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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초청자 :
장하준 교수
개최일 :
2007-11-01
조회수 :
9,400
첨부파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초청 관훈포럼

 

일시 : 2007년 11월 1일 오전 7시 30분

장소 : 신영기금회관

사회 : 이재호 관훈클럽 총무(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  

이재호(사회):관훈클럽 총무를 맡고 있는 이재호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입니다. 오늘은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하기 때문에 제가 앉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앉아 계시는 관훈클럽신영기금회관이 새로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저도 워싱턴에서 근무해 봤지만 내셔널프레스클럽 못지않게 이 회관을 잘 활용해보자는 의미에서 관훈포럼을 신설하게 되었고, 그 첫 연사로 장 교수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기존 관훈토론회가 관훈클럽 회원과 일반대중을 상대로 하는 자리라면 이 포럼은 한국의 지성의 광장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 지도층 또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했고,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도 지성과 교양의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장하준 교수를 첫 번째 연사로 모시게 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장 교수님의 아버님이 장재식 전 산자부 장관이십니다. 우연히 제가 한번 뵐 기회가 있었는데 장 장관께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전직 경제부처 고위관리가 하루는 대선배인 장재식 장관을 예방하러 왔더랍니다. 생전 연락 없던 친구가 찾아와서 왜 왔냐고 물어봤더니 경제부처 고위관리였다가 유력 대선주자의 캠프에 가 있는 그 관리가 “아, 선배님 제가 최근에 나온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을 봤는데 명색이 고시 출신이고 경제부처 관리를 오래 했지만 그 책을 보고 나서 비로소 한국 경제와 세계경제의 방향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하러 일부러 들렀습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그 얘기를 장 장관님께 듣고 ‘아, 그러면 관훈포럼 첫 번째 주자로 장하준 교수를 모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통상 아침에 하는 포럼은 참석자가 많지 않은 법인데 저희 사무국으로 많은 분들이 오신다고 전화해 주셔서 저희들이 엄선된 분만 오늘 모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제는 ‘한국 경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입니다. 초청장에도 나와 있지만 장 교수님을 간략히 소개하고 바로 강연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장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시고 바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끝내셨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박사학위 통과 전에 교수들이 회의를 해서 ‘정교수로 임명하자’고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케임브리지 사상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저서들을 냈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로 2003년 유럽진보정치경제학회에서 주는 ‘뮈르달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공로로 ‘레온티예프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늘 장 교수님께서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처방을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강연은 1시간 정도 하고 나머지 30분 정도는 여러분과의 자유로운 토론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장하진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약력

1963   서울 출생           

1986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7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 석사

1991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 박사

1990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

1995   국제연합무역개발기구(UNCTAD) 연구주임

2003   고려대학교 BK21 교환교수

2007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저서:「사다리 걷어차기」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쾌도난마 한국 경제」 「국가의 역할」 「나쁜 사마리아인들」

                                                       한국 경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저같이 경력도 일천한 사람을 첫 연사로 초청해주신 관훈클럽에 정말 감사드리고요, 뒤에는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처음에는 가벼운 화두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잘 요약해 주고 있는 3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우리나라가 워낙 특이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참 많지만 제가 뒤에 풀어나갈 이야기를 위해 집어낸 것 중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사라는 직업이 엄청나게 인기가 높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나 의사는 최고 인기직종의 하나죠. 그래서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다 의대 가려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는 우수한 학생들이 이과생이면 의대, 공대, 자연대도 갑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과 계열의 우수한 학생을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서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의대, 치대, 한의대 다 채우고 나서 좋은 대학의 공대나 자연계 학과에 학생들이 갑니다. 물론 과장입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지금 의사라는 직업이 인기가 높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농담을 합니다. 옛날에 북한에서 60~70년대 4대 군사노선 중에 ‘전군의 간부화’ 이런 이야기가 있었죠. 사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다 간부만 있으면 부하도 없고 무슨 얘기냐’ 그런 건데, 물론 그 의미는 ‘누구라도 간부가 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인데 어떤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들추면서 ‘전 국민의 자기 주치의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의사라는 직업이 인기가 높습니다.

두 번째는 백화점 주차권발매기와 여종업원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차를 몰고 백화점에 갑니다. 주차장에 들어가면 거기 주차권발매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차권발매기 옆에 여종업원이 서서 상냥하게 인사하면서 주차권을 뽑아 줍니다. 흔히 보는 광경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이것은 세계에 없는 일입니다. 그 기계는 그 종업원을 해고하려고 만든 기계인데 그 종업원과 기계가 같이 서서 일하는 있습니다. 선진국에 가면 인건비가 비싸니까 기계만 있고, 후진국에 가면 기계 살 돈이 없으니까 종업원만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계와 종업원이 같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희한한 현상입니다.

세 번째는 영어 배우기 열풍입니다. 온 나라가 영어 배우기 열풍에 휘말려 있는데 영어 사교육비가 전체 교육예산의 반 가까이 된다는 추정도 나오고, 초․중․고생 해외연수비용이 수십억 달러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물론 최근 10~20년 사이에 세계 각국에서 영어 배우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옛날에 영어가 안 중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한 단계 질이 달라진 것이 영어 사교육에 돈을 많이 쓰는 것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중학교 들어가서야 알파벳을 배우던 것을 두세 살부터 배웁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 역사도 없는데 ‘영어를 공용화해야 된다. 국어나 국사까지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어를 공용화하는 나라는 예를 들어 인도인데 그 나라는 영국 식민지였기도 하지만 워낙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소위 힌두어 표준말을 공용어로 한다면 지방에서 난리가 납니다. 뭄바이나 다른 남쪽에서는 자기네 말을 쓴다고 하니까. 그래도 영어는 아무 지역의 말도 아니니까 쓴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정치적인 이유, 역사적인 이유도 없는데 영어 공용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3가지의 참 희한한 현상을 보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 이야기를 해보고, 그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해 있는 문제들이 어떤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지금 해보려고 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인기, 이게 우리나라 현재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인기 있는 것은 경제학 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50~60년대 의사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는 의사가 되어 성공하면 속된 말로 ‘돈을 긁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의사가 계속 공급이 많이 되어 ‘이제는 의사 수가 너무 많아 밥 굶는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리고 개업해서 성공하기도 힘들다고 하고, 의사의 보수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낮아졌습니다. 기본 경제학 원리로 하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의사가 많으니까 의사의 값이 떨어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보수는 계속 떨어지는데 인기는 계속 올라간단 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다른 분들도 많이 이야기하시는 것이니까 특별히 제 진단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이렇게 의사 인기가 폭발적으로 올라간 것은 우리나라의 고용불안이 엄청나게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우수한 이과생들이 공대에 많이 갔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 같은 우리나라 초일류 기업의 임원급 이상 보면 공대 출신이 많습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공대가 인기가 높았고 특히 80년대 초반, 중반쯤에는 학력고사 이과 수석하는 친구들이 대개 물리학과를 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이공계 진학해서 대기업에 취직하면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고 물리학과에 가면 연구직으로 보장이 됐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 기치 아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이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잘려나갔습니다.

특히 기업들이 연구개발직을 많이 잘랐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실적을 내려면 자르기 제일 좋은 것이 연구개발입니다. 연구개발은 지금 당장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10~20년을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잘라도 현재 이윤에는 지장이 없고 나중에 연구개발 잘 못해서 기업이 뒤처지면 그때 연구개발직 자른 사장은 이미 은퇴해서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제일 자르기 좋은 직업입니다. 그래서 그때 연구개발직이 엄청나게 잘려서 2류, 3류 기업 연구소나 중국으로 가고 아주 비참한 지경을 많이 당했습니다.

물론 노동시장 하층부에서도 고용불안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비정규직이 많이 문제되고 있는데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노동시장 최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마저 고용이 불안해진 것입니다. 설사 남아 있다고 해도 요즘 사오정, 오륙도 해서 고용불안이 전에 없이 증가된 상황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격증이 있어서 자영업을 할 수 있고 취직하는 경우에도 고용이 제조업체보다 훨씬 안정적인 의사라는 직업에 상대적으로 매력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문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를 보면 옛날에는 ‘행정고시해서 뭐 하겠다’던 친구들 많았는데 요즘은 다 사법고시 공부합니다. 변호사도 똑같이 자격증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옛날보다 수가 엄청 늘어서 상대적으로 보수가 떨어졌는데도 변호사 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리고 한때 인기가 떨어졌던 공무원도 다시 인기가 올랐습니다. ‘직장이 안정적’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63년생이니까 만으로 44세인데 기업체에 있는 제 친구들은 퇴직 걱정 때문에 머리가 허옇게 셉니다. 지금 다 부장급인데 조금 잘못해서 한두 발짝 밀려나가면 거기서 자기 직장생활이 끝나는 거거든요. 굉장히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발전단계에서 우리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수한 인재들이 계속 연구개발 분야로 들어가서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추격을 벗어날 방법이 뭐가 있습니까? 기술개발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중국과 임금을 맞출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뭐 하러 피땀 흘려 경제발전을 했습니까? 그래서 오직 갈 길은 기술개발인데 거기로 인력이 안 가고 의사, 변호사만 되려고 합니다. 물론 의사, 변호사 다 중요하고 필요한 직업입니다. 저는 사실 현대의학이 없었으면 세 번쯤 죽었을 사람이기 때문에 의사가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직업입니다. 제가 결코 의사나 변호사라는 직업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소위 인적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개인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 입장에서는 고용이 불안한 상태에서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고용이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러나 나라 입장에서 보면 재주 있는 젊은이들이 다 그것만 하겠다면 자원배분이 왜곡됩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은 공부 잘하는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의사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공대 가서 엔지니어도 하고 나중에 CEO도 돼야 사회 전체적으로 좋은 것인데 그게 개인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은 그래도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게 좋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건 이 사회적 이익과 개인적 이익의 괴리를 줄이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정부입니다. 정부가 정책을 써서 이것을 고쳐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정부에 계시는 분들의 일부는 “꼭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보느냐. 우수한 인력들이 의대로 갔으니까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나라를 의료허브로 만들어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지만 굉장히 무책임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아가씨가 거식증에 걸려서 몸이 야위어 가니까 그 아가씨한테 몸이 마른 김에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패션모델 하라는 격입니다. 물론 패션모델 좋고 전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기껏 열심히 노력해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되며, 두 번째로 패션모델이 되더라도 밥을 제대로 먹고 운동으로 살을 빼서 패션모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외국에서 패션모델들이 거식증 때문에 몇 명 죽었잖아요. 이런 식으로 문제를 안이하게 보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꼭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너희 애국하기 위해서 공대 가라’는 말 못합니다. 절대 안 되죠. 개인 입장에서는 ‘왜 내가 아무 보상도 없이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은 의사 되어서 안정적으로 먹고사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체적으로 고쳐야 됩니다. 여기서 제일 필요한 것은 자본시장정책을 고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공계 기피가 문제라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자본시장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 하면 지금 이공계 기피를 가져온 것이 근본적으로 고용불안 문제이고, 고용불안의 근저에는 자본시장의 변화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적대적 인수합병이 자유화되면서 기업들의 경영권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주주들의 목소리가 세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주는 외부 주주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상장기업들은 주가관리를 해야 합니다. 당장 이윤을 못 내면 주가가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경영권 위협을 받기 때문에. 그래서 뭘 하냐 하면 단기적 이윤을 많이 냅니다. 될 수 있으면 투자 안 하고 연구개발 안 하고 인력을 줄여서 단기적 이익을 많이 내고 그 다음에 배당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포항제철은 최근에 ‘무조건 50% 배당’ 이런 식으로 정책을 합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서 돈이 남으면 100% 배당을 할 수도 있고, 또 필요에 따라서 투자를 많이 하면 배당을 안 할 수도 있어야 되지 무조건 50% 배당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안 하면 주가 압력이 들어와서 위험해집니다. 특히 철강산업 같은 데는 인도 출신 철강재벌 미탈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프랑스 회사, 벨기에 회사 다 집어먹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것이 무서워서 그런 식으로 안할 수 없는 겁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기업 입장에서 고용을 안정시켜 줄 수 없습니다. 당장 기업경영권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종업원들 하다못해 임원진 고용보장해 줘야 됩니까?

이것이 상장기업에만 미치는 영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금융기관을 보면, 은행에 대해서 외국자본 지배가 증가되고 그와 동시에 금융규제가 완화되다 보니까 은행들이 기업금융을 엄청나게 줄였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도 은행대출의 90%가 기업금융이었는데 이제는 40% 될까 말까 합니다. 되는 해도 있고 안 되는 해도 있습니다. 그러면 뭐 하냐? 주택담보대출을 합니다. 우리가 선진금융기법 전수받는다고 은행도 해외에 팔고 했는데 무슨 선진경영기법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담보대출은 우리도 하죠. 물론 그것은 사실 선진금융기법입니다. 영국 은행가들 사이에 “돈 필요한 사람에게 절대 돈 꿔주지 말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안전위기 경영이 선진금융기법인데 이런 식으로 되면서 중소기업들이 돈줄이 막히니까 투자하기 힘듭니다.

그 다음에 우리 중소기업의 80~90%가 직․간접적으로 대기업에 납품하고 사는데 대기업들이 단기이윤을 올리려니까 투자 안 하고 고용 줄이고 하청단가 후려칩니다. 그러니까 요즘 중소기업 하는 분들 만나보면 옛날에도 우리를 쥐어짰지만 옛날에는 그래도 같이 해서 100을 벌면 10만 가지라고 하고 자기네가 90을 가졌는데 이제는 다 가져간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까 중소기업은 고용안정 이런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자본시장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을 하루아침에 옛날식으로 다시 걸어잠글 수는 없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제도적 제한을 도입해야 하고, 기업의 배당을 억제하고 재투자를 장려하는 세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썼던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쓰는데 예를 들어 유보해서 투자하면 세금 안 물리고, 배당하면 거기 많이 물리고, 그렇게 할 수 있거든요. 또 투기성 자금 유출입에 대한 규제장치도 도입해야 하고, 은행규제정책도 바꿔서 은행의 기업대출을 장려해야 합니다. 일정부분은 의무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본시장의 행태를 바꿔서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

물론 제가 고용안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럼 사람들에게 철밥통 보장해야 되냐’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철밥통을 보장해서 안 된다는 것과 해고에 대한 공포를 줄여주는 것은 다릅니다. 해고에 대한 공포는 줄일 수 있고, 또 그것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부 고용안정을 보장받았는데, 대기업들이 종신고용을 사실상 상층부 직원들에게 제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업들도 부담스러워서 못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무엇보다도 제 생각에는 이 제도는 소수에게만 적용되니까 형평성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모 아니면 도지요. 이게 우리나라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것인데 어떻게 해서든 대기업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일생이 보장되거든요. 고용도 안정돼 있고 복지도 좋은데 한두 끗 차이로 밀려서 거기 못 들어가면 일생을 고달프게 살아야 되니까 목숨 걸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국민 전체가 고용불안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설사 실직하더라도 생계에 위협받지 않고, 또 더 중요한 것은 재교육을 통해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이 고용불안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고 살 수 있을 때 우리 젊은이들도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안정 위주의 직장보다는 좀 더 역동적인 기능직이나 연구개발직으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를 “우리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차를 빨리 몰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를 몰면 아무리 운전기술이 좋은 사람도 위험하기 때문에 30~40㎞ 이상 몰 수 없습니다.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100~120㎞ 가다가도 딱 밟으면 되거든요. 젊은이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직장을 택하면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실업보험 받아서 먹고살고 재교육 받아서 취직하지’ 이러면 조금 위험성 있는 직장도 택하는데 그게 없고 직장을 잃으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미쳤냐. 나 의사 할 거야’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복지국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관심이 있으시면 더 이야기하겠습니다만 ‘복지국가’ 이야기하면 흔히 ‘돈 많은 사람 것 뺏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는데 사실 미국은 이렇습니다. 미국의 복지제도는 돈 있는 사람에게 돈 걷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저는 그런 복지국가는 사실 반대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복지국가는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서 보는, 굳이 말하자면 ‘생산적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모든 국민이 혜택을 봐야 합니다. 미국은 복지 줄 때 ‘너 돈 얼마 있냐? 가난하냐, 아니냐?’ 그것에 따라서 주는데 유럽에서는 아무리 자기가 돈을 많이 벌어도 의료, 교육 등에서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나는 혜택도 못 받는데 내 돈 가져가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혜택을 받으니까 그 일부가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게 국민들에게 경제적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에서는 과거에 받던 월급의 80%까지 실업수당이 나옵니다. 최근에 우파정부가 들어서서 ‘너무 높다, 65%로 자르자’는 논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이고, 하여튼 먹고살 만큼 돈을 주고 그 기간 동안 정부가 재교육을 알선해 주죠. 재교육 받고 정부가 세 번인가까지 재취업을 알선해 주는데 그것을 거부하면 이제 완전히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실업수당이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오용하는 문제가 없는 것이고, 이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도리어 무역개방이라든가 기술발전에 별로 저항이 없습니다.

누구도 자기 직장 잃고 새 직장 가기 싫죠. 그러나 그 사람들은 ‘직장 잃으면 먹고살 건 있고 재교육 받아서 다른 곳으로 가지’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나라에서는 기술발전의 저항이 작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통계로 세계에서 노동자 1인당 산업로봇 대수가 제일 많은 나라가 스웨덴과 일본입니다. 일본은 전체가 그런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 상층부의 반 정도는 종신고용이기 때문에 기계 들어온다면 ‘그럼 뭐 다른 일 하겠지’ 이런 식으로 넘겨버리고, 스웨덴은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기업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경제적 차원에서 기계 들어와서 해고한다면 ‘아, 그러면 다른 직장 가지’ 이렇게 되는데 미국이나 영국처럼 복지제도가 재교육 시스템과 연결이 잘 안 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큽니다.

1984년 영국의 유명한 타임스 신문이 컴퓨터 조판을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 식자공들이 전쟁을 했어요. 그 식자공들 입장이 이해가 갑니다. 이 사람들은 이것 끝나면 자기 인생이 끝이거든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자꾸 기술발전이 제약을 받습니다. 그러나 스웨덴 같은 경우는 그러한 저항이 작기 때문에 담세율이 세계최고이고 노조 조직력이 80%가 넘는데 실업률은 낮습니다. 실업률도 낮고 성장률도 미국을 능가하고, 하다못해 경영자 시각에서 주로 평가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지수에 항상 세계 5위 안에 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규제를 만들어서 실업에 대한 공포를 줄이지 않으면 정말 큰일납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반박합니다. “한국 경제 선진화되어서 탈산업화 사회에 들어가는데 아직도 굴뚝산업에 집착하느냐. 하루라도 빨리 서비스업으로 옮겨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탈산업사회론 내지 제조업 종말론을 믿는 것입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제조업은 점점 안 중요해지고 서비스업이 중요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분들이 한 가지 착각하는 점이 있는데 ‘제조업의 중요성이 줄어든다’ 이런 얘기를 하지만 제조업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옛날보다도 제조업 제품을 엄청나게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조업 생산성이 워낙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조업 제품이 싸지는 겁니다.

서비스는 생산성 올리기가 힘들죠. 예를 들어 이발소 가서 머리를 자르면 이발사의 생산성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그런데 컴퓨터를 예로 들면, 맨 처음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는 컴퓨터가 엄청나게 커서 큰 방 하나만 했는데도 지금 우리가 갖고 다니는 랩톱보다 성능이 떨어졌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산성이 엄청나게 향상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조업 제품이 싸져서 경상가격으로 계산하니까 그게 제조업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제조업 자체가 생산하는 것은 점점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산성 향상이 되니까 고용이 상대적으로 줄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제조업이 상대적인 비중이 준다는 것이지 ‘제조업이 없어진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기업금융이니, 첨단IT 서비스니 이런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최종소비자보다는 제조업체를 상대로 장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제조업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제일 많이 드는 예는 스위스입니다. 여러분들 스위스 관광을 가 보셨겠지만 산 위에 소만 있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의아해합니다. ‘어떻게 이 나라가 부자인가’라고 생각하며 흔히 은행들이 돈 받아서 그걸로 먹고살고 관광해서 먹고사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을 합니다. 그래서 나쁘게 말하면 ‘남의 검은돈 챙겨주고 돈 버는 나라’, 좋게 말하면 이게 바로 ‘서비스에 의존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증거’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통계를 찾아보면 스위스가 세계최고의 공업국입니다.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세계 1위입니다. 미국의 2배가 넘고 2등이 일본인데 일본보다 24%가 높습니다. 그런데 스위스가 작고 인구도 채 800만이 안 되는 나라이고 주로 기계라든가 자본재 쪽에 집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소비자로서 스위스 제품을 접하는 것이 별로 없고 초콜릿 정도만 접하기 때문에 스위스가 제조업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조업이 굉장히 발달한 나라입니다.

서비스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벤치마킹하기 좋아하는 싱가포르 같은 나라도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우리나라보다 35%가 높습니다. 하다못해 홍콩도 완전 중국경제에 흡수되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인 80년대 중반까지도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우리나라의 2배였습니다. 그래서 제조업이라는 것이 엄청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비스업으로 먹고산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이 사실은 공업국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서비스업 생산성이 국제적 기준으로 봐서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높이는 것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요. 그런데 흔히 내놓는 해결책으로 ‘서비스시장 개방을 통해서 경쟁을 강화하면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겠냐’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이것을 설명하려면 두 번째 화두로 꺼냈던 ‘백화점 주차장 주차권발매기 옆에 서 있는 여종업원’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이 여종업원이 말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과잉고용이 엄청 많다, 사람이 남아돈다’는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가면 계산대 옆에서 종업원이 봉지에 물건을 담아줍니다. 그것도 백화점 주차장 발권기와 여종업원처럼 희한한 것입니다. 슈퍼마켓은 물건 내리고 싸고 이런 것의 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함으로써 물건값을 낮추는 것입니다. 종업원이 물건포장을 해준다는 것은 슈퍼 설립 취지에 반하는 것인데 아직도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사람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물론 과잉고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외국에 가서 생활하신 경험이 많으실 테니까 느끼셨겠지만 외국에 가면 서비스업체 종업원이 적어서 상당히 불편합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신청하면 하루만에 설치합니다. 영국이 특히 그 면에서 한심한 나라입니다. 영국에서는 인터넷 신청하면 재수 좋으면 2주일, 재수 없으면 4주일 걸립니다. 왜냐하면 인원을 조금 쓰니까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어서 소비자상담센터에 전화하면 우리나라는 2, 3분 안에 대답하는데 30~40분 기다려야 합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소파 등 가구를 사면 ‘몇 월 며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 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부부 둘 다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둘 중 한 사람은 휴가를 내야 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그 비용이 또 다른 고용주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질이 낮기 때문에 단순히 종업원 1인당 매출액 기준으로 소비자생산성 측정하면 우리나라가 상당히 낮지만 이런 서비스의 질을 고려하고 고객의 불편,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 낭비되는 시간을 계산하면 사회적 차원에서 본 생산성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통계만 보고 미국이 우리나라 서비스 생산성의 몇 배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서비스업에 엄청난 과잉고용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거든요. 우리가 그런 데 익숙해져서 그렇지, 예를 들어 영국이나 미국의 서비스업체 사장의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백화점 직원 반은 잘라도 됩니다. 그렇게 많이 필요 없거든요. 예를 들어 구둣방 가면 종업원 두세 명씩 있죠. 잠깐 2~3분 기다릴 수는 있지만 금방 서비스가 되는데, 인건비 비싼 나라의 백화점에 가서 뭘 사려면 10분, 20분 기다려야 합니다. 종업원이 단 1명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서비스업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복지제도가 취약해서 실업자가 되면 당장 생계유지가 어려우니까 효율성에 관계없이 생기는 영세한 자영 서비스업체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치킨집과 호프집이 좋은 예인데요, 그 사람들은 사실 자기 착취해서 먹고사는 겁니다.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이걸 해서는 안 될 생산성인데 다른 수단이 없으니까 그거라도 하는 겁니다. 이것도 선진국 기준으로 하면 과잉고용이죠. 그래서 이렇게 서비스업 과잉고용이 심한 상황에서 서비스산업을 급격히 개방하면 엄청난 실업문제가 닥칠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서비스의 질보다는 인건비 절감에 중점을 두는 선진국 서비스업체들이 대규모로 들어오면 우리나라 서비스업체들도 하향평준화해야죠. 그렇게 되면 대규모 감원을 해야 하고, 또 이렇게 해서 경쟁이 심화되면 치킨집, 호프집 등 많은 영세사업자가 도산하게 되고 많은 자영업자가 실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서비스업 과잉고용의 근본적인 원인이 영세 자영업자 문제만은 아니지만 복지제도 미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복지국가를 세우는 것이 서비스업의 발전을 돕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실업보험을 강화해서 생산성 낮은 자기 착취형 영세 서비스업체가 퇴장하고 또 대형 서비스업체도 필요하면 감원하는 것을 쉽게 만들어줘야 서비스 생산성이 올라가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방출된 사람들이 제조업이 됐든, 다른 서비스업이 됐든 생산성 높은 일자리로 옮겨가기 쉽게 재교육 시스템을 강화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장치 없이 서비스 생산성을 높인다면 커다란 사회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 생산성이 낮은 것이 단순히 경쟁부족에 기인한 것이라면 개방이 해답일 수 있지만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있거든요. 국토가 좁다 보니까 대형매장 설치가 힘들고 복지제도가 미비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과잉고용이 생기는 등 구조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복지제도나 교육훈련제도를 정비하지 않고 무조건 개방만 하자는 것은 경솔한 일이라는 겁니다.

서비스 개방 문제에 대해 좀 이야기했는데 이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소위 금융허브론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조업은 미래가 없으니까 버리고 금융 같은 부가가치 서비스에 특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자본시장 규제를 더 완화하고 외국인 금융 고급인력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한국으로 와서 동북아 내지 아시아 금융허브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중국에 다 빼앗기기 때문에 금융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까 ‘탈산업화사회론, 제조업 종말론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잠깐 말씀드렸는데 그것을 무시한다 해도 금융허브론 주장에는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로 지적해야 하는 것은 ‘금융을 키우려면 도리어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룩셈부르크, 모나코 등 세금도피처 역할을 하는 나라들 빼고는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금융이 발달하는 것이지, 금융만 발달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17세기 유럽 금융의 중심지는 런던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 주식회사라는 개념이 처음 나온 곳도 네덜란드입니다. 우리가 옛날에 들어봤던 동인도 회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국이 만들어서 인도 점령하고 식민지 착취하던 회사입니다. 그 당시는 회사라는 것이 다 무한책임입니다. 주식회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인도 회사 같은 경우는 왕이 특별히 허가를 내려서 대규모 자본을 동원해서 일했는데 이것도 네덜란드에서 베껴온 것입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인도네시아를 착취했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워낙 성공하니까 영국에서 우리도 이것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가 금융의 중심지였는데 그 원인이 뭐냐 하면 그 당시 유럽 제조업의 중심이 영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와 벨기에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하이테크 산업은 모직물 산업이었습니다. 그 중심이 네덜란드, 벨기에다 보니까 거기에 자연스럽게 금융 중심지가 형성된 것입니다. 18세기 말부터 런던이 암스테르담을 제치고 유럽 금융의 중심지가 되고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됩니다. 영국이 면직물 공업과 산업혁명을 통해 제조업에서 세계 1등을 하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20세기 들어 뉴욕이 세계 금융 중심지가 되는데 그것은 미국이 금융허브론으로 금융산업을 특별히 육성해서가 아니라 산업화해서 영국을 추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스위스, 싱가포르, 홍콩도 금융 중심지가 된 것은 강력한 제조업 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금융발전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발전단계에서 상대적으로 금융업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 것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게 제조업을 포기하는 것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금융허브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규제완화에 기초한 금융발전전략을 펼칠 경우 우리나라 제조업 다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금융을 위해서 규제를 풀어버리면 우리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은 양의 금융자본이 들어오거든요. 그렇게 되면 통화 평가절상 압력이 들어오고, 결국은 그것 때문에 제조업 수출은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금융을 더 발전시켜야 된다는 이야기는 맞지만 지금까지 잘해온 제조업을 죽이는 방법을 통해 금융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역사적 패턴을 볼 때도 제조업을 더 발전시키고 업그레이드하면 장기적으로 금융산업 발전에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때 제가 말씀드린 제조업 발전을 통해 자연스럽게 금융이 발전하는 전략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갑자기 규제완화하고 영어공용화하는 식으로 금융업 전략을 펼 때 과연 우리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금융허브론 얘기하는 분들도 뉴욕, 런던 이런 데와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그분들 이야기는 그렇게 하면 홍콩, 싱가포르 정도는 우리가 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어림없습니다. 홍콩, 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 중심지가 된 데는 무엇보다 장기간의 영국 식민지 지배로 인해 생긴 서구화의 인적․문화적․제도적 유대라는 역사적 요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홍콩이라는 이름 자체가 향기 ‘香’자, 광둥어로 읽어서 ‘홍’인데 그 ‘홍’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한 200년 전부터 거기 와서 장사하던 영국 상인들을 중국사람들이 ‘홍’이라고 불렀습니다. ‘홍’이 한 거예요. 영국이 와서 똬리를 틀고 있던 데고, 지금도 홍콩의 많은 재벌들이 영국계입니다. 캐세이패시픽 항공을 갖고 있는 스와이어(Swire) 그룹이라든가 페레그린 금융그룹 등 영국계 기업들이 많거든요. 싱가포르도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150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다시 쓰지 않는 한 이런 나라를 제치고 아시아 금융 중심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금융은 인맥이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독일, 일본이 80년대 잘나갈 때 돈 벌어서 자기들도 금융산업 진출한다고 했을 때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돈은 있으니까 런던에 와서 영국 투자은행들을 산 것입니다. 자기들 인력자원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거든요. 그런 엄청난 역사와 인력자원이 있는 나라와 우리가 경쟁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제조업 중심지가 금융의 중심지가 되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패턴에 비춰볼 때 앞으로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는 자연스럽게 상하이가 될 것입니다. 또 도쿄도 일본경제 덩치에 의해 자연스럽게 비중이 생기는데 거기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끼어들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인구 300만~400만짜리 조그만 나라라면 모나코나 룩셈부르크처럼 다 들어와서 어떻게 해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나라가 아니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왜 영국사람, 미국사람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일 잘하다가 한국에 와서 삽니까? 살 이유가 없습니다. 거기는 몇백년 동안 서양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외국인 커뮤니티도 잘 형성되어 있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살기가 굉장히 좋거든요. 이와 관련해서 나오는 문제가 바로 영어공용화입니다. 그렇게 해서 길 가다가 영어로 길 물어도 알려줄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그 사람들이 와서 살지 않겠냐 하는 것이죠. 저는 그건 착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야기는 원하시면 더 하겠습니다.

세 번째 화두로 ‘영어교육 과열’ 이야기로 들어가는데 세계화시대에 영어를 잘하는 것이 물론 중요합니다. 꼭 영어가 우수한 언어여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영어가 세계어가 되었거든요. 지금 우리나라의 영어 과열은 굉장히 비생산적입니다. 우선 우리말은 영어와 어족부터 다르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데 굉장히 많이 투자해야 됩니다. 독일사람, 스웨덴 사람이 영어를 배우는 것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제가 처음에 영국에 가서 TV를 보는데 그 나라는 파업을 잘 안 하니까 스웨덴 탄광이나 조선소에서 오랜만에 파업해서 그게 뉴스가 되어서 나왔습니다. 그냥 마이크 들이대고 거기 노동자와 인터뷰하는데 저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겁니다. 얼마나 쪽팔립니까? 저도 외국유학 간다고 토플공부 열심히 해서 600몇 점 받고 갔는데 ‘야, 어떻게 저렇게 영어를 잘하냐?’ 하며 기가 죽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태생적 한계거든요. 할 수가 없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온 국민이 시간과 돈을 들이는데도 세계적 기준으로 측정하면 영어실력이 별로 좋지 못한 이유입니다. 역사를 다시 써서 우랄알타이어족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를 만들기 전에는 우리가 지고 나가야 될 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일부만 영어에 집중해서 외국과의 교류를 담당하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 전공분야에 집중해서 실력을 기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입니다. 적은 비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으면 자기 전공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면 좋죠. 그런데 둘 다 잘하려면 엄청 힘들기 때문에 그것을 분업해야 됩니다.

일본 같은 경우는 개개인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보다 일반적으로 영어를 다 못하죠. 그런데 일본이 영어권과 우리보다 지적 교류는 훨씬 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의 통․번역사 질이 엄청나게 높거든요. 그리고 국민들의 태도도 다릅니다. 제가 일본 통역사와 알게 돼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 기업가들은 자기 영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통역을 쓴다는 겁니다. 간단한 대화 ‘잘 있었냐, 만나서 반갑다’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협상이 시작되면 통역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많은 기업가들은 외국회사와 사업할 때 통역 쓰면 영어실력 떨어지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게 되니까 그게 창피해서 실력이 안 되는데 영어로 합니다. 그러다가 모르니까 영어 잘하는 직원 불러내서 협상하다 일을 그르치는 적도 많습니다. 영어 못하는 것이 절대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유엔에 가서 영어로 연설했는데 국가원수는 자기 나라 말로 해야 됩니다. 영어 몇 마디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보면 영어 과열 현상이라는 것도 앞서 언급한 이공계 기피 현상과 유사합니다. 왜냐하면 또 개인의 이익과 사회이익 간의 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 잘하면 전공분야에 대한 실력이 떨어져도 출세하기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영어를 배웁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돈과 노력이 낭비되면서 국력을 좀먹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부가 역할을 해서 입시에서 영어 비중을 과감하게 줄이고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수준의 통․번역사를 양성하기 위해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들도 일본 기업처럼 영어 잘한다고 승진에 혜택 주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은 영어 잘하니까 저런 말 하는 거 아니냐. 만날 사다리 걷어차기 어쩌고 하는데 지가 또 사다리 걷어차기 하는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 못 올라오게’ 이렇게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국제학계에서 조금 인정받는 것이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거든요. 나름대로 이야기하는 내용이 그래도 들을 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영국에 유학 갔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하지 못합니다. 글은 조금 쓰지만 말하는 것은 제가 들어도 창피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배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영어를 잘할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전공 공부해서 자기실력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런 전략을 택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국제교류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우리나라같이 지적 주도권이 없는 나라 입장에서 그런 주도권을 쥐고 있는 영미권 나라의 지식을 완벽하게 흡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영국에 유학 갔던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영어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국제경쟁에서의 승부는 영어능력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담는 내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일본이 영어를 잘해서 경제대국이 됐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우습게 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소득 수준이 일본의 3분의 1입니다. 어떤 지표를 봐도 분야에 따라 짧게는 20~40년 우리가 일본에 뒤떨어진 나라입니다. 그 나라 영어 잘해서 잘살게 된 게 아니거든요. 영어 하는 사람과 그에 담을 내용을 연구하는 사람이 효과적으로 분업해야 우리의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전략은 온 국민이 다들 영어도 그럭저럭 잘하고 자기 전공도 그럭저럭 잘하는 것인데 이렇게 해서는 국제경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영어 하는 사람은 확실하게 영어 잘하고, 전공 하는 사람은 피땀 흘려서 전공 공부해야 됩니다. 원래 태어나서부터 영어 하는 사람들이 피땀 흘려서 전공 공부하는데, 그 사람들은 몇백 년을 앞서서 그런 것이 쌓인 토대 위에서 하는데 그것을 우리가 영어공부에 엄청나게 시간을 쓰고 그 다음에 전공 공부해서 따라잡을 수가 없거든요. 이것도 아까 말씀드린 대로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괴리되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잘못된 정책과 세태의 변화로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인데, 정말 이것도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조금 길게 이야기했는데 다루지 못한 이야기도 있고 더 깊이 생각할 부분도 많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제 이야기는 마치고 여러분의 질문이나 코멘트가 있으면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 회: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 강의시간을 줄이고 질문 위주로 하자고 했는데 너무 어렵게 모셔서 시간을 조금 더 드렸습니다. 소속을 말씀하시고 교수님과 자유롭게 토론하시죠.  

박진서(클럽 회원):전 아더앤더슨코리아 대표이사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앞에서 이런 말씀 올리기 송구스럽게 생각됩니다만 아까 말씀하신 고용구조 문제에 대해 견해를 좀 달리하기 때문에 몇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대기업들이 사람을 줄이고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현상으로 가고 있다고 하시고 그것은 적대적 M&A를 강화하고 단기수익을 내기 위해 그렇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여러 가지 기술혁신이라든가 IT가 주도하는 여러 가지 변화로 인해 잡(job)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이 아주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커리어들이 쓸모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쓸모없는 사람을 시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겁니다. 시장수요에 맞는 커리어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직장에서 쫓겨나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치킨점이나 호프집을 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커리어의 쓸모가 없어졌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그 변화에 대해 복지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구상에서 복지정책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 나라는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전부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무거운 짐으로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방법은 이미 미국에서 가고 있는 잡 리사이클링 프로그램을 좀더 활성화해서 모든 사람이 새로운 잡에 적응할 수 있도록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현상 때문에 미국에서는 커리어가 일생 동안 다섯 번 정도 바뀔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커리어를 자기만 평생직업으로 생각하는 지금의 고정관념을 깨고 커리어를 다섯 번 정도는 바꾸어야겠다는 그런 전향적인 방법으로 대처해야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하준:제가 자본시장 문제를 부각시켰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잡 자체가 많이 변화하고 있죠. 그런데 이것도 조금 시각을 넓혀서 보면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옛날에 한창 발전하고 다각화할 때 보면 그때도 잡이 엄청나게 변했거든요. 신산업에 진출할 때, 예를 들면 현대조선 짓는 데 배 지어본 사람 없었습니다. 다른 것 하다가 그냥 한 거거든요. 물론 변하고 있는 분야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아까 복지국가 이야기할 때 강조한 것이 단순히 돈 많은 사람에게 걷어서 돈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자는 것이 아니라 다들 과감한 커리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재기의 기회를 주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재교육 같은 문제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복지국가라는 이름이 자꾸 나쁜 의미로 쓰여서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있는데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재분배 요소들도 있어야 하지만 그게 중심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사를 보면 그런 식으로 사회보험 메커니즘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기업의 유한책임제도 같은 것도 애덤 스미스 같은 사람은 반대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매니저가 주를 다 소유하고 있지 않는 한 자기 소유분만 책임지면 되니까 지나친 리스크 테이킹을 할 것이다’ 해서 반대했습니다.

도리어 주식회사 제도를 제일 찬양한 사람은 공산주의 이론의 대가인 칼 마르크스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비전이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해서 점점 기업이 커지면 어느 점에 가서 다 국유화하면 자연스럽게 공산주의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지만 그 사람이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미래다’ 얘기했고 애덤 스미스 같은 사람은 반대했거든요.

그리고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예금보험이 생겼고, 중앙은행이라는 제도도 자유시장경제주의자들이 반대했습니다. 이것도 개인이 돈을 막 빌린 것을 정부가 유동성 늘려서 구해주면 결국 벌을 안 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19세기 유명한 영국의 사상가 스펜서는 “중앙은행 제도를 계속하면 온 세계가 바보로 가득찰 것이다. 멍청하게 투자한 놈들 계속 구해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문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복지국가가 됐건, 종신고용이 됐건 그런 식으로 보험을 해주면 경제학 이론 기본에 나오는 것인데 소위 ‘도덕적 해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런 제도가 발달한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단점 없는 제도는 없습니다. 어느 제도를 해도 단점은 있죠. 우리가 판단할 때 지금 우리나라 맥락에서 어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지 논의해야죠.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직장 여러 번 바꾸고 재교육받고 하는 것 필요합니다. 그것을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할 거냐, 이런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대석(클럽 회원):한국언론인협회를 맡고 있는 성대석입니다. KBS에 있었습니다. 제가 질문드리려는 것은 장하준 박사께서 말씀하신 내용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 어느 정당의 대통령후보가 한반도대운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장하준 교수는 과연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다른 측면도 있는 것인지 이런 점에 대해 의견을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장하준:자세한 내용을 본 일이 없어서 죄송스럽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못하겠고요, 운하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해서 파급효과를 노리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데요, 자세한 내용을 몰라서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운하라는 것이 우리나라 지형이나 산업분포를 볼 때 맞는 이야기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유럽에는 운하가 굉장히 발달해 있습니다. 옛날에는 길들이 워낙 나빴기 때문에 운하가 제일 빠른 운송수단이어서 강을 따라 발달했기 때문에 그런 데서는 잘 이용했었고, 하는 것이 맞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식으로 산업이 발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코멘트하기가 좀 그런 게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원칙상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해서 파급효과를 노리는 것은 괜찮은데 그것이 과연 운하가 되어야 하느냐, 차라리 그런 정도 노력할 돈과 열기가 있으면 중국에 추격받아서 없어질 거라는 제조업에 다시 한 번 박차를 가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쓰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이재승(클럽 회원):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적으로 성장 위주로 할 것이냐, 분배 위주로 할 것이냐 이것이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세월 소위 진보정권 집권하에서 평등이라는 게 마약처럼 정치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님이 보시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성장 위주여야 합니까, 아니면 분배 위주여야 합니까?

장 교수께서는 또 우리 경제가 미래를 지향할 바람직한 무한복지경제를 말씀하시는데 제가 오래전 스웨덴에 갔을 때 택시기사에게 “너희 경제 여건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We are more communist than Russia”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 재벌인데 재벌주도형 경제체제가 그것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 하는 데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소개를 안 했는데 저는 한국일보 논설위원 출신 이재승입니다.   

장하준:지난 10년 동안 진보좌파 정권이 집권했는데 불평등은 훨씬 늘었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별로 좌파 정책을 한 것이 없습니다. 복지지출이 GDP 대비 5%대에서 10년 동안 막 늘려서 7%대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사실 OECD 평균이 90년대 말 기준 통계입니다만 24%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잘못하면 복지병 나온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영양실조 걸린 사람이 옆집 사람이 살 뺀다니까 자기도 살 뺀다고 밥을 안 먹는 것이나 비슷하거든요. 물론 어느 정도는 그게 고령화로 설명되지만 일본 같은 경우는 고령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복지비 지출이 15%이고 스웨덴은 30%가 넘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도 낮고 인구고령화도 훨씬 덜 진전된 남미의 코스타리카, 칠레도 11~12% 씁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정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웨덴을 예로 들어 주셨는데 스웨덴이 세계최대 재벌이 있는 나라입니다. 발렌베리 집안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들어보신 스웨덴 기업은 에릭슨 전화회사 빼고는 다 발렌베리 집안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발렌베리 집안이 30~40% 정도 갖고 있어서 통제할 수 있는 기업의 시가 총액을 합치면 스웨덴 스톡홀름 주식시장의 40% 가까이 됩니다. 그 나라가 바로 그런 것을 인정해 주면서도 엄청나게 큰 복지국가를 만들었거든요.

그러면 성장과 분배 어느 것 위주로 해야 되느냐. 저는 이분법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성장과 분배의 관계가 복잡합니다. 물론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면 분배한다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 걷어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의욕이 떨어져서 투자 안하고 부를 창출 안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할 수 있죠.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남미처럼 너무 불평등해서 범죄가 극성을 부리기도 합니다. 거기 있는 우리나라 상사 직원들까지 방탄차 타고 다닙니다. 돈 있는 사람을 납치해서 돈 뜯어내는 산업이 엄청나게 발달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되면 불안해서 투자를 안 하는 것이고, 아까 말한 스웨덴같이 복지국가를 생산적으로 운영하면 도리어 다른 나라보다 더 발빠르게 구조조정할 수 있고 기술 발전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관계가 굉장히 복잡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굳이 말하면 성장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 단계에서 성장이라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성장주의자인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분배를 희생해야 성장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반대편에서 보면 분배주의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 단계에서 성장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같은 경우는 1% 성장해도 관계없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인데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성장을 분명히 해야 되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장을 굉장히 강조하는데 그러나 그것이 꼭 분배를 희생해야 성장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여러 가지로 상당히 좋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윤양균(KBS 기자):저는 KBS 기자입니다. 평소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은행 중에 현재 공적자금이 들어갔거나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은행이 있는데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는 문제를 두고 사회적으로 의견이 한군데로 모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선주자들 의견도 좀 갈리고요. 그것 때문에 금산분리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혼란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연 은행의 주인을 누구로 할 것이냐 했을 때 첫 번째 재벌, 두 번째 외국자본, 세 번째 국민연금, 네 번째 정부소유 중 누가 하는 것이 가장 낫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장하준:금산분리가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데요, 우리나라에서 지금 현재 금산분리가 무조건 좋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국 같은 경우는 금산이 너무 분리되어서 문제 있는 나라입니다. 금융이 너무 발달하다 보니까 산업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산업에 투자하면 위험성이 많고 그래서 분리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닌데 그러나 지금 현재상황에서 재벌에게 줘야 하냐 이런 문제는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겠죠.

제가 볼 때는 많이 민영화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전까지는 정부 소유로 갖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일은행 팔 때처럼 안 팔면 나라 망하게 생긴 상황이 아닌데 국민적 합의도 없는 상황에서 이 어려운 이슈를 밀어붙이면서 민영화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정부가 일부는 팔더라도 일정한 지분을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국민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될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구한 은행들인데 이것을 외국자본에 판다면 국부유출 문제도 있는 것입니다.

또 재벌들이 가져가서 청명하게 쓸지 그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자세한 내용을 토론해야 되는데… 저는 급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언제까지 해야 된다 그럴 이유가 없거든요. 세계적으로 보면 정부가 소유해서 잘되는 은행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외환은행 매각하겠다고 했을 때 나섰던 DBS라는 싱가포르 은행도 싱가포르 정부 소유의 은행입니다. 독일 은행도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게 많습니다.

저는 소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등소평식이거든요. 흑묘백묘론 있지요? 쥐만 잡으면 됐지 까만색이면 어떻고, 흰색이면 어떠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 세계적으로 공기업인데 엄청나게 잘되는 기업도 있고, 망하는 기업도 있고… 사기업도 마찬가지죠. 기업 개별 사항을 보고 어느 정도 정부가 갖고 있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냐를 따져야 하니까 일반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령:저는 지혜령이라고 합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소속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쪽 분야와 관계없이 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교수님의 명성을 듣고 포럼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질문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환율에 대해 제2차 쇼크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고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제3차 오일쇼크에 굉장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보면 시중 자금이 갈 데가 없어서 주식시장으로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있어요. 교수님 말씀대로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이 약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이 지금 현재로는 없다고도 볼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의 코스피지수가 2050, 2060 이렇게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지, 이런 현상이 계속 유지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시는지 세계적 석학이신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장하준:감사합니다. 이런 거시경제지표의 단기적인 움직임 같은 것은 참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잘 예측했으면 제가 교수를 안 하죠. 돈 많이 벌어서 은퇴해서 날씨 좋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가서 살고 있을 텐데…. 지금 세계경제가 불안하거든요. 다들 뭐 괜찮지 않겠느냐 예상하는데 미국 경제가 그린스펀까지 나와서 자기는 리세션(recession)이 올 확률이 50% 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 서브프라임 론(subprime loan) 문제가 심각합니다. 등급 낮은 주택담보대출이 옛날처럼 딱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법이 발달하니까 그것을 썰고 뒤집고 해서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서 사방에 뿌려놓았기 때문에 지금 그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가서 앉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사건이 제일 처음 터진 곳이 독일, 프랑스 은행들인데 이 문제 때문에 큰일났다고 이야기해서 터진 거거든요. 지금 어느 나라에 얼마 정도 앉아 있는지 모릅니다. 이게 다 밝혀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메릴린치 회장 오닐도 잘리게 생겼고 지금 상당히 불안합니다. 유가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안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세계경제가 안 좋을 것으로 보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었습니다. 주식시장이라는 것이 아주 극단적인 시장주의를 믿는 사람이 아니면 다 인정하는 것인데, 단기적으로는 경제 펀더멘털과는 관계없이 돌아가거든요. 케인스 같은 사람은 심하게 ‘주식시장은 결국 카지노’라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물론 아주 장기적으로는 연결이 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지만 단기적으로는 펀더멘털이 안 좋은데도 주가가 올라갈 수 있거든요.

주식시장이 이렇게 뜨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닙니다. 중국, 남미, 개발도상국 주식시장도 많이 뜨고 있어요. 왜냐하면 미국이 안 좋아 보이니까 그게 다 몰려온 거거든요. 이게 무슨 일이 터져서 진짜 미국이 큰일나면 돈이 우리한테 더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게 다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어찌됐건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진짜 상황이 어려워지면 파이낸셜 프레스에서는 소위 fly to quality, 즉 질을 찾아서 도망가는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결국 다 미국쪽으로 가거든요.

지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이렇게 떠 있는 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들어가면 중국도 타격받을 것이고, 미국, 중국 둘 다 관련이 깊은 우리나라는 그것에 타격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러 가지 어려운 요소가 많습니다. 그런데 괜찮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국내의 지배적인 견해 같은데 단순히 우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을 산 것이 별로 없다고 해서 영향을 안 받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는 상당히 문제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율(연합뉴스 기자):이번 달에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 10주년을 맞게 되었는데요, 과거에 쓰신 저서들을 보면 IMF 이후 우리 경제에 대해 굉장히 비관적으로 보셨는데 최근 들어 성장률도 높고 투자도 늘어나고 있는데 지금도 그 관점을 유지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 경제가 살아날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하준:저는 학술적으로는 IMF 구제금융 직후부터 개혁의 방향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고, 1999년 문화일보, 한국일보에 동시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그때 다들 새 시대가 오고 바뀔 것이라고 했는데 그때도 계속 잘 안될 거라고 우기던 사람이니까… 그 견해를 지금도 근본적으로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투자가 떨어졌을 때 과거와 비율적으로 보면 설비투자 같은 경우는 거의 반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그게 다시 조금 올라갔다고 하지만 그동안 안한 것을 메우기에는 아직도 모자랍니다. 거의 10년을 제대로 투자를 안 했기 때문에 이것을 만회하려면 확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장률도 지금 정부는 OECD에서 최상위권인데 뭘 그러냐고 하는데, 제가 비유하자면 우리나라가 옛날에 6%, 7%, 8% 성장했습니다. 5% 되면 경기침체라고 했는데 이제는 5% 할 거라고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그게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OECD 최고수준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중국은 10%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과거에 비해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아들이 평균 90점 맞던 우등생인데 갑자기 성적이 60점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문제가 있느냐, 학원이 마음에 안 드느냐, 여자친구랑 싸웠냐고 이야기했는데 아들이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서 “아버지 평균 50점인 애들도 많은데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분명히 할 능력이 있었는데 못하니까 자꾸 뭐라고 하는 거지, 그런 식으로 기준을 낮춰서 비교하면 아프리카 가면 마이너스 성장하는 나라도 많은데 그러면 우리나라 잘한다고 춤춰야겠네요. 이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 하고 있느냐 그것으로 봐야 합니다. 조금 올라갔는데… 성적이 60점대로 떨어졌다가 70점대로 올랐으면 조금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분명히 옛날에 90점 맞았거든요.

앞으로 성장동력이 무엇이 돼야 하느냐는 정말 어려운 말입니다.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것이고, 다시 말해서 제가 그런 것을 알면 여기에 있지 않죠.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안 하던 분야도 꾸준히 개척해야겠지만 일단 하던 분야를 업그레이드하는 길을 찾아봐야 합니다. 제일 좋은 예가 유럽의 섬유산업입니다.

1950년대 유럽에 동아시아에서 싼 섬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일본에서 시작해서 한국, 대만, 홍콩에서 들어오는데 그때 영국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우리가 저임금 때문에 밀리니까 우리도 저임금으로 승부해야지’ 하며 인도, 파키스탄 등 예전에 식민지 하던 나라에서 싼 노동력을 들여왔습니다. 그 친구들이 오면 처음 몇 년은 조금 받고 일하지만 거기 정착하고 살면 거기 주는 것 비슷하게 줘야 합니다. 결국 한국과 임금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 망했습니다.

독일 같은 나라는 ‘우리가 어떻게 저임금 경쟁을 하느냐’ 하면서 섬유산업을 엄청나게 업그레이드했습니다. 특수섬유 극세사 같은 것 개발하고 패션디자인 개발했습니다. 옛날에는 독일 내 패션디자이너 하면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독일,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헬무트 랭 등 유명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개발하고 섬유기계를 업그레이드해서 극복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이 세계 5대 섬유수출국 안에 꼽히던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괜히 앉아서 5년 있으면 조선산업이 중국에 추격당한다고 불평하지 말고 그 시간에 거기에 투자해서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못 들어가는 분야가 유람선 크루즈선인데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그런 쪽으로 들어간다든지, 아니면 전자기술이 발달했으니까 그 분야에 연구개발해서 전자기술과 선박기술을 획기적으로 합쳐서 뭘 해보든지 그런 식으로 있는 역량을 일단 잘 활용해야 합니다.

삼성도 블루오션 찾아나간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필요합니다. 다각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생각하는 것처럼 다각화 자체가 나쁜 것처럼 생각하면 삼성은 아직도 설탕 만들고 양복지 만들고, 현대는 아직도 길 닦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안 된 것이 다각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어떤 분야를 다각화해야 하느냐 그 문제는 기업에 계시는 분들, 정부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관련부처가 같이 협의해서 결정해야겠죠.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굳이 버리면서 미리 포기할 필요가 뭐 있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진 자산이고, 물론 우리나라가 아무 산업도 없던 1960년처럼 황무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면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산업구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이용해야죠.  

구종서(클럽 회원):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중앙일보에서 근무했던 구종서입니다. 오늘 장 교수님 이야기 들어보니까 상당히 개인을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개인이나 국민보다는 전체 사회나 국가 차원의 경제를 말씀해 주셨고 그래서 공공부문에 치우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적 미래에 대해 낙관론이기보다는 비관론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주 솔직하고 대담한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듣고자 하는 것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금 안보시대에서 경제가 중요한 시대로 바뀌었는데 과거에는 미국에 의존해서 군사적인 안보, 경제적인 성장, 과학기술 도입까지 다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의 입장도 달라지고 국제정세도 변해서 우리가 전체를 어떻게 조정해야 되느냐의 관점에서 경제와 안보 중심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입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럽의 예를 보면 절대주의 시대에 시민혁명이 일어나서 부르주아적 경제인들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대단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또 자본주의 발전해서 결국 제국주의, 식민지로 나갔고, 2차례 세계대전까지 끝내서 아주 처참하고 가난해지고 힘든 사회였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보면 박정희 시절에는 국가보호하에 경제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꼭 그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정경유착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민정에 들어오면서 현재의 권력, 재벌들이 오히려 핍박받고 지배당하고 시달림당합니다. 여기에 민간세력, 시민단체들이 협력해서 현재 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정치권력 관계는 어떻게 조절되어야 하느냐. 이런 것을 묻는 것은 오늘 장 교수께서는 경제 산업 분야 말씀을 하셨지만 그동안 글 쓰신 것을 보면 굉장히 국가적인 입장에서 국가전략, 국가경영에 대해 많이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여쭤보는 것입니다.  

장하준: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맨 처음에 개인과 사회의 문제라는 것은 저는 이렇게 봅니다. 개인의 자유가 어느 정도 일정분야에서 제약되어야 더 큰 자유가 보장되는 거거든요. 교통규칙을 다 같이 지켜야 마음놓고 운전할 수 있지, 이게 안 지키기 시작하면 ‘나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신호등이 무슨 상관이냐’ 하면 전체 질서 자체가 무너지고, 그렇게 되면 개인들이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처음에 영국 갔을 때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사람들이 굉장히 바보 같다는 것이었죠. 계산도 잘 못하고 꾸물꾸물… 한국에서는 설렁탕집 가도 여종업원 혼자 서서 세 군데서 동시에 주문받고 외우고 거스름돈 내주고 나르고 다 하는데 거기는 뭐 하나 하는 데도 꾸물꾸물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영국의 국민소득이 한국의 3배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3배가 되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내린 결론이 제도가 좋고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도가 좋기 때문에 개개인이 똑똑할 필요가 없거든요. 제도가 나쁜 나라는 도리어 개인들이 똑똑합니다.

나이지리아에는 우리가 생각할 때 바보들만 모여 있을 것 같죠? 제가 가르쳐본 학생 중에 제일 똑똑한 학생들은 나이지리아 출신이었습니다. 거기는 속된 말로 앗싸리 판이기 때문에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개인들은 엄청나게 똑똑한데 나라는 형편없는 겁니다. 그래서 개인들의 일정부분을 공공을 위해 희생하고 협동할 때 더 큰 자유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국제세력 관계는 제가 아마추어라서 말할 처지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옛날처럼 미국 일변도는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중국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그 다음에 EU 자체가 확대되고 거기와 교류가 늘어나다 보니까 옛날에는 미국이 단연 우리나라 수입, 수출 다 해서 무역의 제1파트너였는데 이제는 3등이 됐거든요. EU, 중국, 미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변화된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특히 옛날부터 큰 나라 틈에 끼여 고생하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큰 나라 틈에서 더 잘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앞으로의 추세를 좀 내다보고 그런 전략을 짜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전략을 짜는 데 인적자원이 부족합니다. 중국 전문가들은 있는데 유럽, 미국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럽은 공부하러 간 사람 자체도 적지만 유럽 자체를 공부하고 온 사람이 없습니다. 몇천 명이 미국유학을 갔다 왔는데 대학교에서 미국경제론을 가르칠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우리가 전문가를 더 양성해서 새로운 3자 구조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될 것인가를 준비해야 합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씀드리기 힘든데 일단 2가지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야 좋은 것이고 너무 한쪽이 세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꼭 정치권력의 확대라기보다는 규칙 지키기처럼 공공선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자로 표현하면 민(民), 관(官)만 있는데 공(公)이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역할도 필요하고 기업체들도 그런 데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공이라는 영역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 이런 비생산적인 경쟁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 회: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열린 관훈포럼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앞으로 수시로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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