여서는 독일에 유사한 입법례가 있다. 바로 75년 4월 사민당 정권이 제정한 신문통계법(Gesetz 웑er eine Pressestatistik)이다. 이 법은 연방 통계청이 매년 신문통계를 발표토록 하고 언론사는 회사의 법적 형태, 종업원 종류와 수, 종류별 외형수입과 경비(봉급 임금 로열티 인쇄비 보급비용 등), 신문 잡지의 명칭과 발행방식, 판매부수와 판매가격, 광고단가 등 필요한 정보를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법의 제정목적은 당시 독일에서 정치문제가 되었던 언론재벌에 의한 신문 잡지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정간법 개정안이 언론사에 대해 경영정보를 문화관광부에 보고케 한 것은 독일의 신문통계법 제정의 목적과는 달리 그 명분이 언론사 경영의 투명성 확보에 있다. 그렇다면 국세청에 보고된 정보를 활용하여 해당부서에서 이같은 통계를 작성하여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언론사의 공정한 광고수탁 업무의 투명화를 촉구할 의지가 있다면 우선 현재 지지부진한 신문부수공사제도(ABC)를 촉진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여기에는 무관심하다.

개정안은 신문, 통신, 종합편성 방송간의 상호 겸영금지를 뉴스전문 케이블방송에도 확대하고, 종래 신문 통신 방송사 주식의 2분의 1 이상을 소유한 자는 다른 신문 통신사 주식의 2분의 1 이상을 취득하지 못하게 한 규정을 각각 33% 초과소유 및 취득으로 한층 제한했다. 또한 대기업이 신문 통신사 주식의 2분의 1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33%를 초과하여 소유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내려 더욱 제한했다. 이것은 소유집중 방지를 위한 규제강화라고 하겠지만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에 역행하는 조항이라는 비판이 많다. 정보기술의 혁명적 발달로 인한 다채널 다매체 복합매체의 등장과 정보가공 기술의 변화, 즉 원 소스-멀티 유스(one source-multi uses) 현상을 외면하고 외국 미디어의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은 근시안적 발상이라는 것이 미디어산업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상 여러 조항들은 대체로 신문사 소유주와 발행인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정부의 영향력과 노조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예컨대 현행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반론보도청구권을 준 데 비해 개정안은 이들과 함께 민사소송법상 당사자 능력이 없는 기관 또는 단체라도 사회통념상 하나의 생활단위를 구성하고 보도내용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때는 그 대표자가 반론보도와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것은 최근 검사 등 국가공무원이 자주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국언론의 진정한 발전이 언론의 선진화에 있다면 이런 식의 규제가 과연 타당한지 냉정하게 재고해볼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이념대립과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인해 건전한 토론문화가 붕괴되다시피 했다. 그중에서도 언론개혁이란 열병 때문에 두 갈래로 쪼개진 언론계가 특히 심한 편이다. 이번 정간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과정에서도 이런 대결과 불신풍토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정간법 개정안을 비판하는 측은 곧바로 이를 대선을 앞두고 입안된 언론장악을 위한 불순하고 위험한 법개정 시도라고 비난한 데 대해 이를 지지하는 측은 ‘족벌언론’들이 즉각 반대하고 나선 것만 보아도 현행 정간법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서 국회가 용기를 발휘하여 이를 통과시키라고 주장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민단체가 그동안 굳세게 주장하던 신문사 대주주의 소유지분 제한 조항은 빠졌다. 그런 조항이 위헌이라는 언론계와 학계의 줄기찬 지적을 개정안 발의 의원들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그동안 언론개혁 문제 토론과정에서 대주주의 소유지분 제한 조항을 반대하는 주장을 ‘반개혁’이라고 몰아치던 일부 과격한 개혁파들의 주장이 일방적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부터라도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상대방을 매도하는 자세를 버리고 좀더 냉철한 입장에서 언론개혁 문제를 논해야 한다.


남시욱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베를린 국제신문연구소 디플로마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국제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상무이사

■문화일보 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고려대 석좌교수

■저서:「항변의 계절」「체험적 기자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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