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토론회

피터 휴스 평양주재 영국대사 초청 관훈토론회

초청자 :
피터 휴스 평양주재 영국대사
개최일 :
2011-09-28
조회수 :
5,996
첨부파일

 

          피터 휴스 평양주재 영국대사 초청 관훈토론회

 

일시:2011년 9월 28일(수) 오전 8시

장소: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사회:정병진 관훈클럽 총무,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토론:강철환 조선일보 북한전문기자

         강태호 한겨레신문 평화연구소장

         안정식 SBS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정병진(관훈클럽 총무,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사회):안녕하십니까? 저는 관훈클럽 총무를 맡고 있는 정병진입니다. 지금부터 피터 휴스(Peter Hughes) 평양주재 영국대사 초청 관훈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휴스 대사의 호칭은 평양주재 영국대사로 하겠습니다. 엊그제 임기가 끝나서 영국으로 돌아가시는 중에 3일 일정으로 잠깐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어서 저희가 토론회에 초청했습니다. 휴스 대사의 커리어를 잠깐 소개해 드리면 주로 영국 외무부와 해외공관에서 근무했고 외무부 한반도과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보다 자세한 경력은 테이블 위에 있는 팸플릿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토론회는 식사를 간단히 하시고 휴스 대사의 기조발언을 들은 뒤 패널들이 질의­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식사를 하겠습니다. (식사)

식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피터 휴스 대사께서 오늘 소화할 일정이 많고 시간도 촉박한 듯해서 토론회로 들어가겠습니다. 피터 휴스 대사의 기조발언을 듣기에 앞서 오늘 여기 오신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유든 대사님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유든 대사님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피터 휴스 대사의 기조발언을 듣겠습니다. 휴스 대사의 기조발언은 동시통역으로 하고 패널과의 질의­응답은 순차통역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동시통역은 부스에서 하고, 순차통역은 앞자리로 나와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휴대폰에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국내외 기자들과 관훈클럽 회원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질문하실 분은 테이블 위에 있는 질문지에 써서 저희 직원에게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중에서 몇 개의 질문을 선별해 제가 대신 질문하겠습니다. 그러면 휴스 대사를 연단으로 모셔서 기조발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터 휴스(평양주재 영국대사):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와서 훌륭한 분들 앞에서 발제하게 되어 영광이고,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제가 평양에서 영국대사로 근무했던 3년 동안 한반도에는 많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2008년 9월 평양에 도착했고, 그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재와 건강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했습니다. 일부는 그가 이미 사망했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9년 3월 최고인민회의였는데요, 그는 매우 살이 빠져서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뇌졸중을 앓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김정일의 심각한 병 때문에 후계자 결정을 서둘렀음이 분명했습니다.

2008년 말 3개월 동안 6자회담은 검증문제로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로 6자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발리에서 이용호 외무성 부상과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회동이 있었고, 지난주 베이징회담이 있었고, 뉴욕에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간의 논의 등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6자회담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갈 길이 여전히 멉니다. 영국은 6자회담을 강력히 지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6자회담이 다시 열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와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2009년 초 북한은 미국정부가 약속한 50만톤의 식량을 공급해온 미국 NGO들을 추방하고 더 이상의 식량지원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영변에서 감시활동을 하던 IAEA와 미국 감시단 역시 추방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4월 국제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북한은 3단계 로켓 시험발사를 감행했습니다. 미사일 발사는 대대적인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안전보장이사회도 의장 성명을 통해 이를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이후 2009년 5월에 핵실험을 감행하였고 국제사회는 이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결국 안보리는 7월 북한제재를 보다 확대 및 강화하는 대북결의 1874를 채택하였습니다. 영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의 일원으로서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영국은 대북제재 이행을 감독하기 위하여 7개국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설립된 북한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의 구성원으로서 대북제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9년 11월 북한은 화폐개혁을 실시했고, 전국의 모든 시장을 폐쇄했습니다. 외화 사용도 금지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달러 사용 상점들(dollar shops)’도 문을 닫았습니다. 북한의 배급체계에 따라 지급되는 적은 식량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마저 제한적이었기에 한동안 혼란과 불안의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2월이 되자 북한은 이러한 변화를 되돌리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높아지는 불만을 우려하여 단행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시장과 달러 사용 상점들은 점차적으로 다시 문을 열었고, 외화 역시 일단은 자유롭게 유통되었습니다. 그 후로 시장들의 규모가 커지고 상품도 다양해졌습니다.

2010년 3월 대한민국의 천안함이 침몰되어 46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영국 등이 참여한 국제조사단은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으나 북한 측은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해 오고 있습니다. 그 후 11월 북한은 연평도를 포격했습니다. 북한의 포격으로 2명의 군인과 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습니다. 북한은 남한이 북한영토를 먼저 포격한 것에 대한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확연한 과잉대응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북한은 이 기간 동안 내부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의 도발행위들은 권력승계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외적으로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북한정권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2010년 10월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 행사에서 김정일의 막내아들인 김정은이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후계자로 선택되었다는 추측에 힘이 실렸습니다. 그 후로 김정은이 권력기반 강화에 나섰다는 보도들이 잇따랐습니다. 김정은이 북한 공안기관의 최고책임자가 되고 북한주민의 탈북을 막고 외부로부터의 정보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북­중 국경지대의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정은이 후계자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습니다.

올해 초 북한은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청했고, 식량이 5월 정도면 고갈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엔 기관들, 미국 비정부기구(NGO)와 EU의 전문가들은 식량상황에 대해 각각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기관들은 모두 북한이 매년 대략 100만톤에 이르는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인적 재앙이 임박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유엔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 높은 영양의 식량 공급이 시급하다고 호소했지만 필요한 양의 30%밖에 공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내내 평양의 국제단체는 식량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지만 아사나 기아에 관한 보고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름 동안의 폭우로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어 예년보다 작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여전히 매우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평양과 지방 모두에서 노후한 유휴 산업시설을 목격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최신의 혁신적인 정책과 기술에 접근하고 다각화하지 못하는 점, 그리고 외국자본의 안전을 보장하는 신뢰할 만한 법적 제도의 부재는 무역과 투자에 있어 주요한 걸림돌입니다. 에너지 부족 역시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주요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생존을 위해 중국의 원조에만 거의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정일은 2010년 5월 이후로 중국을 4회 방문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중국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따르도록 설득하려는 중국의 노력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나진­선봉 특수경제지역 확장을 위한 북­중의 공동노력이 발표되었습니다.

8월말 김정일은 거의 10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6자회담 재개가 거론되었지만 방문의 주목적은 경제협력인 것으로 보입니다.

위태로운 경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북한에 있는 동안 작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특히 평양에서 목격되었습니다. 도로에 차들이 많아졌습니다. 주로 중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들입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잘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화가 통용되는 곳에서는 외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제 도로에 신호등이 생기고, 그 유명한 여성 교통경찰들은 단전으로 신호등이 작동되지 않을 때만 모습을 드러낼 뿐입니다.

북한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동통신망 확장입니다. 가입자가 이제 60만명을 돌파하여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양에서는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휴대전화 통화는 북한주민들 간에만 가능하고 외국인에게나 해외로는 전화를 걸 수 없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영국은 북한의 핵확산 우려와 우리의 중요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때문에 북한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6자회담을 적극 지지하며 지속적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참석하도록 촉구해 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북한의 심각한 인권문제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은 인권문제가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다양한 출처의 소식통에 따르면 즉결처형, 정치범수용소, 빈번한 사형선고 및 일상적인 고문 등 심각한 인권유린 문제가 만연해 있다고 합니다. 6년 동안 인권에 대한 EU­북한 간의 대화가 없었습니다. 북한은 대화를 재개하기 전 EU가 북한의 인권실태를 비난하는 유엔결의안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줄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북한은 인권기관들의 접근과 인권에 관한 유엔특별조사위원의 개입을 거부해 왔습니다.

우리는 10년간 평양에 영국대사관을 두었습니다. 평양에 주재함으로써 북한관리들과 접촉하고 우리의 우려를 평양에서나 런던에 있는 북한대사관을 통해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직접 평양의 상황 및 각 지방의 실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NGO 및 국제기구들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작은 규모의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사업을 위해 좀 더 자유롭게 여행하며 지방공무원들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업은 유치원의 영양실태, 식수 및 위생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평양에서 영어 교습 및 훈련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3개 대학, 즉 김일성대학, 평양외국어대학 그리고 김형직사범대학에서 4명의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전체활동 중 30%는 직접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고 나머지 시간은 교사양성, 자료 및 교육과정 개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기존 교육 프로그램을 3년 연장하고 김책공업대학을 포함하여 김철주사범대학, 통일중학교 등 3개 교육기관을 추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영어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이런 것들이 실효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고, 저희 전문가들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분야 교류 중 하나는 양국 의회 간 유대 강화입니다. 상하원공동위원회 위원장 알튼 경, 위원인 콕스 남작이 2003년과 2009년 그리고 2010년에 평양을 방문하였고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2004년과 올해 3월 런던을 방문했습니다. 다양한 기관과 단체들이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북한상황에 대해 최태복 의장에게 전달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매년 10명의 북한 공무원들을 영국으로 초청해 영어연수를 실시합니다. 이들은 영국 가정에 머물며 영국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경찰서, 법원, 지방정부 및 의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작년 미들즈브러 여자축구팀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팀들과 두 차례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들은 평양방문 중 많은 북한주민들과 만나고 교류하였습니다. 그 후 지난해 우리는 북한 국영방송에서 영국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을 방송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주민 전체에게 방영된 최초의 서양 영화였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우리는 북한 전역 모든 계층의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그들에게 영국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소개하고, 많은 북한인들이 서양 사회의 실상에 눈뜨게 함으로써 외부세계가 위협이 아닌 기회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사 회:말씀 잘 들었습니다. 오늘 질문하고 토론하실 패널들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휴스 대사 바로 오른쪽에 계신 강태호 한겨레신문 평화연구소장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오른쪽은 안정식 SBS 정치부 외교안보팀장입니다. 그리고 제 왼쪽은 강철환 조선일보 북한전문기자로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연구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순차통역 관계로 질문은 되도록 간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휴스 대사께서는 좀 길게 이야기하셔도 관계없습니다. 엊그제까지 평양에 계셨으니 평양 얘기로 토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정식(SBS 정치부 외교안보팀장):먼저 간단한 질문 여쭤보겠습니다. 북한에서 3년 동안 생활하셨는데 평양주재 외국 외교관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지가 궁금한데요, 계시는 동안 평양 이외의 지역은 어디어디를 가 보셨는지 그리고 모두발언에서 지방공무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하셨는데 북한 일반주민들과도 접촉한 기회가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피터 휴스:비록 여행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저는 함흥, 선봉 등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 그리고 논의할 필요가 있을 때 관리들을 만나볼 수 있고, 관리들을 만나는 것은 쉬웠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사 회:안 팀장, 좀 더 궁금한 것 있습니까?

 

안정식:평양에서 주로 외화를 사용하셨을 것 같고, 가족과 함께 평양에 가셨으면 자녀 교육문제가 있었을 것 같고요, 그리고 평양에서 생활하실 때 음식물 같은 것은 해외에서 공수하신 건가요? 아니면 평양에서 조달하신 부분도 있는지 간단히 여쭤보겠습니다.

 

피터 휴스:저는 가족과 함께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대사관 직원들도 대부분 자녀들의 교육문제라든지 보건문제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부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외화를 사용했습니다. 외교관들은 외화만 사용해야 합니다. 화폐개혁을 하는 동안 현지 화폐를 쓸 수 있는 정책이 잠시 시행되었지만 다시 외화만 쓰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보통 북한 내에서 조달받는 음식도 있었고요, 가능하다면 해외에서도 공수를 받았지만 지속적으로 공수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사 회:휴스 대사께서 3년 동안 계시면서 했던 일과 관련해서 강태호 소장의 질문이 있겠습니다.

 

강태호(한겨레신문 평화연구소장):전임자인 에버라드 대사 때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런던공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ㆍ문화 교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사께서는 어떤 분야에 역점을 두고 직무를 수행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까 기조연설에서 미들즈브러 여자축구팀의 평양방문도 말씀하셨고 또 내년에 런던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어떤 변화들이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피터 휴스:제가 직무 중 어떤 분야에 중점을 두었다기보다는 여러 부분에 다각화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선 북한정권과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논의를 지속했고, 인권에 대해서도 다뤄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차원에서 북한사람들과 영국민들의 협력 그리고 접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저희는 미들즈브러 축구팀을 파견했는데요, 이것은 북한과 영국의 국교수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서 많은 북한주민들이 영국의 삶의 방식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노출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축구경기를 가졌던 미들즈브러 축구단이 그들이 처음 보는 외국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조금 더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요, 그리고 저는 런던올림픽에 북한 여자축구팀이 출전자격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더 많은 북한주민들을 포용하고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 회:대사께서 기조연설에서도 언급하셨지만 평양에 있는 3년 동안 북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중에서 특히 우리가 관심 갖는 일도 많은데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질문하겠습니다. 강철환 기자 질문 이어 가시죠.

 

강철환(조선일보 북한전문기자):대사께서 부임하실 당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화폐개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당시 화폐개혁을 책임졌던 당 재정기획부장인 박남기 비서가 처형당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고 그 후에 문일봉 재정부장이 처형됐고 많은 고위간부들이 처형됐습니다. 그리고 북한 역사 최초로 인민문화궁전에서 북한 총리가 북한주민들, 인민반장들에게 공개사과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 사망 이후 모든 북한주민들이 한 번 통곡했고 화폐개혁 이후에 두 번째 통곡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북한주민들의 민심이 심각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의 분위기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터 휴스:말씀하셨다시피 화폐개혁은 분명히 북한정권이 저지른 커다란 실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박남기 총살이라든지 공개처형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실제로 공개처형이 있지는 않았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더욱더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총리의 공개사과가 있었지만 공개사과라는 것이 북한주민 전체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는 아니었고 단지 스타디움에서 공개적인 사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과 대상은 고위간부들이었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사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 화폐개혁은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시장과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배급제에만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궁핍한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었습니다.

 

강철환:추가질문드리면 저도 평양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지만 보통 소문이나 루머가 사실인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북한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고위층에서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정보는 거의 사실입니다. 그래서 박남기 처형 같은 경우는 민간언론들에서 처음 보도되었고, 저도 북한의 유력한 어떤 제보자로부터 구체적인 상황을 제보 받았습니다. 그래서 처형된 것은 확실한 것 같고요,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지, 박남기를 그 후 평양에서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피터 휴스:저는 거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습니다. 정보를 아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루머들이 있고 사실일 수도 있지만 사실을 우선 검증해야 되는데요, 거기에 대한 증거는 지금 없습니다. 물론 박남기가 다른 지역으로 추방되었다든지, 아니면 사살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 회:그 부분은 이 정도로 하고 우리 국민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남북관계와 남북 군사긴장문제에 대해서 강태호 소장께서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강태호:제가 외교부 출입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외교관하고 기자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교관도 상당히 많은 취재를 하고 위키리크스에서 보도됐듯이 그것을 전문으로 보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2차 핵실험이라든지 천안함 사건, 또는 연평도 포격사건 등과 같이 남북의 군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중요한 사건과 관련해 평양에서 경험하고 또 목격했던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고요, 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강경도발조치를 대사께서는 ‘승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북한정권의 태도’ 이런 식으로 분석하셨는데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등 최근 많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또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피터 휴스:제가 생각하는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2010년 10월에 김정일이 김정은과 함께 다시 공식석상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해외언론도 있었고 많은 일반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동안은 김정은이 TV에서만 모습을 비쳤던 것과는 달리 실제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주 눈에 띄는 변화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 권력승계 준비과정은 끝났고,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건들을 볼 때 그 사건들은 모두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새로운 리더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0월 이후로 김정은이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은 올해 9월 9일 기념일 때였으며, 그 이외에는 공식석상에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사 회:대사께서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내일모레 개성공단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알고 계신지요?

 

피터 휴스:저는 홍준표 대표의 방북계획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제가 평양에서 나와서 이틀 동안 이동했기 때문에 최근의 뉴스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개성공단은 여러 이유로 중요한 곳입니다. 상업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곳이며, 정치적으로는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고, 북한정권에는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는 서로 다를지라도 개성공단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이번 소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속 운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 회:올 4월에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것과 관련해서 강 소장이 여쭤보시죠.

 

강태호:엘더스 그룹의 평양방문 과정에서 영국대사관도 연락이라든지 어떤 역할을 좀 한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메시지를 직접 전달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 후 5월 9일 베이징에서의 남북 비밀접촉 등이 있었기 때문에 카터 대통령의 방북에 영국대사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피터 휴스:여기서 명확히 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요, 영국대사관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에 개입한 것은 아니고 또 그 연락책을 담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해외개발공사 측에서 접촉을 담당했고요, 카터 대통령이 포함된 엘더스의 방북 목적은 우선 북한의 식량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조사 결과 역시 식량문제가 심각하고 국제사회의 원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카터 전 대통령이 6자회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다뤘던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6자회담이 진전을 조금 이룬 것은 그 배후에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조직이 관여했음을 저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사 회:한국 언론이나 한국 국민들의 관심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런저런 문제에 쏠려 있을 것입니다. 통일부, 외교부 일선에서 직접 취재하고 있는 안정식 팀장이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해 주시죠.

 

안정식:조금 전에 언급하셨다시피 북한에 부임했던 당시가 2008년 9월이면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인데요, 당시 평양 분위기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당시 북한 간부들이 최고지도자의 신상과 관련해서 어떤 언급들을 했는지, 그리고 모두발언에 보면 ‘일부는 그가 이미 사망했다고 믿었다’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 북한 간부들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터 휴스: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가 특히 부각된 때는 2008년 8월부터 2009년 3월, 4월 정도인데요, 여기서 약간 수정하고 싶은 점은 ‘간부들이 김정일이 사망했다’ 이렇게 얘기하거나 의심한 것이 아니라 저희가 의심한 이유는 보통 때 같으면 김정일 위원장이 매일 뉴스에 등장하고 커버가 되지만 그런 모습이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직접 저희가 알아보기 위해서 간부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들의 대답은 항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정식:평양에 계시는 동안 김정일 위원장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2010년 10월과 올해 9월에 김일성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대사께서 계시는 동안 김정일을 가까이서 직접 대면하신 적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서 지금 평양에서는 어떤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들으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터 휴스:지금 북한에서 직접 김정일과 접촉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중국과 러시아 대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 대사들이 말한 바에 따르면 건강상태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몸의 왼쪽 부분이 불편해 보이고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 회:김정일 건강문제는 그 정도로 하고, 후계구도에 대해 강 소장 질문 이어 가시죠.

 

강태호:김정은이 2007년 9월 당대표자회의에 공식 등장했다고 말씀하시고 저희도 그것을 통해서 알게 된 부분이 있는데요, 혹시 북한 관리들하고의 접촉이나 일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에 대한 언급을 북한 관리들이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이 금기시되어 있는지 그런 부분들이 일단 궁금하고요, 그다음에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은 김정은이 굉장히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권력이나 세력 교체라는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세대교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텐데요, 대사의 카운터파트가 되는 외교부 등에서 북한 쪽의 세대교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셨으면 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아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터 휴스:우선 저도 그렇고, 아무도 김정은을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과 함께 다니고 김정은이 김정일과 함께 있었다는 말은 있지만 직접 봤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은 없었습니다. 보통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항상 ‘김정일의 건강을 위하여’ 아니면 ‘김정은을 위하여’라고 축배를 들곤 합니다. 그 후 제가 간부에게 ‘그러면 김정은이 누군가’라고 하면 단지 ‘김정은 장군이다’라고만 이야기하지 ‘후계자’라든지 ‘새로운 지도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는 없습니다. 그래서 뚜렷하게 어떤 리더십의 방식이 바뀌었다든지,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 회의라든지 노동당에서 앞으로 김정은에게 더욱더 충성할 수 있는 젊은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루머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군사 쪽의 부수장으로 김영호가 지명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가는 곳에 그가 동석하고 있는데요, 그는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서 확연히 젊은 것이 눈에 띕니다.

 

사 회:권력이동 부분에 대해 북한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강철환 기자 질문해 주시죠.

 

강철환:김정은 등장 전후로 북한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인물이 사라졌습니다. 권력의 핵심이었던 이재강 당 조직부 1부부장이 이상한 교통사고로 제거되었습니다. 그리고 올 1월에 국가안전보위부 실세 부부장인 류경 부부장이 처형됐다는 소식이 있었고, 우리 정부도 확인을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처형은 너무 비대해진 권력에 대한 척결도 있겠지만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한 수순밟기 차원의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는데요, 잇단 실세들이 권력을 뺏긴 이후 어떤 경직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그리고 새로운 뉴페이스들이 등장했는지, 그런 것들을 묻고 싶습니다.

 

피터 휴스:저희도 많은 루머를 들었습니다. 류경 부부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수차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들었고요, 그리고 많은 장군들이 퇴임을 했습니다. 실제로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군인들이 복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갑작스러운 퇴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려하거나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없습니다.

 

사 회:북한권력 내부의 변화와는 별도로 북한주민들의 불만 또는 불안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안정식 팀장 질문해 주시죠.

 

안정식:평양에 계시는 동안 일반주민들을 자유롭게 만나실 수는 없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북한관리들이라든가 여러 사람을 만나보셨을 텐데 대화하는 과정에서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김정일정권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느낌이 좀 느껴지신 적이 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피터 휴스: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북한사람들을 접촉하는 데는 많은 통제와 제한이 있었습니다. 제가 지방 농장을 갔을 때도 관련된 간부들이 저를 맞이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에 갔을 때도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을 접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사이자 외국인인 저에게 그런 불평을 늘어놓을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그리고 조직들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승계과정에 대한 전폭적인 그리고 보편적인 지지는 이루어지지 않고, 특히 화폐개혁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안정식:북한이 사실 폐쇄사회이기 때문에 정보가 통제되고 있는데요, 그래도 요새 보면 많은 경로를 통해서 외부소식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나보신 북한주민이나 관리 중에 재스민혁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그리고 대사께서 지금도 불만이 있는 것으로 들었다는데 이런 것들이 집단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피터 휴스:재스민혁명에 대해서는 고위관부와 얘기할 때 언급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카다피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토 공습이 있었고 외부의 공격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동의 사건들이나 외부소식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철저히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뉴스소식이 있지만 ‘이집트 대통령이 사임했다’ 정도의 사실에 기반한 정보들만 오고 갈 뿐입니다. 그리고 ‘집단의 반발이 표출될 수 있는가?’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 저의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아직 그런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았고,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중심이 형성될 수도 없고, 그룹이 모이기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도청되거나 누군가 엿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합니다. 또한 북한은 매우 억압적이고 통제가 철저한 국가입니다. 심지어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이동할 때도 여행허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 대응이나 반발이 있기는 어렵습니다.

 

안정식:올해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갔다 왔는데 ‘전투기 같은 무기를 요청했다’ 이러한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온 보도를 보면 재스민혁명, 이런 것을 보고 혹시라도 나타날 수 있는 주민들의 집단소요에 대비해서 군사적 대비를 강화하려는 생각도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분석이 있었는데 계시는 동안 혹시 평양이나 지방에서 군이나 사회안전부, 우리로 따지면 경찰인데, 사회안전부 쪽의 대비태세가 강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피터 휴스:그런 변화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평양 밖에 여러 가지 빌딩들이 지어지고 있는데 건설현장에 군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건설공사 목적이지 안보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한 태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달 동안 지방을 둘러본 결과 지방에서도 그런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았습니다.

 

사 회:휴스 대사께서 서울에 오신 지 하루 되었는데 오늘 아침에 죽 한 그릇 드시게 하고 너무 딱딱한 질문이 이어지니까 조금 힘들어하시는 것 같기도 해서 제가 간단한 질문 하나만 드리고 패널의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는 굉장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럽, 특히 영국과는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영국 측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북한이 유럽이나 영국 쪽에 어떤 애착을 갖고 있는 또는 가지려 하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피터 휴스:북한은 과거 2년간 외부사회로부터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접촉하고 지원받는 곳이 중국이었고 최근에는 러시아가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지만 계속 고립된 사회였습니다. 북한은 영국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 대사관이 평양에 있고 또 영국은 유엔 안보리의 일원이자 강대국이고 EU의 일원이자 많은 조직 및 기구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EU 자체를 진지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EU국가들을 개발원조를 줄 수 있는 대상 그리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 회:평양 사정에 대해 비교적 익숙한 강철환 기자가 북한 내부문제에 대해 질문 하나만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철환:최근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주 특이한 일이 하나 있는데요,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4개월 동안 평양의 주요 대학에 휴교령을 내린 상태에서 학생들을 강제로 10만 세대 건설장에 내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내년 4월까지 연장될 것이고 내년 신입생도 뽑지 않았다는 그런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북한정권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6ㆍ25전쟁 때 빼고 대학가를 폐쇄시킨 적은 없다고 봅니다. 북한을 경험한 사람들의 느낌은 뭔가 문제가 있다, 특히 젊은 대학생들 속에서 반정부 움직임이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올 6월 전후로 평양의 주요 대학가에 반김정일 대규모 낙서사건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이런 대학생동원령과 관련해서 아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피터 휴스:확실하게 정보를 드리자면 평양에 있는 모든 대학생들이 건설현장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운영을 아예 중단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게 교수진이라든지 교직원들은 그대로 학교에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반정부 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고 여러 노동에 동원된 일이 매우 많고, 그러한 사유도 매우 많았습니다. 이번 경우는 건설현장에 동원된 것이고요, 수확기 등에 농장이나 밭일을 위해 동원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학기 중에 종종 동원령이 있기는 합니다. 이런 것들이 80년대, 90년대부터 항상 있었기 때문에 처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도 주택건설현장에 학생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양의 모든 학생이 동원된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 회:이어서 간단한 질문 하나 더 해주시죠.

 

강철환:인권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우리 한국사회에는 북한정권에 대한 인권문제를 거론할 경우 김정일정권을 자극한다든지, 남북관계가 안 좋아진다든지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유럽이나 영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를 강도 높게 거론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북한을 방문했던 기독교 관계자들을 만난 일이 있는데요, 그분이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질문했고, 그 답변이 부정은 하지만 일부 인정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가 주도가 돼서 유럽국가들이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대해서 현지시찰을 할 용의가 없는지, 그렇게 되면 6곳에 수감된 20만명의 정치범들에게는 상당한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부탁 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피터 휴스:저희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룰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증거를 수집하고 정보를 구하는 것입니다.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사실도 전혀 들을 수 없고 정치범들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정치범수용소의 존재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에 대한 확증을 얻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희가 이런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북한정권은 정치범 수용에 대한 사실을 부인하곤 합니다. 하지만 영국은 계속 기회가 될 때마다 그리고 다양한 차원에서 인권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만 해도 저는 많은 고위간부들, 김영남, 최태필 그리고 방유천 장관에게도 인권문제를 거론했었습니다.

 

사 회:많은 질문이 남아 있고 또 궁금한 것도 많지만 질문을 마무리해 가기로 하겠습니다. 플로어에서 온 질문 중 두 가지를 물어보겠습니다. 북한의 경우 종교에 대해 폐쇄적이고 억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민들 역시 거기에 그냥 순응하고 있는지, 북한주민들의 종교에 대한 태도나 관심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리고 북한당국이 소위 말하는 탈북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피터 휴스: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양에는 3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 개신교 교회, 가톨릭 성당이 있고요, 그리고 예배라든지 종교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성직자라든지 목사를 본 적은 없지만 이러한 집회들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러시아 정교 같은 경우에는 러시아대사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었다는 루머는 있습니다. 그것은 3개 교회가 있는 평양이 아니라 지방에서 일어났다는 루머를 들은 바 있습니다. 탈북자에 대해서는 전혀 저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북한정권의 입장은 탈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어선을 타고 탈북해서 한국으로 망명한 가족들이 있었는데요, 북한의 입장은 이들이 탈북한 것이 아니라 납치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사 회:오늘 외신기자들도 오셨는데 NHK 이토 류우치 기자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상당히 포괄적인 질문이어서 1시간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1분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겠냐는 질문입니다.

 

피터 휴스:북한의 정책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 세계의 핵무기가 없어질 때까지는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사 회:아주 간단하지만 많은 내용이 들어 있는 답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플로어에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까지 얘기한 것에 포함되기도 하고 시간도 없어서 플로어 질문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패널의 질문도 많이 남았습니다만 꼭 하나 질문하고 싶은 것 있으면 강 소장이 하시죠.

 

강태호:지금도 물론 북한 취재가 가능한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작년에 천안함 사건 이후 한 1년 반 만에 최근 평양을 다녀온 분들의 얘기에 따르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사님께서도 중국에서 생산된 차들이 많이 다닌다고 하셨는데 평양에 계실 때 북한과 중국 간 경제교류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요, 그다음에 최근 로이터통신이 뉴스영상을 공급하기로 했고 내년에 북한이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서방언론 취재에 대한 개방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피터 휴스:시간상 간단히 답변드리겠습니다. 제가 목격할 수 있었던 가장 처음의 변화는 외향적인 변화입니다. 시장에 중국제 화장품이 많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특히 색깔 있는 화려한 옷은 중국산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국차들이 더욱더 많이 다니는 변화도 있었고요. 하지만 사상이라든지 정책에 대한 변화는 전혀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AP도 조선중앙통신의 방송을 송출하기로 협약을 맺었고 곧 북한에 사무소를 열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통신사는 신화와 타스 2개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년 행사와 관련해서 저는 북한이 분명히 해외언론사들, 서방언론사들을 초청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작년 10월에도 저를 초대했고 많은 언론도 초대했으며, 내년 행사에 다시 참석하도록 초대를 받았습니다.

 

사 회:휴스 대사께서 아마 한국에 와서 사흘 있는 동안 가장 길었던 1시간 반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9시 45분에 여기서 떠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곡한 당부가 있어서 저희가 외교적 프로토콜은 지켜줘야 하니까 오늘 토론회는 아쉽지만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창순(관훈클럽 사무국장):그러면 오늘 참석하신 피터 휴스 평양주재 영국대사님께 기념패를 드리겠습니다. 기념패는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번역된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기념패.

                                                       피터 휴스 평양주재 영국대사.

관훈클럽은 오늘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영국과 북한 관계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북한문제에 대해 토론하신 피터 휴스 평양주재 영국대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념패를 드립니다. 관훈클럽은 휴스 대사를 관훈토론회에 초청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오늘 우리와 나눈 휴스 대사의 뛰어난 통찰력과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2011년 9월 28일

                                                           관훈클럽 총무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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