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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평화헌법 60년과 동북아 신질서

주제발표자 :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
개최일 :
2007.08.25
조회수 :
4,379
첨부파일

 

 

                    해외 세미나 

 

       일시:2007년 8월 25일 오후 4시

       장소:일본 야마구치 뉴다나카호텔 회의실

 

       주 제:일본 평화헌법 60년과 동북아 신질서

       주제발표:다나카 아키히코(田中明彦)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情報學環) 교수

      사 회:이재호 관훈클럽 총무(동아일보 논설위원실장)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 약력

 

1977년 도쿄대 졸업(국제관계론 전공)

1981년 매사추세츠 공과대 정치학부 대학원 졸업(박사)

1984년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

1990년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조교수

1994~95년 영국 옥스퍼드대 St Antony’s College 객원연구원

1998년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2000년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 겸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2002년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장

2006년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 겸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이재호(사회):국제관계 전문가인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게 돼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냉전이 끝난 뒤 많은 학자들은 세계가 다자협력체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자협력체가 되기는커녕 미국의 일방적인 체제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이 지금도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은 굉장히 비관적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으로 동북아시아가 매우 흔들릴 거라는 비관론이 있습니다. 반면 낙관론도 있습니다.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커지고 국제기구 연관 등으로 동아시아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낙관론입니다.

자기실현적 예언처럼 미국과 중국,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과 대립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동아시아가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비관론보다 낙관론에 서서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단초가, 그 시발점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에 있습니다. 평화헌법 문제가 동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키워드가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점이 이것이었고,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다나카 교수님께 듣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나카 교수님의 기조발표를 듣겠습니다.

 

이창순(사무국장):먼저 다나카 선생님이 간단하게 인사말씀을 한 다음에 기조연설을 하겠습니다.

 

다나카:도쿄대 다나카입니다. 오늘 한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여러분 앞에서 인사하게 된 것을 무척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여러분이 이 야마구치현 근방을 찾아주셨다는 것은 아주 의의 깊은 일입니다. 야마구치현은 아베 신조 총리의 출신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이 야마구치현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세미나의 주제는 ‘일본 평화헌법 60년과 동북아 신질서’입니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질서는 몇 번 큰 변동을 거쳐 왔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서유럽의 동아시아 진출, 일본의 메이지유신,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본의 조선반도 식민지화, 중국의 신해혁명, 제1차 세계대전, 1930년대 일본의 침략 등은 20세기 전반까지 질서변동을 초래한 사건들입니다.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도 동아시아 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현재 일본 헌법이 제정된 것은 바로 일본의 패전이라는 상황하에서였습니다. 이후 일본 헌법은 개정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간 일본 헌법은 일본의 국내 정치나 대외정책에 법적 테두리를 결정하는 큰 요인이 되어왔습니다. 오늘은 일본 헌법이 제정된 과정을 간단히 알아본 후 일본의 국제행동이 일본 헌법과 어떻게 관계돼 왔는지 설명하겠습니다. 또 헌법개정에 대한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아울러 21세기 일본의 외교, 안전보장 정책, 나아가 동아시아 국제질서와의 관계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 헌법 제정

 

두말할 것도 없이 현재 일본 헌법이 제정된 최대요인은 미국의 의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큰 요인이 일본의 군국주의였으며, 그것이 생기게 한 원인이 전쟁 전 일본의 정치․경제․사회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철저한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일본제국 헌법에 대신하는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맥아더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일본정부에 헌법개정을 지시했습니다. 일본 장군회의에서는 헌법 전문가들을 모아 개정안을 작성하고 1946년 초 이것을 연합국 최고사령부에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일본제국 헌법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맥아더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연합국 최고사령부 스태프에게 헌법 초안 작성을  명령하였습니다. 연합국 최고사령부 스태프는 단기간에 민주화와 평화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맥아더는 초안을 기초로 새로운 헌법을 작성하도록 일본정부에 명령했습니다.

맥아더의 초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최종적으로는 헌법 제9조가 됐습니다. 현재 헌법 제9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원히 이것을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후 일본의 안전보장정책과 관련, 이 헌법 제9조가 법적으로 늘 쟁점이 되어 왔습니다. 또 이것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맥아더 초안 중 일본 헌법체계에 영향을 미친 조항으로 헌법개정 조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96조. 이 헌법의 개정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가  발의하고 국민에 제안하여 승인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승인은 특별 국민투표 또는 국회가 정하는 선거 때에 행하는 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즉 새로운 헌법하에 성립하는 중의원과 참의원 양쪽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개정이 발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한 조항이었습니다.

헌법 제9조가 이때까지 개정되지 않았던 최대요인은 개정조항의 개정요건이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한국의 제6공화국 헌법에서는 제안은 국회 과반수 찬성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할 수 있고, 국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과반수이면 실현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대체로 내용이 같습니다만, 일본이 이원제이고 한국이 일원제이기 때문에 국회의 3분의 2라는 점에서 봐도 제6공화국 헌법이 이론적으로는 개정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헌법 제9조 해석의 변천

 

어쨌든 일본 헌법의 60년을 생각할 때 가장 논란이 된 것이 제9조였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이나 정치제도에 관해 일본국민 대다수는 헌법조항에 대해 큰 이론이나 논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60년이 지난 오늘 민주주의적인 통치나 인권에 관해 일본 헌법을 크게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물론 환경을 보호할 필요에서 새로운 권리나 의무를 부과할 필요는 지적돼 왔고 그것 때문에 개정안도 제안되어 있습니다만, 정치적으로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헌법 제9조가 이렇게 논쟁이 된 것은 말의 법률상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해 몇 가지 관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많은 헌법학자들은 제9조에 의해 일본은 자위를 위한 전쟁을 할 수 없고 어떤 의미에서도 군사력을 보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50년에는 미국이 일본은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견해를 보였고, 헌법을 무시하고 일본에 재군비를 요구하였습니다. 연합국 총사령부가 맥아더의 초안을 만들었을 때는 아직 냉전이 본격화되지 않았고 미국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일본의 철저한 무력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러나 1947년 이후 냉전이 본격화됨에 따라 미국은 일본 무력화의 불이익을 생각하였고, 1950년 이후에는 일본에 재군비를 요구하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로 일본은 1952년 독립을 회복합니다만 당시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는 일본의 안전보장을 미국에 위탁하고 일본은 경제부흥에 전력을 다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요시다 총리에게 미국에 안전보장을 맡기려면 일본도 군비를 증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자위대 전신이 되는 경찰예비대 보안대 등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일본 국내에는 일본이 독립을 회복한 이상, 또 미국이 재군비를 요구하는 이상 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헌법 제96조 규정에 따라 개정은 불가능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헌법개정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이 양 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였기 때문입니다.

헌법개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환경에서 사실상 재군비를 위해 설립된 것이 자위대였습니다. 당시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는 헌법개정론자였습니다만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새로운 헌법해석을 통해 자위대 설립을 실현시켰습니다.

헌법 제9조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주권국가인 이상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고,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력을 보유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해석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위대는 ‘최소한의 실력’에 해당한 것이면 헌법 제9조 2항에서 말하는 육해공군, 기타 전력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자위대라는 명칭은 이러한 해석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또 군대가 아니라는 해석에서 이것을 관할하는 것은 성이 아니고 밑에 있는 청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실력’이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아주 어렵고, 정부는 더 한층 법적인 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낸 것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라는 것입니다.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헌장 제51조에 명시돼 있는 권리로 개별적 자위권에 대하여 국가는 집단적 자위권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명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일본정부는 일본이 주권국가인 이상 자위권을 보유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헌법 제9조가 있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금지되어 있다고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타국 영토에서 타국을 지키기 위해 일본 자위대가 무력행사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결과 1960년 개정된 일­미 안전보장조약에서는 일본 영역 외에서 일본이 미국을 방위하는 의무는 지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제5조는 “각 조약국은 일본의 시정 아래 있는 영역에 있어 어느 한쪽에 대한 무력공격이 자국의 평화 및 안전을 위협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자국 헌법상의 규정 및 수속에 따라 공통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시정 아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은 미국은 일본을 지키지만 일본은 미국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조약 영역이 태평양지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이 공격당하면 이에 공동대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는 이러한 의무가 없습니다. 이 부분은 때로는 일미동맹의 편의성이라고 말합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비대칭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일­미 안보조약 제6조가 다음과 같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국의 안전에 기여하고 아울러 극동에 있어서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기여하기 위해 미합중국은 육군 공군 및 해군이 일본국의 시설 및 구역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것은 미국이 일본 국내에 기지를 두는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일본만 의무를 지는 것이 됩니다. 조약이 성립한 것은 쌍방의 의무가 그럭저럭 균형을 유지한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한미방호상위조약에서 미국은 한국 내 기지를 두는 권리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보면 일본의 의무가 작다는 것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못 한다’는 것으로 자위대는 법적으로 정당화돼 왔습니다. 자위대는 헌법 위반이 아니냐는 소송이 몇 건 있었습니다만 일본의 최고법원은 한 번도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일본의 최고법원은 이러한 국가의 근간에 관한 헌법해석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해서 판단을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는 선거를 통한 국민의 판단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해석을 하고 있는 정당이 만드는 정부가 선거를 통해 계속 신임 받으면 그것은 그러한 해석을 국민이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최고법원이 명시적으로 자위대가 합법적이라는 말을 안 했기 때문에 자위대에 대한 반대세력은 꽤 오랜 기간 존재했습니다. 특히 냉전기간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동조하는 세력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이것과 국민 사이에 평화주의를 결부시켜 비무장중립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자위대에 반감을 가진 국민이 상당히 존재했습니다.

냉전의 종결은 이 상황을 결정적으로 바꿨습니다. 현재 여론조사를 하면 일본 국민 다수는 자위대가 헌법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1994년까지 자위대가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던 일본 사회당은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자민당과의 연립정권 총리가 되면서 그때까지의 헌법해석을 변경하여 자위대가 합헌이라고 견해를 바꿨습니다. 이에 따라 자위대가 위헌이라는 정치세력은 거의 소멸했습니다.

국제정치 현실에서 본다면 이 헌법해석은 1980년대까지 그다지 큰 불편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미­소 냉전하에서 일­미 안전보장조약이 발동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소련이 일본을 끌어드리는 형태로 미­소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이며, 소련이 일본을 공격하는 사태에서 일­미 협력을 한다는 것은 일본의 개별적 자위권 행사로 전혀 법적인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냉전체제하에서는 일본 국내의 친소세력이나 절대적 평화주의 세력이 제법 힘을 가지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대해 법률면에서의 정비가 전혀 진척돼 있지 않았습니다. 유사시 자위대 권한에 대한 법률면에서의 정비가 아주 미흡했습니다. 그러나 냉전하에서 소련의 대일공격 개연성은 아주 낮고, 현실적으로도 일본이 공격받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법적 미비가 현실의 문제를 생기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냉전하에서는 유엔 평화유지활동에도 제한이 있었고 일본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할 것을 요구받은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위대의 해외활동을 특별히 고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냉전 후의 변화

 

그러나 일본의 경제력이 거대해지고 또 냉전이 끝나면서 사태가 변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1990~91년의 걸프만 위기와 걸프전쟁입니다. 국제사회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을 일제히 비난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군이 편성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에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자위대는 인적인 공헌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여 다국적군에 130억 달러의 재정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 재정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는 미국 신문 등에 전면광고로 국제사회에 감사를 표했으나 일본에 대한 감사는 빠져 있었습니다. 그 후 적어도 평화유지활동에는 참가할 수 있다고 하여 1992년 PKO협력법이 제정된 후 일본은 캄보디아 평화유지활동에 자위대를 파견했습니다.

1994년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위기 때 일본과 미국의 실무급 협력체계가 미흡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다행히 한반도에서는 대규모 군사충돌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1994년 일본의 법적 테두리를 검토한 일본과 미국 실무자들은 한반도에서 미국이 군사행동을 행하려고 했을 때 일본에 대미협력체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한반도 유사 사태는 냉전 후 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1990년 후반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본 주변의 긴급사태 때 미국에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가 검토되었습니다. 그 결과 주변사태관련법이 1999년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PKO협력법과 주변사태관련법을 만든 후 실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하거나 그 후 이라크특별조치법으로 인도적 지원을 위해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면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때까지는 자위대가 유엔활동에 참가하는 경우도 헌법 제9조 해석에서 자위대의 무기 사용은 필요 최소한이 아니면 안 된다는 해석이 요구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유엔 평화유지활동 등에 있어서도 자위대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자위대원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때 또는 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무기를 지킬 때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해석에 의해 같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타국의 부대나 NGO 등이 위험에 빠져도 일본 자위대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라크에서 일본 자위대는 치안유지는 못하고 호주군이나 영국군의 보호를 받으며 인도적 지원을 했습니다. 결국 국제활동에 있어 타국과 충분한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현재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미국과의 협력이라는 면에서 생각하면 현재 일­미는 탄도미사일 방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만 이 시스템의 능력이 향상될 경우 현재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관한 해석이 그대로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명백히 나타났습니다. 가령 일본의 탄도미사일 시스템이 미국을 노리는 미사일 발사를 포착하여 격추가 가능하다고 해도 현재의 해석으로는 이것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해당하므로 일본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일­미 협력하에서 일본을 지키는 탄도미사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면서도 일본이 미국을 향한 미사일에 대해 이것을 사용 못한다면 동맹관계 유지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본 헌법 개정 움직임

 

헌법 제9조와 이에 관한 지금까지의 해석은 일본의 안전보장정책에 큰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또 이러한 현실적인 실무적인 문제와 더불어 일본군이 헌법상 타국에 없는 제약 아래 두는 것이 좋은가 하는 원칙론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단적 자위권은 가맹국 모두가 보유하고 있는 권리이며, 중국도 한국도 북한도 보유하고 있고 또 행사하는 권리입니다. 왜 일본만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느냐 하는 생각이 대두된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론에 더하여 가령 미국군이 한반도에서 어떤 군사행동을 할 때 일본이 공격받지 않고 있다면 현재의 해석하에서는 일본의 대미협력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 법적 제약은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해 적절한가 하는 의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독립국으로서의 원칙적 입장과 현실의 안전보장상의 문제에서 일본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에는 일본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요미우리신문이 헌법개정 시안을 제출했습니다. 또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헌법개정 조사위가 만들어지고 심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자민당도 자신들의 헌법개정안을 자청했습니다. 금년 봄에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아까 말한 탄도미사일 시스템을 운영할 경우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제약 문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있어 무기 사용 문제 등에 대하여 법적인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에 관한 간담회’라는 것을 만들어 검토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간담회 멤버의 한 사람으로 심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말하면 일본 헌법이 성립된 지 60년 지났는데 이 헌법에 대한 개정이나 해석의 변경이 진행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헌법개정이나 해석변경에 대해서도 몇 가지 제약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째, 국민투표법은 금년 봄에 만들어졌습니다만 시행은 2010년부터입니다. 헌법개정의 발의는 2010년에야 할 수 있습니다. 법령이 만들어지면 즉시 시행하는 것이 당연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일본은 아주 여유로운 페이스로 시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7월 참의원선거 결과 참의원에서는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헌법개정을 발의한다고 해도 참의원에서는 민주당의 협력 없이는 발의가 불가능합니다. 헌법 제96조는 큰 장애입니다.

셋째, 국민여론의 동향을 보면 헌법개정을 해도 좋다는 의견이 다수 있습니다만 헌법 제9조 개정에 대해서는 과반수가 찬성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다수의 국민은 지금도 매우 신중합니다. 넷째, 헌법개정이 실현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제안되어 있는 어떤 헌법개정 시안에도  헌법 제9조 1항을 개정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개정안은 제2항의 육해공군,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못한다는 부분을 개정하여 자위와 국제협력을 위한 군대를 보유할 수 있도록 바꾸려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의 헌법 제5조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규정보다 제약적인 규정이 대부분입니다.

 

동아시아 질서에의 영향

 

이상을 생각하면서 일본의 헌법개정 논의나 법적인 논란의 방향, 그리고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대해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까요.

첫째, 저와 같이 헌법개정을 지지하는 논자의 의향과는 별도로, 일본의 헌법개정이나 해석변경은 민주당을 포함한 컨센서스가 필요한 일로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이로 인해 일본의 안전보장정책이나 국제관계가 급속도로 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 현재의 헌법개정이나 해석변경을 모두 실현했다고 해도 그것은 일본이 법적으로 다른 유엔 가입국과 거의 같은 상황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법적으로 같게 된다는 것은 그 후 그 나라의 동향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시사도 없습니다. 미국도 북한도 스웨덴도 법적으로는 같습니다만 행동패턴은 크게 다릅니다.

섯째, 결국 앞으로의 일본의 행동패턴은 일본의 능력, 일본인의 의식, 일본을 둘러싼 전략환경에 크게 의존하게 됩니다.

우선 일본의 능력이라는 것을 단기적으로 보면 일본이 어느 날 갑자기 공격적인 군사력을 가진 국가로 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위대는 지금까지 늘 미군과 보완적인 군대로 정비돼 왔기 때문에 일본만으로 완전한 군사행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 일본인들의 극단적인 평화주의 의식은 줄어들었습니다만 세계적인 수준과 비교해보면 다수의 일본인은 평화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가령 현재 국제활동에 있어 자위대의 군사적 제약이 전혀 없어졌다고 해도 일본인들이 전투를 목적으로 한 자위대의 해외활동을 찬성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헌법개정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징병제를 요구하는 의견이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자위대는 전적으로 지원제에 의한 군사조직이며, 위험한 활동에 대한 기피 경향이 아주 강한 조직입니다. 자녀 수가 적어지는 사회에서 지원제 군사조직은 모험주의와 거리가 먼 조직입니다.

장기적으로 일본의 안전보장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본을 둘러싼 전략환경임이 틀림없습니다만, 능력면에서도 의식면에서도 일본을 둘러싼 전략환경이 매우 악화되면 변화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인 요인은 일­미 안전보장체제의 신뢰성입니다. 일­미 동맹체제가 확고하다면 일본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주변국의 군사정세도 아주 중요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탄도미사일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매년 국방비를 두 자릿수로 증가시켜 해군과 공군력을 강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미 동맹체제만 확고하면 북한이나 중국의 동향이 어떠하든 나는 일본이 독자적인 군사력 강화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정적인 것은 일­미 동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부자연스런 법적 제약이 없어지면 일­미 동맹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어쨌든 가장 바람직한 움직임은 동북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공조체제가 계속되며, 평화와 번영이 확대되고 장기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제가 되면 일본이 헌법을 개정한다 해도, 법적 기반을 정비한다 해도 결국 일본이 유엔 가입국과 법적으로 같은 수준이 될 뿐 그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사 회:우선 제가 다나카 선생님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평화헌법 제정에 대해 소상히 말씀해 주셨는데 지지하시는 다나카 선생님이 일본 전체 여론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위치에 속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다나카: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일본 신헌법이 제정된 지 한 60년 되는데 적어도 일본제국 헌법보다는 훨씬 낫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되돌아보면 개헌 요건이 아주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는 헌법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점에서 개헌론이 나온 것입니다. 영어로 헌법을 constitution이라고 하는데요, 실질적으로 중대한 문제는 헌법 이외의 법도 있다고 봅니다. 실질적으로 헌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일본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만 저의 개정안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9조 2항을 삭제하는 것입니다.

 

이성춘(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저희가 보기에는 평화헌법 9조 때문에 일본이 지난 60년 동안 번영을 이룩했고 그래서 동북아 평화를 이룩하는 데 굉장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이 세계적으로 평화국가라는 것을 과시하고 그렇게 인정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일본이 관계법을 개정해서 헌법을 고치지 않아도 지금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그야말로 군으로서 자위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주변국 사태에 대해서도 이른바 일­미 방위조약에 의해서, 일­중 신방위조약에 의해서 일본이 얼마든지 군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왜 굳이 일본 헌법을, 특히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주변국한테 60년 전의 악몽을 되살리려고 하는지 저희는 상당히 답답합니다. 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다나카:일본 국내에서도 그런 의견이 많습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원인이 뭔가, 헌법 제9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도 왜 지금 와서 헌법을 바꾸려고 하느냐… 그런 의견은 일본에도 있습니다. 헌법개정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이 있습니다만 일본에서 헌법을 개정하자고 했을 때 주 항목을 개정하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9조 2항이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모순된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2항을 없애자는 의견입니다.

20세기 들어 일본이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하고 침략하고 전쟁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다른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일본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나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지금 와서 다른 나라와 같이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별로 문제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정치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저처럼 헌법을 개정하자는 사람이 나서서 그 말을 했다고 해서 즉시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나가는 방향에 대해 국민들이 논쟁하고 여러 가지 의견을 말하는 것은 민주적인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종식(전 연합통신 사장):저는 헌법 9조 2항이 아니라 1항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항에 ‘영원히 포기한다’는 말이 있는데 ‘영원히’라는 것은 몇 년을 생각하십니까?

 

다나카:일본말로 ‘영원’이라고 하면 정말로 영원입니다. 무궁한 영원입니다.

 

정종식:1항에 문제가 없다면 전쟁은 영원히 없다는 것을 믿어도 됩니까?

 

다나카:국권 발동으로 되는 전쟁과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원히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제1항의 내용은 유엔헌장에서 말하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나라가 남의 나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 헌법 9조 1항은 한국 헌법 5조에 규정돼 있는 내용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헌법에는 영구, 영원히 포기한다는 말은 없습니다만 전쟁을 부인한다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 헌법과 내용이 같지 않을까요.

 

남재희(전 서울신문 주필):본 질문에 앞서 작은 질문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본은 지원제이며 지원제 나라는 침략적이 될 수 없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데, 미국이 지원제입니다. 군사분야가 발달돼서 소수인력을 가지고 잘됩니다. 이라크가 그런 경우거든요. 그래서 지원제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나카:아까 말씀드린 것은 전면적으로 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이 지원제이기 때문에 침략적으로는 안 된다 이렇게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아까 저는 자녀의 소수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서의 지원제라는 말을 했습니다. 미국은 자녀의 소수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제가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자위대를 제 눈으로 보면서 느낀 것입니다.

일본 자위대는 현재 평화유지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로는 일본 국내에서 일본이 거기에 참여하면 어떨까 하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수단에 자위대를 파견하면 어떨까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외무성은 적극적인 태세를 보이고, 방위성은 소극적 입장입니다.

 

남재희:본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교수님의 생각에 큰 틀에서 동감합니다. 즉 일본 헌법이 누가 뭐라고 하는 데 대해 너무 신경질적으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교수님 말씀은 어떠한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느냐 하는 내용이 문제다 하는 식으로 대충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외교정책적인 얘기인데요, 교수님 견해를 보면 일­미 체제가 완전 일치해서, 미국과 일본이 일치해서 철옹성처럼 나가는 것이 좋다는 결론으로 가는데 그게 과연 동북아 평화에 좋은가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동북아에서는 미국이 압박적이라는 것이 거의 자명한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대만­일본 관계와 중국­일본 관계를 미국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데 대해 미­일간에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과 영국은 상당히 밀착되어 있습니다. 가령 토니 블레어 같은 경우는 부시의 푸들강아지다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미국과 일본이 결혼보다는 연애관계 정도로 신축성을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미­일 관계가 너무 일치해서 나갈 때 미국에 상당히 어그레시브한 정책이 동북아 평화에 절대로 기여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미­일 관계에서 서로 갈라서라는 얘기는 아니고 아까 결혼이 아니고 연애관계 정도로 신축의 룰을 갖고 할 때 일본이 동북아 평화 관계에 대해 중국이나 북한 문제에  밸런서 역할을 한다거나 마더레이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미­일 체제를 철옹성처럼 구축해야 된다는 결론을 유도한 데 대해 약간의 정책적 불만감이 있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다나카:일본은 특별한 나라가 아니라 보통나라입니다. 법적으로 말하면 유엔 가맹국과 같은 입장의 국가가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일본에서 민주당의 오자와 씨가 보통나라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보통나라라는 말이 미국 같은 국가는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냐는 등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제 입장은 어디까지나 중국도 있고 북한도 있고 한국도 있지만, 유엔에 가입해 있는 나라와 같은 입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미국 말을 듣는다는 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내용을 일본이 실천하지 않는 일이 다수 있습니다. 미국은 사귀기 아주 힘든 나라임이 사실입니다. 미국의 동맹국은 모두 다 이러한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내부에서 한번 결정해버리면 동맹국이라고 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동맹국이 미국이 말한 일에 대해 동의를 못할 때 그 수단은 2가지가 있습니다. 전면적으로 나타난 것은 걸프전쟁, 이라크전쟁 때 그것이 표면에 나왔다고 봅니다. 슈뢰더 독일 총리라든지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처럼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고이즈미 일본 총리처럼 전면적으로 협력하고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지금 와서 보면 시라크나 슈뢰더가 말한 것이 옳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과의 관계가 아주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슈뢰더 독일 총리의 뒤를 이은 사람은 모두 친미정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본다면 일본의 안전보장, 안보 문제의 근간은 대미정책이며 아시아지역 외교에서 일본이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최종적으로 대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만 문제는 기본적으로 해협을 두고 맞서고 있는 양국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 회: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최정호 교수님 질문 하나만 듣고 끝내겠습니다. 이 시간이 끝나더라도 교수님과 이야기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장소를 옮겨서 말씀을 나누시죠.

 

최정호(전 연세대 교수):결과적으로 일본의 헌법개정에 대해 중국과 한국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만큼 민감한 반응이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 중국과 한국의 반응이 민감합니다. 그러한 반응은 헌법개정에 대해서도 있으리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나카:일본이 진공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무슨 일을 할 때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는 이것을 시행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제가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헌법개정 문제에 대해 지난 시기에는 감정적인 문제가 앞섰습니다만 지금은 아주 냉정하게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정호:다나카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앞으로 한국, 중국에서 일본 헌법개정에 대해 좀더 반대 목소리가 커지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 회:이상으로 토론회를 마치겠습니다. 아주 즐겁고 유익한 토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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