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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시국 타개를 위한 국민통합의 길

초청자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개최일 :
2009-02-18
조회수 :
3,013
첨부파일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초청 관훈포럼

 

일시:2009년 2월 18일 낮 12시

장소: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

사회 : 이목희 관훈클럽 총무(서울신문 논설위원)

토론 : 김진국 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 겸 정치국제에디터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이목희(관훈클럽 총무, 서울신문 논설위원, 사회):날씨도 쌀쌀하고 바쁘실 텐데 관훈포럼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한국의 진보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님을 모셔서 좋은 말씀을 듣는 자리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벌써 지성인들의 열기가 후끈한 것 같습니다. 먼저 30분 정도 식사한 뒤 강연을 듣고 대표질문자 및 플로어의 질문을 받는 순서로 하겠습니다. 편하게 식사하시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식사)

한국사회가 남북과 지역분열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념적으로도 이리저리 갈라져서 어지럽습니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길을 찾아보기 위해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기획했습니다.

오늘 먼저 말씀해주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님은 따로 소개를 안 드려도 될 정도로 진보지성계의 대표적인 분입니다. 방금 말씀 들었는데 일본 NHK­TV에서 세계지성인 특집을 하면서 백낙청 교수님을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선정하여 여러 가지 인터뷰를 하고 활동상황을 취재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런 분을 모셔서 좋은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 아시겠지만 백 교수님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38년 대구에서 출생하셨고, 미국 브라운대학을 졸업하시고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및 박사를 받으셨습니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역임하시고 계간지 《창작과비평》 창간 및 편집인으로 계시면서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장도 역임하셨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로서 남북관계도 한 4년여 동안 열심히 주도적으로 관여하셨습니다. 어제 그만두셨는데 여러 가지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소회가 많으실 줄 압니다. 진보적 문화 및 남북관계에 독보적인 존재이신 백 교수님의 고견에 기대가 많습니다.

저희가 대표질문자로 선정한 분을 소개해 드리면 제 왼쪽이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이고 오른쪽이 김진국 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 겸 정치·국제에디터입니다.

그러면 먼저 백 교수님 강연을 듣고 질문하는 순서로 하겠습니다. 자리와 시간 관계상 앉아서 하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백 교수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박수)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여러분 반갑습니다. 원래 40~50분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제가 50분을 다 소비하면 토론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40분 내에 말씀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관훈클럽에서 정·관계 인사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듣기로 하신 데 경의를 표합니다. 그 첫 순서로 제가 초대받은 것이 개인적인 영광이기도 하지만, 저의 경의가 단순히 개인적 감사의 뜻이 아닌 그 이상의 경의를 표하고 싶다는 것을 강연 도중에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건대 대한민국은 지금 단순한 경제위기를 넘어 국가적인 비상시국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각계각층의 다양한 소통과 참신하고 과감한 발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론계 현장에서 중임을 맡고 계신 관훈클럽 회원 여러분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게 된 제 기쁨이 남다릅니다. 아무쪼록 이 소중한 기회를 살리게끔 제 생각을 차분하고 진솔하게 말씀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민통합,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제일 먼저 국민통합에 대해 조금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얘기는 생략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은 국민통합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전제하고 발언하기 일쑤입니다. 언론에서도 대체로 그런 경향이고요. 하지만 100% 국민통합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한 목표도 아닙니다. 지구상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을 모두 따돌리고 한국 국민끼리만 똘똘 뭉쳐 통합하는 게 한국인 자신에게조차 이로운 일일까요? 더구나 시대는 우리에게 세계시민이 되고 동아시아의 지역시민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부로 한정하더라도 이 땅에는 국적이 다른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끼리만 단결해서 그들을 배척하거나 차별하는 길을 가서는 곤란합니다. 아니, 같은 국민 사이에도 남녀의 차이, 계급의 차이, 기타 수많은 차이가 존재하는데 통합만 강조하다 보면 이런 차이를 호도하고 때로는 차이에 따른 차별을 옹호하는 결과가 됩니다.

게다가 한국은 분단국가입니다. 한반도 북녘에는 대다수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고 법률상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주권체제 아래 60년 넘도록 살아온 주민들이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이들과 함께 가는 국민통합이란 허상에 불과한데, 그렇다고 이들을 도외시한 남한만의 국민통합은 법리상 헌법위반일 뿐 아니라 국민으로서나 민족으로서나 분열과 기형성(奇形性)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이처럼 국민통합은 많은 함정이 따르는 개념입니다. 그때그때 어떤 성격, 어떤 수준의 통합이 상대적으로 바람직한가를 판단해서 추구할 목표인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시대건 분단시대건 또는 다문화사회이건 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일정한 수준의 국민통합이 필요하다는 건 상식에 속하겠지요. 더구나 지금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는 평상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국민통합의 현황

국민통합의 현황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불행히도 이런 상식적인 목표가 오늘날 한국에서 달성되고 있다고 믿는 분은 드문 것 같습니다. 국민통합을 약속하며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국민통합이 되어야 한다” 또 “국민통합을 위한 저의 노력을 국회와 국민이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고 역설할 뿐이지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못하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경제위기는 평상시 갈라졌던 국민을 뭉치게 하는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을 때가 생생한 본보기입니다. 당시 금모으기운동에 대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여러 가지 성찰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어쨌든 보기 드문 국민통합의 사례였고 IMF사태 ‘단기졸업’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경제위기는 여론의 대통령 지지도를 받쳐주고 있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현재의 난국이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일환으로서 우리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라는 점에 누구나 합의하고 나라살림이 어려울수록 국정책임자에게 일단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따라서 취임 1주년도 안된 정부에는 경제위기가 오히려 정치적 플러스 요인이 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위기가 더 지속되고 살림살이가 더 비참해졌을 때 어떻게 될지는 별개문제지만요. 

그런데 이런 플러스 요인이 가세하고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지지가 반대를 훨씬 밑돌며 아무도 국민통합이 잘되고 있다고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책임이 어느 한 사람에게 또는 어느 일방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권한을 쥔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가장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지난 1년간 이명박정부의 정책과 행태가 국민통합을 저해한 바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국민을 전혀 설득하지 못한 일련의 인사결정이 그렇고, 계층간 격차를 줄이기보다 확대하는 방향의 경제·사회 정책들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위기에 처한 국민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는 데 가장 방해되는 것은 대통령 자신의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수시로 말이 바뀌는 가운데도 일관된 주장은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고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남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미국경제가 나쁘고 세계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또는 야당과 일부 불순세력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그리고 국민이 너무 몰라주고 너무 말을 안 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니 국민이 감동할 리 없고 ‘당신들끼리 잘해 보시오’ 하고 등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의 실정을 열거하며 규탄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현실이 이러한 마당에 우리 자신은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을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입니다.

책임지는 국민이라야

다음은 이 현실에 대한 우리 국민의 책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주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기 잘못은 외면하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통령에게만 반성하라고 다그친다면 우리 또한 통합에 아무런 기여를 못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대통령이라는 상머슴의 잘못도 궁극적으로는 주인의 책임입니다. 노예는 주인을 탓하면서 노예생활을 계속할 수 있지만, 주인은 머슴을 탓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진정한 주인입니다.

거기다 실제로 우리 국민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켰습니다.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이 이명박 후보를 찍은 사람들에게 한정될 수는 없습니다. 작년의 촛불시위에서 10대 소녀들이 ‘우리가 찍은 것 아니에요’라는 팻말을 들고 나왔는데, 이들처럼 정치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 세대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죠. 하지만 그들 역시 성년이 되어 이 나라의 헌정질서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행해진 온갖 과거사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만행에 직접 참여한 바 없는 오늘의 일본 국민에게 우리가 반성과 사과의 책임을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국민의 책임은 단순히 대통령 당선의 합법성에서 오는 것만도 아닙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후보는 대다수 국민의 욕망을 대변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반대자의 마음속에도 자리 잡은 묻지마식 ‘성공’의 꿈 말입니다. 게다가 이런 욕망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명박과 똑같은 ‘남의 탓’ 습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것을 보고 한국인의 ‘민족성, 국민성’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남 탓하기입니다. 한국인은 일본의 식민통치와 강대국에 의한 국토분할을 경험하면서 실제로 남을 탓할 정당한 이유도 많았지만, 분단이 일종의 ‘분단체제’로 굳어지면서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탓하고 외세나 내부의 적을 탓하는 것이 체제유지의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공부를 하는 것도 우리가 책임지는 방식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은 어떻게 해야 이런 정부를 출범시킨 국민의 책임을 다하는 길일까요?

우리가 뽑은 책임이 있으니까 다음 선거 때까지 꾹 참는 것이 도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도의 무책임일 뿐입니다. 민주시민의 권리와 책무가 법에 정해진 시기에 투표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논리야말로 모든 반민주적 정권이 애호하는 논리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국민이 들고일어나서 당장 정권을 갈아치우자는 주장도 무책임합니다. 백성들의 정권교체 권한은 봉건사회에서도 맹자 같은 분이 인정했던 것입니다. 혁명권을 이야기하셨지요. 그러나 지금은 정권교체의 구체적인 절차를 규정하는 헌법이 있고 그 헌법제정에 국민이 동의한 상태입니다. 이런 경우는 대중봉기를 통한 초헌법적 정권교체는 삼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원론적인 문제를 떠나서라도 그럼 당장에 대통령을 끌어내릴 실력이 있느냐, 또 끌어내리더라도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는 현실적인 답이 없는 이상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명박 OUT’이라는 구호를 외치기는 했지만 정권퇴진운동까지는 안 가고 주권자들이 한바탕 축제를 벌인 지난해 촛불시위는 이명박정부 출범 벽두의 시점에서 국민이 자기 책임을 이행하는 적절한 수준과 창의적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올해입니다. 원래 지난여름과 같은 축제는 ‘리바이벌’해서는 제 맛이 나지 않기도 하지만, 올해는 세월이 더 흘렀고 상황이 달라진 만큼 국민이 책임지는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2009년의 비상시국

2009년이 비상시국이라는 저의 인식을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작년 여름과 달라진 2009년의 상황을 저는 3가지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사이 경제위기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아직도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적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기업부도와 정리해고가 속출하는 동시에 기업이나 정규직의 경우보다 훨씬 취약한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새내기 대졸자를 포함한 미취업 인구, 이러한 사람들의 빈민화가 급속히 진행될 때 작년처럼 유쾌하고 비교적 온순한 촛불군중의 시위주도권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폭발의 위험이 날로 증대하고 있습니다.

둘째, 남북 당국간 단절이 국내 위기의 일부를 이룬다는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편이지만 경제위기 극복의 결정적 장애로 작용하리라고 봅니다. 굳이 북측이 군사충돌을 일으켜 한국경제의 국제신인도에 타격을 주지 않더라도, 남북관계 단절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만이 손에 쥔 희귀한 카드를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당장에 남북교류가 부진해서 우리 기업이 얼마나 손해를 보느냐는 계산을 넘어, 치명적인 ‘기회비용’을 물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의 시위대중이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하든 안하든 정부가 국내정세 악화를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무엇보다 불행한 점은 이명박정부가 지난해 ‘촛불’의 평화적이지만 엄중한 경고를 무시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시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엇나가기로 작심했죠. 그러한 역주행이 곳곳에서 접촉사고와 인사사고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달라질 기미가 별로 안 보입니다. 앞으로 시민들이 설혹 축제분위기의 촛불집회를 선택하더라도 정부가 강경진압으로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한층 절박해진 시위군중과 정부의 강경책이 맞부딪칠 때 ‘용산참사’ 같은 사건의 연쇄발생과 대형화마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참사가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분노를 삭이며 물러서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리 국민과 한국의 현대사를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발상입니다. 동시에 정부가 자진해서 바뀔 공산도 현재로서는 희박합니다. 결과는 최악의 교착상태이며, 나라 다스리기(거버넌스) 체계의 붕괴에 다름 아니겠지요. 집권세력이 말하는 소위 ‘잃어버린 10년’ 중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성과가 치명적으로 손상됨은 물론이고, 집권세력이 입으로는 부정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김영삼정부의 개혁작업과 노태우정부의 대북화해협력정책도 없었던 일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에 이룩된 한국경제의 기반과 세계경제에서 확보한 위상마저 유실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 예찬자는 아니지만 몇 해 전 박대통령의 치적은 치적대로 인정해줘야 된다고 말했다가 여러 가지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데 지금 이 정권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치켜세우면서도 사실은 이대로 가면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것마저 허무는 결과가 되리라는 것이 저의 염려입니다.

저는 이런 위기를 기존의 틀 안에서 수습할 길은 없다고 판단합니다. 민주적 통치를 확보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제도의 활용이라든가, 여기 언론인들이 계시는데 ‘제4부’로서의 언론의 비판적·건설적 역할 이런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남은 의회 및 사법부의 독자적 권력이라든가 또는 대체로 봐서 중소신문이나 방송계 일각에 국한된 독립언론마저 제거하려는 집권세력의 총공세가 진행 중입니다. 지방자치의 민주적 견제기능도 지역주의로의 퇴행이 가속화되면서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기국면에서의 전통적 수습책으로는 거국내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지금은 답이 못 된다고 봅니다. 예컨대 이따금씩 거론되는 박근혜 총리설은 거국내각이라기보다는 거당내각에 해당하는 구상이지만, 그마저도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실현되더라도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방책은 못될 것입니다. 물론 집권 초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총리로 기용했다면 그것은 대통령이 포용의 정치를 하겠다는 상징적 선언으로서 이후의 정국진행이 달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하나의 가설에 불과합니다.

읽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지난 연말 ‘창비주간논평’이라는 온라인 지면을 통해서 〈거버넌스에 관하여〉(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336.aspx)라는 시론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론도 저의 이러한 현실인식과 문제인식의 표현이었습니다. 일부 언론보도에는 제가 ‘올봄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고 예측 내지 선동한 것으로 비쳤습니다만, 저로서는 올해 국내정세가 악화될 때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고민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진보개혁세력에 속한다는 사람들도 정부를 규탄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습관화된 대응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 있는 진보가 협력하여 폭넓은 중도세력을 형성하면서 정부 및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동참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일종의 거국체제를 구성해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아슬아슬한 상생의 길

이것이 상생의 길이긴 한데 제가 봐도 매우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그 다음 대목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시도가 어떻게 진행되고 얼마나 성공할지를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한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상생이지만 이를 위해 상극의 다툼을 일단 거쳐야 한다는 쓰라진 현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명박정부가 ‘입법전쟁’이나 특공대 투입식 공권력 지상주의로는 입법도 안 되고 법질서 확립도 안 되고 경제회생도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서 바뀌어 주면 더 바랄 나위 없지만, 자발적인 변화가 없을 때는 뼈아픈 체험을 통해 깨닫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건 뒤 어떻게 하겠다는 마련 없이는 상극의 싸움에 그칠 뿐입니다. 저 자신 이에 관한 경륜이 부족함은 물론입니다. 다만 이 시기에 필요한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저 나름의 구상을 하고는 있습니다.

먼저 이 구상에 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2가지로 말씀드리면 하나는 ‘사후대책’에 대한 준비는 목전의 싸움과 동시에 진행되어야지 당장의 싸움이 급하니 이기고 난 뒤에 보자는 태도로는 옳은 방안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니, 싸움에 이길 확률 자체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동시에 대책마련을 위한 협의와 검토는 여러 층위, 여러 범위로 진행되는 것이 옳으며 처음부터 어떤 수준, 어떤 집단이 수행할지를 놓고 다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른바 진보개혁세력 사이에서도 종전에 비하면 훨씬 유연하고 다양한 협의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자기들 진보세력끼리, 더러는 아예 운동가들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충분히 벗어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해서 이미 형성된 ‘민생민주국민회의’ 준비모임, 약 400개 단체가 가담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단체라든가 지금 시작단계인 소위 ‘민주연합’ 시도를 굳이 포기하거나 중단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소통 자체를 시민운동의 ‘순수성’이나 ‘중립성’을 해치는 일로 배격하는 것도 현재의 비상시국에 둔감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민단체들이 풀뿌리 민중과 멀어져 있으니 지역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충고는 경청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현장에 밀착된 움직임과 여러 다른 층위 및 범위의 운동을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볼 일은 아닌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은 폭넓은 국민통합을 위해 온갖 방도를 시험해볼 때입니다. 지난번 ‘1차 입법전쟁’에서 이른바 ‘MB법안’ 저지에 성공한 것이 진보진영의 힘만이 아니었음도 유념해야 합니다. 물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결연한 저항을 했고 또 언론노조를 비롯한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원외에서 투쟁한 것이 주된 동력을 제공했지만, 대중투쟁을 거부하면서도 강행통과를 원칙적으로 반대했던 자유선진당이라든가, 여당 내부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거리두기를 한 사실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가세함으로써 의회의 심의기능이 그만큼이나마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2월 또는 추후의 국회에서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2차, 3차 입법전쟁을 벌이기로 한다면 보수진영의 합리적인 비판세력이 국회 안팎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큰 변수가 될 것입니다. 번번이 회의장 점거농성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겠지요.

그렇다면 거버넌스 개편을 위한 여러 층위, 여러 범위의 노력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요? 큰 방향은 시민사회가 국민통합의 경륜을 갖추고 동참하는 일종의 거국체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너무도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요. 물론 이런 방안이라는 것은 실제로 협의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따른다면 처음부터 아주 구체적일 수는 없습니다. 본질상 막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거국체제 건설을 위한 동력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동력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이 문제에 관해 정부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비상시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그 어느 권력자도 자신이 잡은 권력을 선선히 나눠가지려 하지 않는 법이지요.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는 권력자가 싫다고 싫다고 하는데도 ‘민’이 나서서 조금씩 민중의 국정참여권을 넓혀온 역사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경제난을 넘어 국난(國難)이라 불러 마땅한 비상시국입니다. 이런 때야말로 또 한 번 민주주의의 비약을 이룩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비상한 처방이 아니고는 넘길 수 없는 고비에 왔다는 인식은 어차피 확산될 것입니다.

다양한 구성과 활발한 토론을   

이야기가 너무 막연해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니까 몇 가지 구체적인 구상을 제기하겠습니다. 이것은 잘 정리된 제안이라기보다는 활발한 범사회적 토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냥 던져보는 시안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더구나 거버넌스 개편이 막연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선, 국회의 기능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공조를 통해서 약간이나마 소생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마찬가지로 거버넌스 개편을 위한 범사회적 노력이 확산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민주정치의 전통적인 장치들이 다시 활성화되게 마련입니다. 가령 앞서 열거한 삼권분립과 ‘제4부’로서의 언론의 기능이 그럴 것이고, 전문성이 중시되는 공공기관이나 연구기관, 독립적 국가기관에 대해서 무력화 내지 어용화 압력도 한결 줄어들 것입니다. 이것만 되어도 우리는 절반은 이루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구와 관행의 창출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기존의 여러 협의·심의·합의 기구들이 풍부한 참고자료를 제공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우리 사회에는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산을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바 있는데 거기에 새로이 눈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민간이 참여해서 심지어 공권력까지 행사하는 강력한 집행력을 갖는 민간참여 형태로는 특별검사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장에 유용한 모델은 아니겠지요.

일정한 권한을 갖는 국가기구이면서도 독립적인 기구의 예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모델이 되겠습니다. 전에는 방송위원회도 독립적인 국가기구였는데 아시다시피 이명박정부 아래서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었습니다. 노사정위원회는 민간기구이면서도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민관협치에 더욱 어울리는 모델일지 모르겠습니다. 또 한시적으로 중요한 국가정책결정에 민간이 동참한 예로는, 결국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단으로 끝났습니다만, 김대중정부 때 새만금간척사업의 타당성을 재조사한 민관합동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민관합동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어느 한 가지 유형을 고집할 이유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유형을 창안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 가지 모델을 택했더라도 상황의 진전에 따라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향후 더 많은 토론을 위해 몇 가지 시안을 던져보는 것으로 만족할까 합니다.

우선, 나라 다스리기 체계의 개편문제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소통하며 원칙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이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합법적인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마당에 이들의 결정이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는 없고, 그러려고 해도 안 되겠지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바로 그런 임의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이들의 합의는 오로지 그 내용의 합리성과 국민의 지지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모임을 구상할 때 모델로는 앞서 언급한 어느 민관협치의 사례보다는 국제외교기술의 산물인 베이징 6자회담이 오히려 참고가 될 듯합니다. 6자회담은 전원이 합의하지 않고는 아무런 결정도 못하는 회담에 불과하다는 뚜렷한 한계를 지닙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6자회담의 매력이고 강점이기도 합니다. 전원합의가 없이는 진전도 없지만, 전원이 합의하지 않고는 구성원 각자가 하는 일을 막지도 못하기 때문에 부담 없는 참여가 가능하고 누구도 이걸 꼭 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담이 간헐적으로나마 진행되다 보면 그 틀 안에서 다양한 쌍무적 접촉과 3자 또는 4자 협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핵심당사자 간에 합의가 되면 나머지 참여자의 견해를 참작하여 공식합의문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6자회담의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요, 이런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긴장을 완화하고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합의도달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입니다.

물론 6자회담 모형이 국내 거버넌스 개편 논의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당사자 수를 여섯이면 여섯으로 못 박는 게 불가능하며, 정당대표의 경우와 달리 시민사회의 경우는 누가 어떤 의미로 대표성을 갖는지도 쉽게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사회 지도급 차원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6자회담식’의 느슨한 모임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은 없을 것입니다. 참가정당의 범위는 거버넌스 개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당으로 하되, 그 수는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한 정도라야겠지요. 등록된 모든 정당이 모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는 한나라당인데 한나라당이 거국체제 구성의 필요에 공감해서 참여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인데, 아직 그럴 태세가 아니라면 우선은 다른 원내정당이라도 함께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조차 안 돼서 민주당과 진보정당하고만 협의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도 하나의 준비과정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거국체제 추진단계까지는 못 간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소통하는 모임이 6자회담과 구별되는 또 한 가지는, 모임의 층위에 따라 참가범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원로급 회동에 안 들어가는 정당이 중견급 만남에는 참여할 수 있고, 시민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모임이 거듭되다 보면 다양한 실무회의―6자회담으로 치면 분야별 워킹그룹―를 수반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른 사례로 남북관계처럼 본디 초당적 추진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조금 더 응집력 있는 기구가 바람직합니다. 남북화해와 통일문제를 정부의 일방통행이나 여야간 정쟁의 영역에서 끌어내서 시민사회의 중도적 양식과 정치권 및 관료사회의 책임 있는 역량이 결합하는 심의기구 내지 합의기구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일종의 시국회의 형식으로 출발하더라도 어느 단계에서는 노사정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상설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4대강 정비사업이라든가 지금은 철회되었다고 하는 한반도대운하 계획처럼 한국 및 한반도의 총체적 공간전략을 좌우하며 자손만대에 영향을 미칠 사업은 비록 한시적이지만 상당기간 존속하면서 각계각층의 심도 있는 토론과 검증을 주관하고 그 결과의 국민적 수용을 담보해줄 민관합동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4대강 사업의 주된 목표가 홍수방지와 용수확보라고 하면 예의 4대강 본류뿐 아니라 그 많은 지류·지천 중에 어디를 어떻게 손대는 게 가장 적절한지, 주운(舟運)의 부활이 필요하다면 어디서 얼마만큼 추진하는 게 가능하며 효율적인지를 두고 투명하고 정직하며 철저한 검토 끝에 납득할 만한 결론이 나와야 하는 분야인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강 살리기’를 대운하사업으로 연결시키는 게 정부의 속셈이라면 이 또한 공개적으로 추진하면서 어디서 어떤 운하를 만드는 게 타당한지를 두고 이 기구에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그 밖에도 경제문제와 사회정책 등 사안에 따라서, 그리고 그때그때 정황에 따라 ‘민’의 국정참여를 확대할 공식·비공식 통로는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구를 무작정 많이 만들어내는 게 장기는 아닙니다. 요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국민통합작업이 진행될 때 민주적 통치를 위한 기존 장치가 활력을 되찾고 기업과 노조, 언론과 각종 전문가집단, 시민운동단체와 비영리단체 등등이 자기 고유의 영역에서 더욱 충실한 기여를 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를 추진할 국민적 동력은 여전히 문제입니다. 하지만 위기심화와 더불어 동력도 증대할 것인데 이런 동력이 생길 때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특히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에서 활발하고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생의 길은 역시 아슬아슬합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명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저력 있는 국민이요 민족이며 시운(時運)을 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비상시국을 타개할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데 끝내 성공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저의 부족한 이야기를 경청해 주신 것도 좋은 조짐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 회:좋은 말씀을 저희가 부탁드린 시간에서 1분도 안 틀리네요.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바로 질문순서로 들어가겠습니다. 경향신문 유인경 선임기자부터 날카로운 질문을 해주시겠습니다.

유인경(경향신문 선임기자):백낙청 선생님께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을 국민의 머슴이라고 강조해서 머슴에 대한 꾸중과 주문보다는 주인인 시민의식이라든가 시민단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시민단체에 시민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미비하고 어느 정치권보다도 오히려 시민단체가 양극화되거나 정치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지난해 촛불집회의 경우는, 물론 일부 보수권이나 여론에서 한 얘기이기도 합니다만, 시민단체가 개입함으로써 촛불집회의 순수성과 진정성이 많이 왜곡되고 희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단체들에 대해서 진보진영에서조차 정치권과 거리두기에 실패했다는 비난이 많은데 백낙청 선생님이 주장하시는 거버넌스라든가 시민사회에 제대로 역할하려면 시민단체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야 될 텐데 이러기 위해서 상생의 길이 가능할지, 오히려 양분화되어 보이는 시민단체나 시민사회에서 거버넌스가 너무 이상적이거나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백낙청:제가 정부나 국민의 머슴에 대한 꾸중보다는 주인인 국민의 역할에 더 강조점을 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은 귀가 있어 듣는다고 한다면 꾸중도 살금살금 한 꾸중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화끈한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제 몫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국민의 역할을 말할 때는 꼭 시민단체만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기존 시민단체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질문을 주셨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 한두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말은 일면의 진실은 있지만 또 그것은 시민운동을 그냥 불신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말하는 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시민운동하는 단체들이 그동안의 영향력에 비해, 김대중정부나 참여정부에서의 영향력에 비해 내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면이 많았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점에서는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것이 그분들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느 곳에 가서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 덕분에 열공하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공부를 많이 해야죠.

시민단체 양극화에 대해서 저는 보수와 진보 시민단체들이 양쪽에 병렬해서 제대로 대립하고 서로 비판하는 그런 구도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렇게 안 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은 참여정부 아래서 소위 뉴라이트 성향의 시민단체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분들이 시민운동을 시작했는데, 저는 그 시점에서 그분들의 노선에는 동의를 안 했습니다만 크게 봐서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하나의 징표라고 생각하고 일정한 기대를 걸었습니다. 왜 진보라고 생각하냐 하면 그 전에는 보수진영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든가 논리를 전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은 그냥 불순분자로 몰아서 잡아가면 됐지 시민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진영도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논리의 개발을 느끼는구나 했는데 논리를 개발한 분들이 사실은 원래 보수진영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분이라기보다는 사실은 좌파운동, 그것도 상당히 극렬한, 저 같은 사람은 따라가기 어려운 그런 철저한 좌파운동을 하던 분들이 변신하면서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좌파운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공부를 많이 한 셈이고, 자기들 입장을 바꾼 가운데 여러 가지 고민을 해서 상당한 이론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이게 잘 가면 우리나라에도 우익적인 시민단체, 우익보수당론이 제대로 발달하겠구나 하고 기대했는데, 소위 진보적 단체를 위해서 이명박정부의 출범이 오히려 하나의 공부할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면 우파보수단체를 위해서는 이명박정부의 집권이 거의 재앙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중 상당수는 곧바로 정권에 참여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이 정권의 속도전의 별동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모처럼 시민운동과 시민단체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기회가 유실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세력이 지난 세월 국민의 신뢰를 많이 잃어버린 그런 사태가 지금 보수단체의 경우 더 급속도로 진행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섭섭한 일이죠.

기존에 정치권과 시민단체에 2가지 병폐가 있는데 하나는 지금 지적하신 정치권과 거리두기 실패, 다시 말해서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이 쉽게 버리고 좋은 자리를 찾아간다든가, 거기에 가지 않더라도 정치권과 밀착해서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며 독립성 등을 상실하는 것이고, 또 하나의 병폐는 무조건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이 시민단체로서의 순수성이 확보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데 제가 말하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소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통입니다. 나쁜 의미의 밀착을 경계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그러나 정치권과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어른스럽게 소통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한 결벽증을 느끼지 않는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거버넌스에 대한 저의 전반적인 구상이 너무 이상적이지 않느냐고 했는데 저 스스로  이것이 충분한 동력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아슬아슬하다고 했으니까 반대할 뜻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논지 중 하나는 실제로 이런 것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고, 비상시국이 심화되고 있고, 또 우리 국민 가운데 이런 거버넌스 개편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넓어져 있기 때문에 동력이 생기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사 회:이 문제와 관련해서 김진국 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님이 질문하시죠.

김진국(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금방 선생님 말씀에서도 진보진영이나 보수진영이나 정치권에 유입되는 문제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은 과거 경험이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실제로 진보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 부분도 87년 이후 분열되면서 정치적인 당파성이 상당히 강화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후 상당부분이 제도정치권으로 들어갔고요. 바로 직전 대통령선거 때도 일부분은 정당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때 선생님도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해 일부 영향력을 행사하신 것으로 아는데, 시민사회의 당파성이 강화되어 금방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도정치권의 기존 대의정치 제도를 뒤엎고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를 만든다는 것이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고요,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단체라는 것도 방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게 좌건 우건 간에 정치적 발판으로 삼는 단체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데 그런 대표성을 누가 어떻게 참여해야 되는지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의미에서 보면 진보진영 내에서도 우리가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백낙청:정치권 유입에 관해서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저는 시민운동하는 개개인이 자기 나름의 소신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고 그것은 오히려 우리 정치를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서 실제로 시민단체들의 역량이 줄어드는 면이 있고, 그보다 더 문제는 정치권에 본인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시민단체운동을 계속하면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조금 치우친 운동을 하게 될 때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당파성이라는 문제는 당리당략 차원에서 어느 당을 위해서 또는 정부와 밀착해서 움직이는 그런 당파싸움은 곤란하지만 시국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견해를 가질 수 없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떤 일정한 견해를 갖는 것 자체를 당파성이라고 한다면 저는 당파성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올바른 시국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 대선과정에서 제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행사하려다 실패했지요. 후보단일화를 촉구한 사회 각계인사 중 한 사람이었는데 언론에는 그냥 후보단일화하라고 했다 또는 결과적으로 어느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게 나왔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때는 문건을 검토해 보시면 어느 특정후보를 지지한다기보다 그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가 도덕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로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곤란하지 않겠냐’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 후보 중 누가 제일 나으니까 그 사람을 찍어달라, 그 사람으로 단일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단일화를 해서라도 이런 사태는 막아야 되지 않는가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지금 시점에서 여러분이 판단하면 될 것 같고요, 그것을 해서 손해를 봤는지 이득을 봤는지는 제가 판단해서 제가 책임지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 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 또 누가 대표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겠는가, 이게 참 문제입니다. 단체들의 대표는 단체의 대표성을 갖는데 가령 제가 말하는 6자회담식 회동이 열렸을 때 정당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대표급이 나온다면 누구누구 확정되어 있고, 사무총장급이라고 하면 거기도 누구누구 정해져 있는데 시민사회에서는 누가 나가느냐, 이것은 그런 회동에 대한 요구가 그냥 막연한 구상이나 하나의 제안이 아니고, 범국민적이라고 하면 좀 과장되겠습니다만, 상당히 넓은 사람들 간의 그런 요구가 공유되면 저는 그 문제는 해결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시민운동한 분들 또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을 구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소위 민중진영에서 운동해온 분들이 기존의 타성을 반성해야 된다는 것은 충분히 동의합니다.

사 회:네, 대표질문자의 질문을 더 받고 플로어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관훈클럽의 쟁쟁하신 선배님들이 많이 나오셔서 질문을 많이 하셔야 하는데 시간제약이 있어 아쉽습니다만 멋있는 질문­답변이 이루어질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그럼 대표질문자들이 한 라운드 더 질문하겠습니다. 

유인경:북한 측의 발언이나 태도가 심상치 않아서 걱정이 많습니다. 이런 북한 측 태도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무대응이나 무시하는 정책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분은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이나 북한주민들을 껴안기만 하셨던 백낙청 선생님이 어리광을 키웠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번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마치셨는데 민중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문제 등 굉장히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 남북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 상임대표를 마치시면서 우리 국민이라든가 이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것을 듣고 싶습니다.

백낙청:지금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는 묘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주변인사들이 한편으로는 지난 정부에서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 진행에 대해 정당한 비판도 있었습니다만 그걸 완전히 부정하려는 이념적인 성향이 있었다고 보고요, 그것도 그거지만 또 하나는 너무 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거나 거론된 분들이 있는데 전문가가 아니었어요. 김하중 장관조차 통일문제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외교부 출신에 중국대사 했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수석을 지냈다는 정도죠. 이처럼 이념적으로 치우친 면과 너무 모르는 그런 양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정부에서 조금씩 알아차리면서 돌려놓으려는 노력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구호를 완전히 폐기는 안 했지만 격하시키면서 상생과 공영의 정책이라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이게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공적이라면 공적일 텐데….

작년 7월 11일 국회개원 연설에서 대통령이 미흡하지만 꽤 전향적인 연설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교묘하게 어떤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명박정권이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사실은 북에 대해서 도발적인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쪽에서 놀라울 정도로 오래 참았습니다. 뭘 기대하고 그렇게 참았는지 모르겠지만 참았다가 내부적으로 상생공영정책이 정리되고 얼마 되지 않아 북에서 총공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부 내의 화해협력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다시 힘을 잃은 가운데 국회개원 연설하는 날 금강산관광객 피살사건이 터졌지요. 그런 것을 보면 너무 경험이 없던 정부가 경험을 쌓으면서 조금씩 잘해 보려고 하는 기미도 한편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해야 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우리끼리나 이야기하든가 평범한 시민이 한다면 모르지만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것도 그렇고 일련의 사태를 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정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 점에 대해서 저는 확실한 판단을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북한 측 대응도 도움이 된 것은 없습니다. 그건 저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기는 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심상치 않게 기다리는 것이 전략이라고 가만히 있을 처지는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원칙적으로 우리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하겠다고 발표하면 쉽게 풀릴 거라고 말했는데, 물론 지금도 그것이 해법이긴 합니다만, 이제는 정부에서 그런 말을 하면 굴복하는 것처럼 되어서 우리 정부도 말하기 어려워져 있고 그런 공표를 조금이라도 어물어물하게 되면 북에서는 ‘그 말 못 믿겠다’고 해서 사태가 더 악화될 것 같은 염려도 있어서 아무래도 시간이 더 지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태가 더 악화되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깨닫게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그 전에 알 것은 알아서 미리 처리하는 것이 훌륭한 정치죠. 그리고 악화되기로 치면 지금도 상당히 악화되어 있는데 더 악화되어서 고비를 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한 가지 옛날과 다른 것은 미국이 부시정권 6년 동안 사실은 이명박정부 같은 정부가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노무현정부가 있어서 부시가 오히려 속을 썩었는데, 지금은 부시 마지막 2년하고 오바마정부는 이명박정부가 취하는 이런 태도가 별로 탐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미간에 이런 것을 절충하다 보면 변화의 계기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장에는 아무런 묘안이 없습니다.

김진국:최근 남북관계가 굉장히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한을 “민족의 머리 위에 핵전쟁의 재난을 도모하는 반조선 반통일 호전세력”이라고 욕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역도’ 등 여러 가지 아주 강경한 욕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렇게 욕을 하는 것은 이 정부 들어 남쪽에서 북을 자극한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최근 남북관계에 긴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에는 북한이 핵개발이라든지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거라든지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문제들은 이명박정부 들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고 북한이 남북 화해무드 속에서 감추어온 긴장을 이런 계기에 드러낸 것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북한의 태도와 가장 근본적인 남북긴장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백낙청:남북긴장이라는 것은 분단현실에서는 늘 있어온 것이고 그건 불가피한 거니까 근본적으로는 분단문제를 해소하는 길밖에 없는데,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물론 북이 핵개발한 것이 한반도 긴장의 수준을 높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평화운동이라든가 녹색운동하는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핵개발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이 내세우는 자위권의 논리, 즉 자기들이 위협받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안 할 수 없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미국 정보관련 책임자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나 역시 우리는 핵개발을 반대한다는 것을 밝히고 북에 대해서 비판했습니다.

북한이 2006년에 핵실험을 했지요. 그 후 2년 남짓 걸리면서 해결의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1, 2, 3단계에 걸친 해결방안에 합의했고 1단계는 완료되었고, 2단계로 들어가서 2단계가 상당히 진전돼서 연변 핵 냉각탑을 폭파하는, 일종의 쇼입니다만, 그런 것도 있었고 미국 측에서 적성국,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등의 진전이 있었는데 한반도에서 이 문제가 첨예해진 것은 이명박정부가 핵폐기를 남북관계 진전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 때문입니다. 지금은 상당히 애매해졌습니다. 지금은 모호해져서 어떤 때는 병행추진한다고 하다가 보수진영을 의식할 때는 자기들은 이것을 전제조건으로 거는 것처럼 변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 정부가 병행으로 돌아섰다고 봅니다. 그러나 어쨌든 북의 비핵화를 남북관계 진전의 전제조건으로 단다는 것은 미국도 안 하는 짓인데 우리가 그렇게 하니까 이 문제가 긴장고조의 원인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북의 대응이 또 어땠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우리는 다 잘하고 있는데 오로지 북이 아직 핵을 폐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전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유인경 선생님께서 하신 질문에 대해 너무 맥없이 답변해서 죄송한데 뚜렷한 대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한 발표에는 단기간은 아니지만 중장기간에 걸친 답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통일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집중비판해서 정책을 바꿔보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된다고 봅니다. 비판할 것을 하는 것은 찬성이고 저도 비판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고서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 분이지만 특히 이 문제는 바뀌지 않는 것이 실제로 국민 상당수가 북측이 다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지지도보다 이 대통령의 대북관계 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더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으로서는 그나마 지지도가 높은 분야가 이건데 왜 바꾸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자꾸 비판하다 보면 국민들이 볼 때 저 사람은 친북세력인가 해서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의 대북정책으로 인해서 발생한 문제들이 국내외 전반적인 거버넌스 문제의 일환이라는 것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해서 거버넌스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도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결정이라든가 여야의 정쟁에만 맡겨두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않나 봅니다.

사 회:그러면 플로어 쪽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여영무(회원):백낙청 명예교수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2가지인데요, 6자회담의 전원합의제를 칭찬하신 것 같은 뉘앙스를 주었는데 6자회담이 전원합의제이기 때문에 오래 질질 끌어서 오히려 북한이 민족공멸의 핵무기를 생산하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첫 번째 질문이고요, 또 하나는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계 대표가 참여하는 원로회의 구성을 제안하셨는데 제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느끼는 것이 김일성이 60년 전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 연석회의 이런 것을 제안했는데 그런 인상을 떠올립니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로 대통령을 선출했으면 그 대통령이 구성하는 정부가 어느 기간 동안은 책임지고 국정을 이끌어가도록 일단 맡겨주는 것이 책임정치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낙청:6자회담이 제대로 진전이 안 되는 가운데 북이 핵개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6자회담이 2005년 9월 소위 9․19공동성명을 내면서 한반도비핵화 원칙에 합의했고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에 대한 여러 가지 구상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 후에 소위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로 북에 대한 금융제재가 가해지고 그래서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 다음에 드디어 핵무기 실험까지 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이고 미국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었느냐 못 다루었느냐 하는 문제인데 적어도 미국 국민들의 판정은 ‘부시가 잘못 다루었다’ 또 부시 스스로도 자기가 ‘그때는 강경정책 쓴 것이 옳지 않았다’고 해서 2006년 11월 중간선거 이후 입장이 확 바뀌었지 않습니까. 이것은 6자회담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보고요, 그래도 그나마 6자회담이 있고 9·19공동성명이 있었기 때문에 북이 핵실험을 한 이후에도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틀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마 우리 정부나 지금의 미국정부나 6개국의 어느 정부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원로회의와 김일성 주석이 주장한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대해서 저는 잘 모릅니다. 특별히 연구해본 적은 없는데 첫째 우리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전제로 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이고, 또 제가 거듭 강조했습니다만, 국난극복을 위해서 국민통합이 절실한데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냥 여러 사람 모아놓고 일종의 전시용으로 연석회의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나 생각되고요, 또 하나는 참여성원이 6명으로 제한되기에는 어렵습니다. 정당 수만 해도 원내정당만 해도 우리나라에 5개가 있지요. 제가 6자회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많지 않은 사람이 모여서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지, 거기서 투표를 해서 결정하거나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명박정부가 당선되어 정부가 있는데 그것을 제쳐놓고 하겠다는 것은 잘못 아닌가 하는 지적을 하셨는데 우리가 이것을 이명박정부를 대체하는 권력기관으로 만들자고 하면 그것은 초헌법적인 발상이죠. 그러나 제가 거듭 강조했습니다만 합법적인 정부가 존재하는 마당에 이런 모임이 어떤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어디까지나 회동이고 회담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좋은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때 존중되어 힘을 발휘하는 것이고, 힘을 발휘하는 것만큼 우리 정부의 국정운영에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정부의 존재나 권능을 부인하는 발상은 아닙니다. 다만 정부가 좀 잘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없지요. 저는 그런 점에서 지금은 비상시국이고 이 정부의 주도로는 이 국난을 돌파할 수 없다는 저 나름의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했는데 정부에 대해서 저보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시고 큰 기대를 갖고 계신다면 그 식으로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무슨 주장을 한다고 해서 힘을 받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때 실천력이 생기는 것인데,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이런 구상이나 아이디어가 더 많이 알려지고 활발한 토론대상이 되어서 국민이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서 이런 방안을 지지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 회:예, 플로어에서 추가질문 받겠습니다.

현소환(회원):우선 선생님 개인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에 대해 2가지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용모가 말씀해주듯 역시 부잣집에서 자라셨고 미국 가서 일찍이 최고학부까지 나오셨는데 어느 시기에 어떤 계기로, ‘좌파사상’이라고 하면 선생님께서 듣기 싫을지 모르니까 ‘진보적인’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 사적인 질문을 드리고, 그 다음에 많은 지식인들의 관점에서는 지금 듣기 좋아서 ‘진보개혁세력’이지 사실 ‘친북반미좌파’ 또는 줄여서 ‘친북좌파’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꾸 ‘진보개혁’이라고 이야기하시니까 듣기는 좋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 그간의 행동과 운동을 해온 것과 결부시켜서 본다면 저희 눈에는 구분이 안 가는데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며 선생님은 어느 쪽에 서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낙청:우리 사회를 일도양단해서 한쪽은 좌파, 한쪽은 우파라고 말하면 저는 좌파입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 멀쩡한 대한민국을 왜 일도양단하겠습니까? 그것보다는 좌파 중에서도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서 우리가 같이하기 곤란한 분과는 같이하지 않고요, 우파 중에서도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서 곤란한 분은 거리를 두고 나머지가 합쳐서 폭넓은 중도세력을 만들자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저는 그걸 변혁적 중도주의라고 표현하는데 변혁이라는 것이 정치판에서는 굉장히 불온하게 들리고 별 매력이 없는 말인데요, 제가 말하는 변혁은 남한 사회에서의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가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지금의 북한은 물론이고 현재의 남한보다도 더 나은 사회를 한반도에 건설하자는 것이 최대의 변혁과제입니다. 그래서 그 변혁을 향한, 그러한 변혁에 동의하는 폭넓은 중도세력을 규합하자는 것이 저의 입장이기 때문에 저도 6·25전쟁 통에 여러 가지를 많이 겪었고 가정적으로도 겪은 것이 많아서 그렇게 순탄하게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살아온 과정에 큰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시기에 갑자기 돌변해서 부잣집 아들이 공산주의 활동에 나섰다거나 이런 계기는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도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라든가 ‘진보개혁세력으로 알려진’ 이런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왜냐하면 소위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 간에도 ‘진보세력, 개혁세력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뭐 여러 가지 논란이 많기 때문에 그냥 뭉뚱그려서 편의상 그렇게 부른 것인데 ‘이게 친북좌파가 아니냐’ 또는 ‘대체로 친북좌파가 아니냐’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아주 흔한 오해인데요, 저는 그것은 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친북좌파세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친북좌파세력도 있고 반북좌파세력도 있습니다. 제가 어느 특정정당을 반북좌파정당이라고 거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보정당 중에서도 민주노동당을 친북좌파정당으로 몰아세우면서 친북이 아닌 진정한 좌파는 자기들이라고 주장하는 정당이 있습니다. 친북좌파가 있고 반북좌파가 있고 친북우파도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이 좌파겠습니까? 친북우파죠.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 지면에서 자기는 ‘친북이고 친미’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친북우파라고 해야 하나요, 친북중도파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친북친미 비좌파도 있고, 제 경우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변혁적 중도주의자입니다.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우리 한반도 전체에 참 멋진 일류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 저의 꿈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북이 모델이 된다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제가 친북일 수 없지요. 그러나 북한동포들에게 되도록 잘해 주고 싶고 또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북과는 잘 지내는 것이 여러 모로 이롭다는 것을 가지고 친북이라고 하면 그 점에서는 친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홍석현 회장 비슷한 친북파가 되겠지요.

사 회:시간이 다 됐는데 대표질문자 보충질문 있으면 간단히 하시죠. 마지막으로 김진국 국장께서 해주시죠.  

김진국:아까 거버넌스 시스템 만드는 것 가지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난번 창비에 쓰신 글도 참고해 보면 “보수진영이 분열할 것이다. 그 분열된 보수진영도 같이 가야 된다”고 했는데 방금 선생님 말씀하신 것은 그것과 조금 다르게 ‘한나라당이 온다면 환영한다’고 하니까 약간 모양이 달라진 느낌은 있는데, 분열된 보수세력의 일부와 같이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이 이게 ‘미래의 비전을 그 보수세력과 같이 만들어가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용하기 위해서 끌어들이겠다는 것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 잘 이해되지 않는데 오늘 말씀하고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그 부분을 조금만 더 설명해 주십시오. 

백낙청:제가 창비주간논평에서 보수, 거기도 역시 이른바 ‘보수진영’입니다. ‘분열’이라는 표현은 제가 안 썼고요. 분열이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남의 분열을 조장해서 이용하려는 마키아벨리적 발상이 되는 것입니다. ‘분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분화는 어떤 분화냐 하면 저는 지금 보수세력으로 자칭하는 사람 중에서 보수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기 목전의 이익을 챙기고 가는 것이지 보수라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보수라면 대한민국이 지난 60년 동안 이룩한 정당한 성취를 ‘간직하고(保)’ ‘지키겠다(守)’는 보수가 진짜 보수인데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든 말든 아까 말씀드렸지만 자기들이 예찬하는 박정희 치적까지 허물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나가는 이게 무슨 보수냐. 그래서 지금 이른바 보수세력 안에서도 그런 인식을 가진 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보수진영에 어떤 분화가 일어나리라는 생각입니다.

한나라당 문제는 한나라당은 자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합리적 보수의 노선을 택할지, 아니면 자기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세력의 앞잡이로 나갈지 그것은 당에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선택이 변화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합리적인 보수 노선을 택하면서 이 비상시국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겠다, 심지어는 민주당만 붙들고 대화해서는 풀리지 않겠다, 뭔가 시민사회와도 만나고 자유선진당과도 만나고 민주노동당과도 만나서 폭넓게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렇게 할 때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는 의미니까 아무런 모순은 없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 회:예정시간을 다소 넘겼지만 플로어에 계신 분들에게 기회를 안 드린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 분만 질문 받겠습니다.

이미숙(문화일보 정치부 차장):선생님은 그동안 한반도 분단문제에 대해 정치학자가 아님에도 많은 글을 써오셨고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이라는 책도 쓰셨는데 현재 한반도 상황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다고 보는지 추상적이나마 단계를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아까 질문이 나왔는데 듣고 싶은 답변을 못 들었습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물러나게 된 정치적 배경이나 결단이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백낙청:두 번째 질문이 간단하니까 먼저 말씀드리죠. 제가 6·15 남측대표 2년짜리 임기를 두 번 했습니다. 그러니까 할 만큼 했고 이제는 그만두고 다른 분이 하시는 것이 저 개인이나 조직을 위해서도 좋다고 판단해서 연임을 사양했습니다. 제가 3선을 하겠다면 선출되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통일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할 때 저는 거기에 토를 답니다. ‘한반도식 통일’이라는 독특한 통일과정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것을 저는 또 ‘시민참여형 통일’이라고 말합니다. 시민이 국가를 제쳐놓고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지난날의 다른 통일 사례, 가령 베트남이나 독일이나 심지어 예멘은 비슷한 통일로 시작했다가 북예멘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졌는데 그런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가 무력통일로 군인이 나가서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을 하는 시민들이 그 일상생활을 통해서 자기가 속한 사회의 개혁에도 이바지하면서 그것이 통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민참여형 통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반도에서는 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 아니면 다른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통일개념을 좀 바꿔서 보면 그 과정은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목의 책을 낸 것은 2006년이었는데 그 후에 특히 이명박 대통령 들어오고 나서 요즘은 어떠냐? 저는 요즘도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 덕분에 오히려 시민들은 제대로 참여하는 공부도 하고 훈련도 하고 준비도 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고,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한다고 해서 한반도가 점차적으로 재통합되는 과정을 돌이킬 수는 없기 때문에 거기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그 과정을 더 알차게 또 민주적으로 진전시키는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 회:장시간 감사합니다. 시간이 있었으면 더 심도 있는 토론을 할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짧아서 죄송스럽고요, 오늘 백낙청 선생님이 말씀하신 여러 가지가 우리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데 하나의 제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은 어떻게 보면 조금 대척점에 서 계신 이문열 작가님을 모셔서 또 다른 사회통합의 논리를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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