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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대의민주정과 불복(不服)의 구조화

초청자 :
이문열 작가
개최일 :
2009-02-19
조회수 :
3,517
첨부파일

이문열 작가 초청 관훈포럼

 

일시:2009년 2월 19일 낮 12시

장소: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

사회 : 이목희 관훈클럽 총무(서울신문 논설위원)

토론 : 김민배 조선일보 부국장

          박찬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이목희(관훈클럽 총무, 서울신문 논설위원, 사회):안녕하십니까? 어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님에 이어 오늘은 보수시각을 대표하는 저명한 작가이자 지성인인 이문열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님을 모시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순서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30분 정도 하시고 이문열 선생님의 주제강연을 40분 들은 후 대표질문자 및 플로어 질문을 받는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맛있게 식사하시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식사)

오늘 강연해 주실 이문열 선생님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지성인입니다. 선생님 작품 60여 종이 한국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15개 언어로 외국에서 출간되었거나 출간예정인 사실이 선생님의 성과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문학세계를 넘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으로 항상 각계의 주목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미리 배포되어 있는 원고도 한국의 현실을 자신의 시각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문열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어제 백낙청 선생님의 강연내용에 대해 약간 답하는 형식도 되어 저희로서는 더욱더 고맙게 생각합니다.

경력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48년 출생하셨고 서울대 사범대를 중퇴하시고 대구매일신문 기자를 하셨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신 후 세종대 국문과 교수를 하셨고 잠깐 한나라당에 가셔서 공천심사위원도 하셨습니다. 부악문원 대표를 맡고 계시고 얼마 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를 맡으셨습니다.

오늘 대표질문자를 소개해 드리면 오른쪽이 김민배 조선일보 부국장이고 왼쪽은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입니다.

오늘 강연도 앉아서 말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문열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박수)

이문열(작가,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방금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주제는 사실 어제 백낙청 선생님의 주제와 특별한 사전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한테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하다 보니까 같은 주제에 대해서 다른 관점, 다른 해석을 말하게 된 것 같습니다. 국제문제와 북한문제가 빠져 있는데 제 생각에는 지금 소위 경제위기로 나타나는 국제문제는 옛말에 “대동지환은 환이 아니다” 하는 것처럼 전 세계가 다 같이 당하는 환이라 우리만의 환이 아니라고 보고 당장 제가 분석하고 논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야기 주제에서 빼겠습니다. 그 다음에 북한문제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시각 자체가 워낙 주관적이 되어 버리고 감정적이 되어서 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국내정치의 가장 현안이 될 수 있는 불복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주제를 준비하는 과정과 관련해서 여러 선배님들에게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 기자도 한 적이 있고 오랫동안 작가를 했는데 기자나 작가나 다 같은 병통 중 하나가 마감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토론이 있다는 것은 한 달 전부터 알았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받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결국은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원고를 준비하게 됐고, 이 원고의 마지막 부분은 어제 늦게야 마무리했습니다. 그래서 뒷부분은 급작스럽고 엉성한 곳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지 못한 것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보태 가면서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일,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 그런 일들을 곰곰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뜻밖에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현재의 우리 헌법체제인 대의민주주의 제도라든가 다수결이라든가 대의제도 등은 우리가 더 논의할 필요 없이 다 안다고 간주하고 지나가는 문제인데 그러나 가끔씩 돌이켜보면 굉장히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다수결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다수결을 자명한 진리처럼 또 의사결정의 가장 완전하고 효율적인 원리처럼 생각하는데 실제 곰곰이 생각하면 그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 뜻밖에도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결국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서로 합의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는 치고받고 해서 힘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안마다 그렇게 치고 박고 해보니까 너무 소모가 심해요. 이 소모를 피하는 방법이 다수결의 기본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힘’이라는 것이 보통 머릿수하고 비례해서 집단간 물리적 투쟁의 승패는 대개 구성원의 머릿수에 좌우되었습니다. 많은 머릿수가 지지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치고받고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고통받는 소모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원리는 그렇게 합리적이고 완전한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 그 원리가 통할 수 있는 거지, 우리 능력이 사실상 현실적으로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는 7대3의 경우도, 다시 말해서 일곱 사람과 세 사람이 싸워도 세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수결의 원칙을 선택할 때는 그것을 무시하고 절대평등을 전제로 삼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똑같다 그러니까 머릿수를 헤아려서 51대49가 되더라도 51이 이긴 것으로 치자, 그것을 선택하고 또 불합리하면서도 어떤 유효함을 믿어온 사람들의 어떤 지혜가 상당히 감동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대의제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의제를 이야기할 때 그 앞에 있는 직접민주주의는 대개 발원지를 아테네로 삼습니다. 그래서 아테네를 예를 들 수밖에 없는데요,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직접민주정치를 했다는 아테네의 경우 실제로 오늘날 말하는 모든 성원이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도시민이 20만이면 그중 한 10~15% 되는 3만 내외의 사람들 정도가 자유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투표권이 있었고, 실제로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는 다시 그중 5분의 1… 그래서 어찌 보면 거주민의 3% 또 투표권이 있는 사람의 10% 정도가 참석하여 그 양에 있어서도 굉장히 불안한 의사결정이었고, 그 다음에 더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것이 그 양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의사결정에 상시적으로 남아서 참여하는 사람의 질에 대해서도 진작부터 의심받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로 생산과 관계있는데 농장과 생산도구를 가진 모든 사람이 물론 위임하고 온다면 되겠지만 하루 종일 광장에 나와 앉아서 정치적 결정을 하고 있으면 그 사회는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은 생산현장에 있게 되고, 오히려 도회지 광장에 남아서 매회 정책결정마다 참여하게 되는 일종의 상시성을 띠는 참여인구의 질이 상당히 의심스러웠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생산수단도 없고 재산도 없는, 어떤 면에서 능력이 상당히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수결이 불완전한 줄 알면서도 의사결정의 원리로 삼아 대의제도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일 때문에, 특히 생산현장에 가 있느라고 모든 의사결정에 참석하지 못할 때도 나를 대신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을 몇 년의 임기로 결정하고 그 사람한테 투표권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보면 인간의 기특함 혹은 신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는데 실제로 모든 대의정치의 대의권을 위임받은 사람이 언제나 위임자한테 충실하고 그들의 뜻을 받드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배신당하기도 하고 이용당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민주정의 폐해나 불합리보다는 이쪽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제는 어떤 세계의 대세가 될 때마다 대표적인 제도로 지금까지 존속되어 왔습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중학교 사회나 역사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느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지금 우리 사회현상을 보면 대의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고 봅니다. 그 도전은 불복의 형태 또 그 불복도 아주 구조화하고 상시적인 것으로 고착되어 가는 경향이 있어서 그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주 자조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은 이것이 우리의 진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우리의 독립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군들의 군장(軍裝)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기본 정체(政體)도 미군들에게서 지정받았다고 말합니다. 아주 자조적인 것이 되겠습니다만 이것을 자주적으로 바꿔서 우리 자존심에 맞게 한다고 해도 아마 이 정도로밖에 바꾸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승리한 미군의 후원 아래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을 만든 우리가 그 대한민국을 만들게 해준 어떤 환경하에서 선택한 것이 대의민주제도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북한에 있는 공산주의 정권에 대척점인 의미도 가지게 되지요. 우리 헌법은 대의민주제를 근간으로 형성되었는데 60년을 지나오면서 사실 여러 번 손질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훼손도 되고 모욕받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한 번도 대의민주제도의 기본 자체가 부인된 적은 없었습니다. 유신시절 일부 이런 경우가 있지만 그때도 아마 기본적인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부인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근래 느끼는 것은 우리의 대의민주정이 대단한 피로에 빠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존립 자체가 위험할 정도로 도전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도전은 2가지라고 보이는데 하나는 소위 다수결의 완전성에 대한 의심, 또 하나는 간접대의제도의 효율성에 대한 의심입니다. 특히 대의제도에 대한 의심은 다른 말로 바꾸면 직접적인 참여욕구로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첫출발부터 이런 직접적인 참여욕구에 노출되었습니다. 특히 시위문화를 통해서 그런데 아마도 초기 남반부를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한 미국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군정하임에도 불구하고 해방 전후에 시위문화라는 것이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작동하였습니다.

아마 남한정권들의 여러 불합리성 때문에 그렇습니다만 첫 번째 공화국인 이승만 대통령의 공화국도 결국 부패나 독재 때문에 무너졌는데 그것을 무너지게 한 수단이 직접적인 위력시위, 소위 4․19데모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짧게 존속했지만 제2공화국 역시 그들의 무능으로 그것을 무너뜨린 것은 군사쿠데타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저희가 어렸을 때지만 매일같이 벌어졌던 시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물리적인 양에서는 시위가 오히려 자제되었는지 모르지만 질에서는 오히려 시위문화가 더 활성화된 계기가 3, 5공화국에서 나오게 됩니다. 군사정부로 출발한 3공화국의 권력체제가 거기에 저항하는 시위들에게 반사이익을 주어서 그 시위가 곧 정의가 되고 그것이 민주화가 되고 그것이 어떤 모든 현대적 가치를 향한 헌신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왔습니다. 5공화국에 오면서부터는 예전에는 시위를 한다는 것은 우리 중 일부가 특별한 선택을 해서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5공화국 말기쯤 되면 그 시대 특수한 세대에게는 시위라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 속에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다반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사실은 우리 헌법체계가 이런 직접참여 욕구를 드러내는 시위문화에 취약해진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때맞추어 나타난 인터넷광장도 이런 직접참여 욕구를 키운 것 같습니다. 그 전에 우리가 직접적 민주주의에서 대의제도로 올 때 사실은 기술적으로 한자리에 모을 광장도 없고 한자리 광장에 모은다 하더라도 그 수많은 대중을 정연하게 조직하고 통제할 능력도 없어서 대의제도가 된 부분도 있는데, 오늘날은 기술적으로 우리 4천만 전부를 인터넷광장에 끌어모으고 거기에서 의견수립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힘을 얻은 것이겠지만 인터넷광장이 힘을 얻으면서 직접적인 참여 욕구들이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검토해볼 만한 어떤 실질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내용을 읽으면서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일찍이 우리 경험에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착시를 활용한 여론조작과 다수의 위장이란 말을 제가 쓰고 있는데요, 사실 착시와 오해라는 말을 했는데 인터넷세계의 진정성에 대해서 믿는 사람은 아마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 분명히 착시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러냐 하면 인터넷광장에서의 다수라는 것 혹은 인터넷광장에서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실제 우리 현실 속에서의 다수하고는 질을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기서 제가 좀 험한 말을 쓴 것이 있는데 집단지성이라는 허구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때는 우리 시대에 이러한 실체가 생겨났다고 생각하고 만들어졌겠지만 적어도 그 말이 만들어진 지난해 봄철의 그 사태에서의 집단지성은 저는 허구로 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직접참여 욕구를 고조시켜서 최근에는 어떤 인터넷 댓글을 보니까 이제 대의민주제는 용도폐기해야 될 개념이다, 이런 시대에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이 체제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섬뜩한 것이 대의제 다수결에 대한 불복입니다. 대의제의 다수결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총선이나 대선 같은 것이 되는데 우리 의사를 모든 경우에 다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대의할 수 있는 사람을 총선을 통해서 뽑고 그들에게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위임이 이루어지고 한 달도 안 되어서 불복으로 나타날 때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대의제의 다수결에 의해서 너희한테 어떤 결정권을 위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 멋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네가 부당한 일을 할 때는 우리는 얼마든지 불복‧저항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시간적으로나 혹은 본질적인 경합관계가 벌어질 때 그쪽을 우선하는 것, 다시 말해서 어떤 방어권이나 저항권을 우선시키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아마 불복의 유혹도 처음에는 패배한 소수들의 약속위반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대개 패배한 소수들은 인간의 평등을 패배한 순간부터 부인하기 시작합니다. ‘그래, 우리가 지기는 했지만 이것은 불완전해 못 믿겠어. 우리는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서 물론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 몇 명 더 많지만 저 정도는 실제로 우리가 이길 수 있어.’ 이런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대의제의 다수결은 이미 불복의 대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밖에 국민소환제도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대의민주주의제에 대한 보완책으로 허용된 일반 권리들, 즉 집회결사의 자유나 시위의 자유인데 이런 것도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오해하는 경우나, 오해까지는 모르겠지만 확대해석하는 경우 많은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만약 그것을 고집하게 된다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말하자면 아까 말한 대로 불복을 저지르거나 부정하거나 할 때 저항하는 수단으로 시위나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하면 궁극적으로 무엇이 불복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무엇이 불복이냐, 무엇이 부당하냐를 결정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걸 또 누가 결정해야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따르는데, 여기서 만약 불법과 부정을 결정하는 것이 어떤 당파적인 이익이나 혹은 당파적인 편견에 의해 결정되고 또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도 그런 당파적인 주관성에 의지하게 된다면 그때의 불복은 혹은 시위나 결사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얼마 전 위임한 대의제 다수결에 대한 정면적인 부인이 됩니다. 이것이 충돌할 때 어떻게 조화시켜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겨날 겁니다. 지금은 내가 보니까 많은 젊은이들은 오히려 ‘그럴 때는 조금 전에 한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본다. 지난 12월은 너희들을 믿고 맡겼지만 석 달 지난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믿는 것 같은데 그것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의제에 대해서 불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있다면 저항권 같은 것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제로는 대의제 민주정치에 대한 불복의 근거로 삼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모든 사안에 대해서 저항권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저항권 차원에서 우리는 거부할 수 있고 불복할 수 있다고 나오면 정말로 이 저항권이 상정한 절박한 사태가 왔을 때는 이 저항권이 이미 낡고 닳아서 아무것도 보호할 수 없는 넝마조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고 인터넷광장의 착시현상 중 소수를 다수로 보이게 하는 것, 그리고 익명성 뒤에 숨은 조작 이런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것들이 이러한 불복의 구조화에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다 아는 지난 봄 소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의 경우입니다. 그때 저는 사실 여기에 있지 않았습니다만 TV나 인터넷으로 보니까 상당한 다수가 거기에 집결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것은 그것이 그 사안에 대한 어떤 위력시위를 하기 위해서 모인 다수라기보다는 석 달 전 이루어진 대선 불복세력이 그 사안을 구실로 집결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다수는 원래 사안하고는 사실 무관한 다수, 어떤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불복의 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의제의 다수결에 대한 불복심리가 발전해 가는 과정은 원고에 있습니다. 특히 한 번 더 더듬어볼 일이 있다면 제가 불복의 구조화를 이야기하는데 얼른 보아서는 지금의 특별한 당파, 특별한 세력만 가지고 나무라는 듯한 인상을 줄까 봐 덧붙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불복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금 이 정권에 와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축적되어 왔는데 특히 노무현정권 때 사실은 구조화의 어떤 원형을 벌써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여야가 바뀌었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사학법이라고 생각되는데 입법과정에서 시청 앞 광장에서 그것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보니까 한나라당 대표들이 대거 국회의원들을 데리고 시위대 앞에 서 있는 것이 TV에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국회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시위대 앞에 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들에게 부여받은 대의권을 시위대에 얹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것은 좀 문제 있다고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 정권이 되면서 아주 구조화되고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구조화는 제가 여기서 그런 말을 썼습니다만 어떤 불복의 카르텔, 말하자면 지난 10년의 어떤 신기득권층이나 지난 10년이 만들어낸 어떤 집단 혹은 세력간의 카르텔 위에 형성되고 또 그 제일 상층부에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얹혀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제가 불복의 구조화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랜 불복의 경력을 가진 ‘그때 그 사람들’하고 지난 10년 동안 신기득권층으로서 단맛에 맛들인 그들과 지난 정권이 정성 들여 지원하고 키운 일부 시민단체들의 카르텔인데 그 상층부에 의회를 뛰쳐나온 야당의원들이 앞장서면서 이 불복의 구조화를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특히 불복의 카르텔은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고 격려하고 지켜주는데 지난 5월의 소고기파동 때 재미있는 모양이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지난 시절의 단맛을 지키려고 결사항전을 외친 일부 방송은 겉보기에 낯간지러울 만큼 촛불을 격려하고 부추기고, 촛불은 촛불대로 그 방송을 지켜주려고 시청 앞 광장과 여의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미국에서 TV로 보면서 암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핏 보면 어떤 사안에 대한 반대이고 불복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본적으로는 우리나라 헌법체계의 근간인 대의민주제에 대한 불복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대선을 통해 뽑은 대통령의 통치권이 100일도 안 돼 퇴진 요구에 부딪히고 그 공약들도 이제 거의 잿더미가 된 것 같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내건 공약에 500만이라는 더 많은 국민이 투표했음에도 공약의 많은 중요한 것들은 잿더미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아주 희극이 벌어지고 있던데, 4대강 하는 것이 대운하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니까 총리라는 사람이 그거 부정하느라고 진땀을 빼는 한심한 모양이었는데 언제 그 공약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공약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면 그 공약 때문에 투표한 국민에게 사죄하고 해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 논의를 시작한 것은 사실 이 일에 얽힌 정치적인 시비에 관여하고 싶어서는 아닙니다. 그것 참 싫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 불복의 구조화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또 그른 것이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리는지 판단하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떠맡을 생각은 더욱 없습니다. 다만 우리 헌법체계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정체(政體)에 정면으로 불복하는 구조, 이것을 같이 생각해 보자는 것인데 사실 이렇게 많은 대의민주주의 체제들이 어떤 불복으로 무너질 때 그 다음에 오는 역사적 결말이 굉장히 비극적이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듣기로는 독일 국가사회주의, 말하자면 나치스 같은 것도 지친 바이마르공화국의 대의민주제가 산출한 기형아로 해석한 사람이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도 불복에 허물어진 특히 젊은 청년장교들의 불복에 허물어진 것이겠지만 대정(大正)데모크라시라는 독특한 형태의 민주주의의 불행한 유산이라는 말이 있고, 중남미의 포퓰리즘도 어떤 사람은 지친 대의민주제에 대한 불복이 구조화한 형태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 때문에 이런 불복을 더 이상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표면으로 끌어올려서 어떻게 문제를 해소할까 이런 것을 강구해 보자고 제안했는데 사실 이 다음부터가 마감을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 저녁 늦게 겨우 끼워 맞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존립까지 위협하고 불복의 구조화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먼저 떠올려볼 수 있는 것은 국민통합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보다 상위의 공동선(公同善)을 개발하여 불복을 조장해온 자질구레한 대의를 압도할 수 있다면 분열을 봉합하고 불복이 구조화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진행된 분열의 골이 너무 깊고, 그 원인이 된 상충하는 대의들을 압도할 공동선도 쉽게 개발될 성싶지 않아, 이 방안은 자칫 공허한 구호로 그치고 말 공산이 커 보입니다.

그 다음은 불복세력의 자제입니다. 자신들에게도 집권기회가 남아 있고, 그때 다시 반신불수의 권력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 정치문화에서 불복의 구조화하는 막아야 한다는 각성이 있다면 그들의 자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각성으로 한순간에 해소하기에는 불복의 구조화가 너무 견고하게 진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떤 이는 불복을 넘어 승리의 확신까지 품고 이 정권에 전면적인 투항을 권고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불복의 구조화를 해소하는 마지막 방안은 정권의 결단입니다. 적극적으로는, 확고한 자기방어 의지로 대의민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체계를 수호할 효율적인 수단과 방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의민주제가 이미 용도폐기된 정체 원리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헌법개정으로 자폭하고 새로운 헌법체계에 따라 형성된 정권에 모든 것을 이양하는 것도 해볼 만한 결단이 될 것입니다. 해놓고 보아도 하나같이 가망 없어 암울해지는 제안들입니다. 이런 제안들을 여러분이 웃으면서 검토하시고 바로 질의­응답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사 회:정말 아시는 것도 많고 하실 말씀도 많은데 시간관계상 저희가 시간을 맞춰 달라고 부탁드린 것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에 대해 대표질문자인 박찬수 논설위원님이 먼저 질문하겠습니다.

박찬수(한겨레 논설위원):작가님이 말씀하신 대의민주제의 위기라는 지적에 대해서 저도 공감하고요, 대의민주주의제도 위기의 원인을 대중의 직접참여의 유혹, 불복의 유혹, 불복의 제도화, 구조화에서 찾으셨는데요, 그보다는 오히려 대의제의 핵심인 의회가 시민으로부터 유리되어 대의기능을 상실한 것이 더 큰 요인이 아니냐. 지난해 발생한 촛불시위에서 야당이 앞줄에 서고 상층부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현장에서 야당은 무시되었거든요. 시민들이 연설할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이 왕왕 보였는데 결국 이처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가진 집단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정치통로가 막히다 보니까 직접 거리로 나와 촛불시위로 형상화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대의제를 살리려면 의회정치체제를 지금처럼 당론이라든가 청와대 뜻에 얽매인 것에서 벗어나서 훨씬 국민에게 민감하고 국민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닌가 보고 국민소환제 도입도 그런 한 방안일 수 있겠는데요,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문열:제가 결론부분에 거칠게 말해 두었습니다만 우리 법체계를 바꾸고 제도를 바꾸어서 그런 직접참여와 불복을 합법화하는 구조를 만들어서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전혀 반대가 없습니다. 다만 구조는 이대로 두고 불복을 어떤 더 새로운 구조로 만들어서 우리 헌법체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밖에 나가 있어서,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TV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현장감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어 약간 자신 없는 부분이긴 한데 저는 지난해 5월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상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안이면 모일 거라고 예측되는, 아까 ‘그때 그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그 사람들하고 아까 말한 인터넷광장에 착시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의 일부가 모인 것으로 생각되어 그 다양성에 대해서 사실 수긍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혹시 내가 현장에 없어서 그 다양성을 실감하지 못했는지 그것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반성해 보겠습니다.

김민배(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선생님은 지난해 촛불시위를 이끈 세력에 대해 권력을 내놓은 홍위병들의 저항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소고기수입을 반대하는 다수가 아니라 대선 불복세력이 그 사안을 계기로 한곳에 모여서 다수를 조작한 것이라고 다시 지적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출발점이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이러한 견해에 대해 국민 다수가 동의하리라고 확신하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이문열:조금 전 말한 대로 내가 ‘그때 그 사람들’이라고 싸잡아서 말한, 그러니까 어떤 다양성보다는 반복적인 패턴, 언제나 그런 종류의 사안이 있으면 늘 TV 앞에 비치는 그 사람들이 전부 다 나와 있고 마지막에 대중이 뒤로 물러나면서 무슨 종교계 등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역시 또 그때 그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다양성이나 혹은 그 사안에 대한 국민적 다수를 확인할 수 없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김민배:원고에 나와 있는 내용 중에 추가로 질문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불복의 구조화를 정권이 헌법개정으로 자폭하고 새 헌법체계에 따라 형성된 정권에 모든 것을 이양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상당히 도발적인 문제제기인데 이때 국민 다수가 동의할 새 헌법체계의 근간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고요, 또 한 가지는 국회 내에서 불복의 해머와 전기톱을 종식시키기 위해 국회해산제도를 부활시킨다면 국민이 동의할 것이라고 보는지 2가지를 같이 묻고 싶습니다.

이문열:제일 끝에 덧붙인 저의 제안 같은데요, 이것은 지금 정권의 우유부단이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에 그것을 빈정대는 의미도 사실 있습니다. 마치 대의민주제가 이제 용도폐기됐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 같은, 그래서 어떤 사안이든지 조금 꺼냈다가 사람들이 와서 ‘와!’ 떠들면 쑥 들어가는 그 사항을 보고 제가 빈정거리는 의미로 덧붙였는데 그러나 분명히 한 방법은 될 겁니다. 어차피 이것을 통제할 수 없고 이 불복의 구조화를 허물 수 없다면 정권이 자폭하는 쪽이 유일한 길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 다음에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헌법체제는 다분히 빈정거림이 섞인 것인데 지금 다수를 위장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주장대로 만들어진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될 수도 있겠는데 말하자면 인터넷에서 형성된 다수가 진정한 다수이고 그래서 일부는 그들의 견해대로 이루어지고 또 일부는 카르텔을 형성한 불복구조, 이들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고 그런 헌법체계가 되겠는데 또 그래야 자폭이라는 말이 안 맞습니까? 국민소환제도로 보완하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 회:국회해산건도 물어보셨는데요….

이문열:국회해산, 국민소환제는 사실 이 제도의 약점을 보완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이미 자폭을 말한 상태에서는 이것을 보완해서 어떻게 유지한다는 개념과 같이 갈 수가 없겠습니다.

박찬수:헌법개정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셔서 그게 굉장히 민감한 사안일 텐데 하나 더 여쭤보겠습니다. 대의제의 위기와 상관없이 현실정치권에서는 김형오 국회의장 같은 많은 중진의원이 현행 대통령단임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헌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현실적인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여야 가리지 않고 결국 이명박정부가 공약했듯이 개헌을 하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명박정부의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현실적으로 있는데요, 이런 의견들이 오늘 말씀하신 것과 어느 정도는 맥이 통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이문열:제 논지하고 직접적으로 맥이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마 대통령 임기에 대한 부분은 고려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논의에 대한 연장으로서는 아닙니다.

김민배:선생님은 오늘날 보편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등장한 인터넷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을 부추기고 소수를 다수로 보이게 하고 소수의 꾼들이 익명성에 숨어서 다수인 것처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문열:저는 이 사태 자체가 우리 경험에 없던 사태이기 때문에 대안보다는 예측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우리 경험에 없는 광장이기는 하지만 지난 시대 우리 경험에 있었던 광장들이 정화되었던 그 과정을 통해서 이것도 정화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우리가 그걸 재편하고 통제할 수단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별로 아이디어가 없는 셈입니다. 다만 얼마 전 인터넷실명제인가 해서 그것 가지고 양쪽이 논쟁하는데 이런 논쟁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새법을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옛날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으로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논의가 있는 것을 봤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반박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그것이 제정될 때의 상황과 정신이 있는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아마 그때 공공성이라는 것은 세 사람 이상 앞이면 공공성을 가지는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주 좁은 범위의 공공성, 말하자면 세 사람이 있는 곳에서만 이야기해도 이건 공공연히 무엇을 한 것이 되는 그런 개념에서 제정된 법을 가지고 지금은 몇 자 치면 몇백만 명이 한꺼번에 보게 되고 몇백만 명에게 어떤 인격 등을 훼손하게 되는 이 시대를 규제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이 시대상황에 맞게 그것이 실제로 영향을 주고 피해를 주는 범위에 맞게 새로 제정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박찬수:작가님께서는 불복의 구조화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불복세력의 자제를 말씀하셨는데 집권 기회는 야당에게 열려 있으니 역지사지하자는 말씀에 대해서는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느냐가 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작가님은 이 불복이 구조화된 것은 참여정부에서 단초가 시작되었고 현 정부 들어 견고하게 구조화되었다고 보셨는데 사실 반대쪽에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불복은 김대중정부 때 시작되어 참여정부에서 오히려 구조화되었고, 그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사건이 2004년 대통령 탄핵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언제 불복의 구조화가 시작되었느냐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지만 어쨌든 이것을 끊어야 되는데 끊기 위해서는 힘을 가진 쪽, 정권의 다수당에서 먼저 양보하고 끊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느냐. 가령 7개의 사안에서 소수의 동의와 설득을 얻어내려면 3개 정도는 먼저 양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 그게 현실적으로 고리를 끊는 가능한 방법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문열:불복의 구조화에 대해서 특히 지난번 대통령 탄핵 같은 경우는 저는 불복의 구조화로 보지 않고 오히려 대의민주제도에 충실한 합법적인 결정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국회 탄핵권이라는 것은 대의민주제도 아래서 인정하는 권리였기 때문에 탄핵을 불복의 구조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그 고리를 누가 먼저 끊느냐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가진 자가 양보해야 되고 힘 있는 사람이 내놓아야 하는 것이 요구될 수 있지만 현실정치에서 잘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굉장히 자조적으로 말했을 거예요.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긴 하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일반논리의 흐름으로 본다면 현재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쪽이 양보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 회:지금부터는 플로어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설원태(경향신문 선임기자):조금 늦게 들어와서 말씀을 들었는데 인터넷에 관해서 부정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생각되고요,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인터넷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그리고 혹시 문학활동을 하는 데 활용할 생각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문열:저는 인터넷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대단히 즐겨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넷 메일을 배운 것도 4년 전이었고, 최소한 어쩔 수 없을 때 쓰고 즐겨 쓰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쓸 줄은 알고 또 아마 인터넷으로 소설을 제일 처음 발표한 사람이 저였을 겁니다. 2002년에 이미 인터넷으로 발표하고 인터넷소설을 판매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그것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비난하는 인터넷의 여러 불합리성이라든가 부정적인 측면, 이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 사람들, 요새로 치면 여당 사람들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하는 것은 내 정파적인 입장이라든가 이해관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여영무(뉴스앤피플 대표):이문열 작가님이 쓰시는 조선일보의 ‘불멸’ 잘 읽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40회가 나갔더군요. 그런데 지금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지가 일주일 못 미쳐서 1주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다수로 위임을 받았는데 그동안 수행과정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상황을 100% 장악하지 못하고 상황에 휘둘리면서 아주 허우적대고 비틀거리는 못미더운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능력부족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촛불시위라든가 용산참사라든가 기타 좌파세력의 방해라고 할까 불복종 때문에 그런지 그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문열:세상일이라는 것이 단면적인 것이 있겠습니까?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겠지요. 설령 그런 것들이 있더라도 능력 있게, 요령 있게 대처하면 무력화나 방해가 훨씬 적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반대로 능력에 약간 문제가 있더라도 사회적 불복이 방해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이끌어갈 수도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은 2개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거나 이쪽의 능력부족과 저쪽의 불복이 상충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청수(회원):결국 대의제 민주정치의 단점이 자주 나타나니까 그걸 어떻게 보완하느냐는 문제, 아예 폐지하느냐, 직접민주정치로 가버리느냐 하는 것인데 직접민주정치로 가도 아테네 시절에도 문제가 있었고 또 문제가 있을 것 같단 말입니다. 그것의 한 표현으로 현대적인 표현이 인터넷민주정치인데 서양에서는 디지털 데모크라시라고 합니다만, 지금 이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인터넷 앞에만 앉아 있는 국민의 일부가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것도 완전치 못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 선생께서 새로운 정체 원리를 염두에 두고 한번 바꿀 수 있으면 바꿔봤으면 좋겠다는 것을 듣고 싶은데 그 내용이 안 나와서 유감스럽습니다. 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체 원리를 가상한 가상 민주정치랄까 그런 작품을 하나 쓰시면 어떨까… 역사가 그렇게 해서도 발전되거든요. 그것을 묻고 싶습니다.

이문열:잘 알려졌다시피 사실 제 성향이 새로운 것에 우호적인 성향이 못 됩니다. 저는 새로운 것이 늘 자신 없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늘 새로운 정치체제를 말했지만 사실 제 진의는 지금 있는 것도 잘 조정만 되면 충분히 쓸 만한 것이다, 이런 기분이 있습니다. 새로운 구상에 대해 따로 작품을 만들 만한 생각을 해둔 것이 없습니다만 앞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인경(경향신문 선임기자):선생님께서는 지난 촛불시위 때 인터넷을 통한 착시현상 때문에 몰린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현장에 안 계셨기 때문에 오해일 수 있다고 하셨지만 현장에 갔을 때 보면 초등학교 남학생부터 여고생, 할머니도 계셨고요,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도 나왔습니다. 착시현상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번 이명박정부의 탄생 역시 방송이나 언론에서 ‘굉장히 훌륭한 CEO다, 깨끗하다, 한 점 부끄러움 없다’는 말 등에 착시를 당한 대중이 더 많이 찍어서 이런 결과가 온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한 번도 본인의 착시현상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으십니까?

이문열:우선 제가 시청 앞 광장에 모인 분들이 전부 다 인터넷의 착시현상 때문에 왔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가 왔을 거라고 했고 나머지는 습성적인 ‘그때 그 사람들’이라든가 여러 가지 다른 사람들이라고 했고요, 그들이 전부 인터넷 착시현상 때문에 왔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500만 표나 더 몰려간 것이 착시현상이다? 제가 보기에 그때 우리 인터넷이나 방송매체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명박 대통령한테 유리하게 작동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현장에 없었지만. 사실 제가 믿는 것 중 하나는 오히려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더 냉정하게 볼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현장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 실감한 적은 있었는데 바로 조금 전 말한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 나왔다는 것, 그것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5월 9~11일 사흘 동안 무슨 모임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프라자호텔에 묵으면서 매일 2시간씩 나가서 초기 촛불시위를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니까 시위군중의 한 70~80%는 가족단위더군요. 대개 고등학생이 맏이고 중학생이 둘째거나, 중학생이 맏이고 초등학생이 둘째인 연령층의 가족이 잔디밭에 앉아 있는 대부분인 것 같았고 나머지는 취재진, 정당관계인, ‘그때 그 사람들’ 그렇게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갔습니다. 그 뒤 6월에 돌아와서 보니까 전혀 구성이 달라져 있더군요. 그래서 어떤 성원의 일관성이라고 할까, 이런 것도 사실은 전체적으로 촛불시위를 두고 본다면 의심스럽습니다.

손병관(오마이뉴스 기자):약간 폭넓은 범위의 주제들이 얘기가 되고 있어서 최근 현안에 대해서 2가지만 짧게 질문하겠습니다. 하나는 최근 연쇄살인사건을 활용해 용산참사를 덮으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는데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는지, 만약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요구하고 당시 청와대라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또 한 가지는 올해 들어 미네르바라는 네티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는데 검찰이 구속수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는데 여기에 대한 선생님의 고견을 바랍니다.

이문열:사실 이 질문을 근간에 한 30곳에서 받았는데 늘 피해 왔습니다. 사안마다 나선다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고, 사람이 모르는 것도 있지 어떻게 다 알 수 있나 싶기도 한데 질문을 하니까 간단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청와대 행정관이 이메일 보내서 그랬다고 하고 또 청와대 해명은 그 개인이 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개인이 했다면 멍청한 짓, 실패한 보필일 것이고, 청와대 차원에서 기획됐다면 그것도 무능의 일종일 겁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지난 정권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때 야당인 지금 여당이 충분히 활용했겠지요. 지금도 잘 활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두 번째 미네르바의 경우 그것은 제가 인터뷰나 언급을 요청받을 때마다 거절한 이유가 똑같습니다.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는 우리의 지성 풍토가 한심하다. 사실 나는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미네르바의 기고를 깊이 있게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아는 몇몇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걸 가지고 경제대통령이니 하고 전 언론이 달려들어서 떠들 내용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때 과민반응일지, 이상한 열광을 부끄러워해야 될 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고, 그 일까지 내가 어떻게 언급하냐’면서 언제나 피해 왔습니다.

손병관:거기에 대해서 검찰이 수사한 것에 대한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문열:그것도 같은 건데, 그런 이상반응을 하는 사회나 또 그것에 대해서 검찰수사를 한 것에 대해서 또 다른 판단의 부분이 있는데, 만약 미네르바가 발표한 모든 글과 그것이 야기한 모든 것에 대한 방향 전체에 대한 수사라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검찰이 거기에서 실정법상 불법혐의를 가지고 했다면 반드시 못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 회:플로어에 계신 분들이 질문을 생각하시는 동안 대표질문자 질문 한 라운드 더 하겠습니다. 박찬수 논설위원님 질문해 주시죠.

박찬수:며칠 있으면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지 꼭 1년을 맞습니다. 지난 1년간의 국정운영을 보면서 이명박정부에게 평점을 매긴다면 몇 점을 주실 건지 간단히 말씀해 주시고요, 작가님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도 하시고 어쨌든 보수정권 탄생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그렸던 보수정권의 모습, ‘아, 보수정권이 집권하면 이런 것을 해야겠다’, 또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던 기대와 지난 1년간 이명박정부가 보여준 모습을 비교하신다면 기대에 충족했던 부분은 어떤 것이고 미흡했던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이문열:제가 보수정권이 탄생하는 데 무슨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양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제가 구체적으로 의도한 바는 없습니다. 제가 걱정한 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지나친 쏠림현상 같은 것, 특히 절제되지 않은 진보나 좌경 이런 쪽에 대한 걱정 때문에 당파나 어떤 정당에 반사이익을 준 적은 있을지 모르지만 정권 자체를 만들어내려고 고의적으로 도움을 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정권의 점수를 매긴다는 것도 굉장히 고약한 노릇입니다. 이제 1년인데 1년으로 끝나는 정권이고 여기에서 결산해야 된다면 가능하겠지만 제가 보기에 이 정권은 아직도 시작에 가깝지 끝과는 멀리 있는 상태인데 1년 만에 성급하게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이 되는군요. 그저 심정적으로 불만스럽다거나 성에 차지 않는다거나 이런 느낌을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만약 그런 비판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저는 사실 무능보다는 소심과 우유부단 쪽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이 정권이 그런 소심과 우유부단으로 후퇴할 때는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표를 던진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촛불에 혼비백산한 것인지 너무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측면은 비판할 측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민배: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추모 열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국민 다수는 통합, 포용, 사랑에 상당히 목말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정치시스템은 이런 국민적 니즈를 수용하기에는 상당한 결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우리가 통합적 에너지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 위정자들 때문이라고 보시는지, 아니면 정치체제의 근본적 결함 때문이라고 보시는지, 어떤 해결책이 있으리라고 보시는지 말씀해 주시죠. 

이문열: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위정자라고 부르는 사람, 소위 정치리더들이 어떤 사회에 형성되는 영향력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의 통합에 대해서 어떤 원동력을 찾는다면 역시 국민대중 자체에서 찾아야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저도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역시 통합이라든가 사랑, 평화 이미지들이 갖는 강력한 응집력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한테 아직도 어떤 영향력이 남아 있고 특히 국민통합에 대해 영향력이 남아 있고 그들이 제대로 행사할 뜻이 있다면 그것은 말씀하신 대로 그런 사랑, 평화의 형태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깊이 있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박찬수: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것 중 하나가 지난 정부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새 정부 들어 진보와 보수의 이념대립이 훨씬 심해지고 접전이 훨씬 많이 늘어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가장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지점 중 하나가 현대사에 대한 해석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역사교과서 수정 문제로 나타나고, 지난 정권 때도 그랬지만 현 정권 들어서도 역사교과서 수정 문제로 수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는데 한 정파나 정당의 사(史)를 쓰는 것도 아니고 나라의 역사를 쓰는데 이렇게 5년, 10년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바꾸는 이런 현실이 과연 우리가 불가피하게 지나야 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진보와 보수가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역사의 바운더리를 정하고 서로가 토론해서 쟁점 있는 부분은 남겨두더라도 합의할 수 있는 부분만은 어느 정도 영속적인 교과서나 역사해석을 내놓는 것이 가능한지 이 부분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문열:곤혹스러운 질문이긴 한데 저는 그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사실 다른 나라도 특히 현대사 부분에 대해서는 일치하게 정의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도 몇 년 전 남쪽에 5개, 북쪽에 5개 고등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하급반 아이들이 잘된 문장의 어떤 전범 같은 걸로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 것이 남북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북부의 경우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명문으로 외우거나 많이 중시하는 것 같고, 남부에 내려가 남부문화라고 말하는 그쪽을 보니까 의 항복선언문 전문을 전범으로 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것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사에 대한 일치하지 않은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 될 텐데요, 그것이 어떻게 만장일치로 이 현대사는 이렇게 해석하자 쉽게 되겠습니까? 사실은 다수가 너무 민감하게 그 결정이나 혹은 그 정의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정을 유도하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김민배: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민감한 주제는 피해 가려고 하신 것 같은데 기자적 감각으로 볼 때 북한문제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차대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파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드는데 북한문제에 대한 견해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이문열: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민감한 것을 피해 간다고 하니까 변명하는 것인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 대해서 견해를 말해주기를 한꺼번에 수십 군데에서 요청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다 결과적으로 피곤하게 되는 수가 많기 때문에 피하다가 피하다가 열 번이나 스무 번에 한 번 정도 대답하면 그렇게 피하고 피했는데도 또 말썽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움츠러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북한문제의 경우는 특히 저한테는 말하기에 이른바 뜨거운 감자로 되어 있는 것이 지난 10년 동안 어찌된 셈인지 나는 아주 과격한 반북주의자로 이미지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북한의 태도나 혹은 소위 화해주의, 친북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를테면 지난번에 남북한 작가대회를 해서 300명이나 되는 작가가 북한에 간 적이 있는데 나는 뭐 작가가 아닌지 나한테는 엽서 한 장 온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개인적으로 상당히 친한 사람의 답변이 “니는 해봤자 그쪽에서 받지 않는다. 그래서 안 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내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도 합니다. 지난 김대중정권 초기에는 방북을 계획하는 많은 문화단체나 사회단체 명단 속에 나를 끼워 넣었습니다. 그렇지만 몇 달 후가 돼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방북명단에 내가 있으면 그 단체 자체가 가는 데 지장이 생기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왜 기피인물이 되었는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이런 상황을 10년 겪으니까 작용, 반작용일 수도 있겠는데 나 자신도 이제 ‘아, 내 자리는 여기구나’ 이런 기분이 들면서 나도 엄격히 말하자면 반북주의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주 감정적으로 말할 때는 친북화해정책에 대해서 투항주의라든가 종북주의라든가 이런 이름으로 비난하기도 합니다만 특히 지금 당면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조금 견해가 다릅니다. 어제 인터넷을 보니까 백낙청 선생님께서 “남한이 하는 짓에 대해서 북한이 참는 것을 보니까 인내심이 놀랍더라”고 말했는데 저는 요새 보면서 북한이 하고 있는 위협과 엄포에 대해서 저렇게 자제하는 남한 정권이 참 놀랍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든 대결국면으로 가는 것은 피해야겠지요. 그 정도에서 어떤 접점을 찾을 뿐이고, 사안 자체 혹은 정책 자체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싶습니다.

사 회:플로어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영희(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마지막에 작가대회 이야기도 해서 조금 살짝 걸리는 것 같은데 문화파워 얘기입니다. 이 선생께서도 평소 관심을 많이 갖고 언급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소위 우리나라 문화파워가 좌파에 지배된 것이 오늘 주제가 된 이른바 병리현상의 온상을 제공하고 인프라가 되고 하부구조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선생이 볼 때 좌파에 의한 문화파워 장악 현상이 구체적으로 어떠어떠한 것이 있으며 보수정부 들어 이것이 해체되고 있는 건지, 보수정부를 지지해온 문화세력 쪽에서 밸런스를 잡거나 아니면 밸런스를 뒤집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또 그것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문열:이 부분도 잘못 건들면 이상한 이야기가 되는데 사실 제가 처음 어느 한편으로 분류되어서 소위 난타전이 시작될 무렵인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엄연히 보수문인세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수는 그때 이미 6대4나 7대3으로 몰리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9대1 정도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엄격한 입장에서 볼 때는 가끔씩 나 혼자와 나 아닌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화, 특히 문학 쪽은 그쪽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무턱대고 그들을 비난할 기분은 없습니다. 권력에 편승한 작업도 있겠지만 사실은 보수문인 혹은 보수문단이라고 하는 진지의 문제입니다. 그 진지는 제가 보기에는 완전히 파괴되어서 도무지 소위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에 아무런 기능도 못하는 소수집단으로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돌리느냐? 지금 얼마나 돌려놓았냐고 질문하셨는데 제가 직접 관여하지 않아서 전혀 알 수 없긴 하지만 제 기분은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입니다. 봄이 왔는데 전혀 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고 또 그것을 되돌려놓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인위적으로 급격하게 몰아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특히 문화라는 것은 다른 분야와 달라서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데 성급하게 인위적으로 개편을 시도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어서 그냥 멀리서 구경하는 중입니다. 어차피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참고로 저는 10년 전 ‘책 장례식’ 이후 어떤 문인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저 혼자 있습니다.

김동호(회원):저는 인터뷰365닷컴이라는, 이 선생님이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인터넷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죽 들어보면 소설가 이문열 선생은 정치인이나 정치사상가 또는 이 시대의 사회적인 논객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소설가가 정치에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그리고 이른바 보수우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높여 오시면서 지난 좌파정권 때 불이익도 많이 당했으리라고 봅니다. 책을 불태우기도 하고 미국에 2년간 머문 것도 일종의 도피생활이 아니었는지…. 여러 가지 고충담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애환들을 듣고 싶습니다.

이문열:사실 책이 장례식을 당할 때는 마음이 상했지만 그 외에 그렇게 추측처럼 불이익을 입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지난 10년의 정권이 어떤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문화주의를 견지한 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는 한 번도 피해를 입은 적이 없고, 마음고생을 했다고 해도 추상적인 거고 세계 전반의 상태에 대한 것들이지, 정권 차원에서 누가 나를 불리하게 한다, 이런 것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아까 인터넷신문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런 형태의 말을 자른다고 할까, 그런 표현이 지난 10년 동안 저한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시민단체를 홍위병이라고 말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내가 모든 시민단체를 홍위병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되고요. 어떻게 모든 시민단체가 홍위병이 되겠습니까? 인터넷에 관한 태도도 인터넷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터넷광장을 활용해서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까지 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건 혹시라도 말하다가 잘못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정정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터넷매체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인터넷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표현한 적은 있습니다.

사 회:긴 시간 시국진단과 해법을 제시해주신 이문열 작가님에게 감사드리고요, 어제 백낙청 선생님에 이어 오늘 이문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대화를 나눈 것이 앞으로 한국사회가 통합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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